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여섯살 무렵의 일이다. 나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위해 성당에서 꼭두각시 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내 파트너는 제법 이쁘장하고 귀엽게 생긴 아이였고, 난 그 현실에 충분히 만족해했다. 그런데 여느때처럼 연습을 위해 성당에 간 어느 날, 박색(薄色)의 아이가 내 상대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안 하겠다고 끝까지 버텼다. 결국 내가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이내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시간이 제법 많이 흘러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우리 반에는 학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추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을순'이었다. 전교생 사이에서 '을순'이라는 한 사람 고유의 이름은 못생긴 여자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은 자체 추첨 결과 내가 그 아이와 짝이 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주셨다.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을순이의 옆에 앉는 것 자체가 불행한 현실이었고, 그로 인해 놀림감이 되는 예측 가능한 비참한 미래를 감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일단 울고 보는 것이었다. 담임이 보면 불쌍해서라도 바꿔주겠지 싶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내가 울수록 점점 더 일그러지는 을순이의 얼굴 표정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장황한 옛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결국 나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못생긴 여자는 철저하게 배격해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 사실은 거의 모든 남자에게 해당된다. 그래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같은 책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이 책은 "토 나올 것 같이" 못생긴 여자와 제법 잘생긴 남자의 사랑이야기이다. 현실에서 이런 경우가 있다면 '여자가 돈이 많은가 보네?'라고 가정할 법 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는 못생긴 것도 모자라 지지리 가난하기까지하면서 우리의 일반적인 예상을 배반한다.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 그것도 아름다운 로맨스의 히로인으로 못생긴 여자를 세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탈이고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일으킬 수 있는 작은 균열일 것이다. 저자인 박민규는 아마 그 벌어진 틈새에서 기존 체제의 '주류'나 '대세'인 것들과는 다른 종류의 생각과 감정들이 피어나길 바랐던 것 같다. 

  박민규는 이 '일탈적 러브스토리'를 빌어 '부나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하고 있다. 그는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력을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가 지니고 있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와 미모 같은 것은 '좋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시시하다'며, 독자들로 하여금 그 '좋은 것'들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낙후시킬 것을 주문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글 사이사이에서 등장인물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며, 저자 후기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좋은 것'들이 지금보다 시시해진다면 그것들을 못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분명 줄어들 것이고, '좋은 것'들에 의해 가려졌던 다양한 가치들이 좀 더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통찰력과 그것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재능에 자주 감탄했다. 다만 저자가 한데 묶은 부와 미모는 모두가 선망하는 '좋은 것'이라는 지점에서 만나기는 하나 엄밀하게 동일 선상에 놓고 취급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부는 노력과 능력으로 얻을 수도 있는 것인 반면, 외모는 그야말로 타고 나는 것인데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처럼 이외의 다른 매력들을 키워도 외모라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한 그것들을 펼칠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의학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그 기술이 제대로 먹히려면 '원판'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하는 한계도 있고, 돈도 많이 든다. 그래서 '재력'으로 평가를 받는 남자에 비해 '외모'로 평가를 받는 여자들은 어쩌면 더 억울하고 불행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종종 개인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이런 걸 읽고 또 읽어도 머릿 속에서 부유(浮遊)하고 입으로 배설되는 언어들이 늘어갈 뿐, 나 자신은 그냥 제자리에 서있다는 점이다. '을순이'가 자기 안에 어떤 아름다운 내용을 지니고 있는 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여전히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남자일 것이고, 끝까지 다 읽은 이 책을 덮고 잠든 그날 밤도 내 타입의 '아름다운 누군가'에 대한 꿈을 꾸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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