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이름으로 - 개정판
헨리 나우웬 지음 / 두란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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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처음 읽어본 헨리 나우웬의 글이었다. 삶으로 자신의 신학과 신앙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교회학교 교사들과 함께 읽었다. 교사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 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견지해야 할 리더십이라는 과연 어떤 것일지 한 번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온갖 처세술, 경영 마인드에 사로잡힌 작금의 시대 분위기와 이게 똥인지 오줌인지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편승해 가기에만 아주 급급해 하는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아주 짧은 글이지만 삶이 배어있는 글로 돌아볼 수 있었던 듯하다.

어느 사이엔가 남을 가르치려는 데 익숙하고, 어느 사이엔가 남의 잘못을 들추어 내는 데 익숙하며, 교리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데 익숙해 져버린 지금, 그리스도교 신앙은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낮은 곳으로 내려가 더불어 살아가는 참 인간됨의 삶을 통해, 화해와 평화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임을 돌아보게 만든 책.

헨리 나우웬, 나는 그대의 삶으로 인해 그대의 글에 대한 마음을 열었습니다. 


두울. 짧막한 인용

현대사회에서는 효율성과 통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고독, 소외감, 우정과 친밀함의 결핍, 깨어진 관계, 권태, 공허, 우울, 자학의 감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와 같은 타락의 모든 이면에서 가슴 아픈 절규가 들리듯 합니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고 싶을 때 나와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있습니까?" (32쪽)

미래의 영적 리더십은 예수로 성육신하신, 곧 육신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그 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36쪽)

우리는 치료하는 자도 아니요, 화해자도 아니요, 생명을 주는 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돌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요, 깨어지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여는 하나의 통로가 되도록 우리가 택함을 받았다는 데 바로 목회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목회는 반드시 상호 보완적이어야 합니다. ... 아니면 권위주의와 독재적 특성을 보이게 되지요. (62쪽)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하나님 되는 것이 더 쉽고, 사람들을 사랑하기 보다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 더 쉽습니다. ... 교회의 역사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는 사랑 대신 힘을, 십자가 대신 지배를, 인도받기 보다는 인도하려는 유혹을 받아 온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79-80쪽)

그것은 힘과 지배의 리더십이 아니라 무력과 겸손의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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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스터디 -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
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 / 라티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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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선생님의 인문학 스터디 강연 내용

인문학은 어떤 사태에 부딪혔을 때 그 사태를 해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따져 묻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다. 이 때 사전에 이미 하나의 신념체계를 가지고 그 신념 체계로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라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검토하고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문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 혼자는 그러한 근본 원리를 따져 묻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잘 된 정통적인 학자들의 이론이나 책들을 참조하는 것을 말하고, 인문학은 그러한 내용들이 대체로 보아서 문학, 역사, 철학, 이 세가지 영역에 걸쳐 이루어져 있음을 보아 이 세 가지 영역을 아울러 인문학이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정통적인 텍스트를 참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인류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되어왔던 문제들,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선생을 찾고, 지적을 받아 발전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선생이 없다면 검증되지 않은 최근의 서적이 아니라 정통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적인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우선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라. 근거없는 강박관념, 곧 정통이 무엇인가, 고전이 무엇인가, 과연 그런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최근의 이론들, 사유는 모두 정통적인 학자들, 고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러한 고전들, 정통적인 책들을 압축적으로 정리하여 설명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만 집중해서 읽으면 충분히 방향성을 얻을 수 있다. (예) 일리아스 읽기 방법을 따라가보자. 37쪽을 참고하라. 일리아스는 왕이 아닌 장군, 곧 모범적인 개인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을 다른 책이라는 집약적인 설명이 바로 일리아스에 대한 집약적인 설명이다. 그리고 다음의 도서목록을 보고 더 읽어야할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다. 고대철학에 대한 읽기 방법을 따라가 보자. 63쪽을 참고하라. 여기서 희랍철학이 다룬 내용은 주로 자연의 움직임이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인간, 특별히 불변하는 인간의 본성을 알고자 했다는 압축적 설명을 발견한다. 이로써 고대철학은 소크라테스를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고대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추가적인 도서목록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100페이지 안에 인문학 전 영역을 다루려고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내용은 상당히 압축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단어 하나 하나를 주의해서 읽고 도서목록을 참조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참고도서의 도서 목록은 읽기 좋은 순서로 되어 있다. 먼저는 해당 영역 전체에 대한 입문서이고, 다음으로 해당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사책, 그리고 세부적인 주제에 대한 입문서와 연구서 순이다. 따라서 마지막 4번째 영역은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다음에 읽어 내려가면 좋겠다. 입문학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문학, 철학, 역사 부분의 모든 책들을 오랜 기간동안에 다 읽을 필요가 있다. 그냥 즐기는 수준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1영역과 2영역을 즐기면서 읽어가면 된다. 유행을 따라서 읽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는 공부를 하고 싶다면 하루에 1시간-2시간 이상의 독서와 일주일에 A4 2장 이상의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다. 이 때는 선생님을 이용해야 한다. 선생님께 꾸중듣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다. 선생님께 꾸중받을 때가 바로 기회다. 내가 뭘 썼는데 선생님의 지적이 있다면 그것이 배움의 도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혼자서는 안 된다. 선생을 찾는 게 중요하다. 선생에게 배우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만약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선생이 없다면 정통적인 학자를 찾아라. 그들의 연구를 읽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간극이 넓을 때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자신을 괴롭히며 선생님의 지적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외에는 없다. 그리고 정통적인 책으로 공부하는 방법외에는 없다.이를 통해서 거리를 하나 하나 좁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줄여나가야 한다. 그 시작은 겸손한 자세다. 겸손하게 지적으로 탁월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하나 하나 노트에 적어가면서 책을 읽어라. 그리고 냉정하게 자신의 자리부터 확인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겸손함이 기본이다. 그 다음에는 확실한 근거를 갖춘 비판을 할 때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수긍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은 모르고, 안다는 것은 안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 모르는 것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게되고 발전의 여지가 확보된다.  


인문학 스터디 강연 듣기 전 혼자 끄적인 내용

 책은 왜 읽어야 할까? 혹은 읽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학과 예술, 철학과 정치, 역사학, 기독교 사상이라는 4가지 큰 분야로 나뉘어 독자가 원하는 부분에서의 기초지식과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받을 수 있다.
 
편역자들의 손이 많이 거친 책이라고 들었다. 미국이라는 상황에서 펴낸 책을 한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들였던 노고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편역자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학벌을 중시하고 안정된 고소득 직장을 얻기 위한 준비 기관으로만 대학을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교양교육의 정신이 제도 안에 자리잡고 현실화되는 것이 어려운(p.15)" 한국의 대학 현실을 십분 감안한 것일게다. 여기에는 일체의 현실적 관심과 정치적 관여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의 필요, 자본의 논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런 저런 현실 속에서 자유교양교육의 정신을 갖고자 원하는 자들을 위한 일종의 안내책으로 스스로 평하는 만큼 인문학 공부를 위한 하나의 지도를 얻고자하는 이는 누구라도 소장해서 꽂아두어도 손해 볼 책은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고 관심사가 있듯이, 내게는 주로 문학과 예술, 역사학, 기독교 사상 분야가 주로 다가왔다. 특히나 고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가 그토록 대단한 이들이었다는 것을 몰라왔던 무식함이 부끄러움을 전해왔다. 이들의 책이 많은 부분 번역되어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하나 둘 읽어보기 시작해야 할 듯 하다. 대학교 학부시절의 시간이 다소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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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도둑맞은 가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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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돌이켜보면 대학 1학년 2학기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어지러운 철학책들과 신학사상사 책들 그리고 여러 개론책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책장 넘기는 소리를 경쾌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소설이었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대학 1학년 2학기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였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말하면 책을 꽤 읽은 녀석같이 들리는데 절대 그렇지는 않다. 책 읽는 지루함을 달래고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선배들의 말을 듣고 몇 권 읽어보기 시작했던 것 뿐이니까.그 중에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바로 박완서의 소설이었다. 참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을 이렇게 두꺼운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변함없이 내 마음 속에 드는 신기로움이다.

나목(裸木). 전쟁의 참상 속에서 보고 싶었던 발랄하고 경쾌한 인간의 모습. 시대에 짓눌리고 가난에 짓눌리고 처절한 아픔에 짓눌려 가진 꽃을 피우는 것 조차 힘겨웠던 삶의 이야기를 그녀는 우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다. 주인공 이경아와 경아를 둘러싼 회색빛깔의 폭격맞은 무거운 집. 그리고 두 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집을 지키며 억척스레 삶을 연명하는 경아의 어머니. 경아가 다니는 미군 부대 PX의 초상화부. 이런 경아에게 등장했던 화가 옥희도. 이 모두가 시대 속에 살아가는 한 개인과 개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 인간이 가지는 어떤 희망과 같기도 하고 어떤 변화에의 의지와 같기도 하다. 아마도 꾸밈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작지만 커다란 바램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지치지 않고 깊이 도사려 있으면서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해야 하는 형벌 속에 있다는 것에 아랑곳 없이 가끔 나와는 별개의 개체처럼 행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일게다.  (p.145)

      생활의 냄새가 없는 공허한 서랍들. 생각을 완전히 몰아내고 빈채일 수 잇는 어머니의 머릿속 같은 완전한 '허'의 서람들. 나는 뒤지기를 아주 단념했다. (p.176)

이것은 주인공 이경아 뿐만 아니라 화가 옥희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고 싶어. 내가 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고 싶어. .... 나는 내가 사람이 아니란 것보다 화가가 아닌 것이 더 두려워. .... 며칠 동안만 내가 화가일 수 있게 해줘.  (p.181-183)

이러한 바램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도덕적인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모습이 인간의 꾸밈없는 속내일 것이다.

      그리고 문득 여벌로 또 하나의 태수가 있었으면 했다.
      내가 마음 편하게 무관심할 수 있는 태수와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애착하고 접촉할 수 있는 태수가 따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p.60)

      지금의 나에게 메스꺼운 건 그녀뿐만 아니라 온갖 도덕적인 포함되어 있었다. ...
      나는 옥희도 씨와 더불어 좀 더 긴 사랑을 설계하고 싶었다.
      목이 긴 여자로부터 그를 빼앗아 나에게 몰두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윤리 도덕 따위에 훼방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혼신의 힘으로 온갖 도덕적인 것을 배척해야만 하는 것이다. (p.262-263)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문제다. 여기서 그저 그렇게 망상 속에서만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말그대로 삶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시대와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낼 것인지.

      경아. 경아는 나로부터 놓여나야 돼. 경아는 나를 사랑한 게 아냐. 나를 통해 아버지나 오빠를 환상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이제 그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봐 응? 용감히 혼자가 되는 거야. 용감한 고아가 돼봐. 경아라면 할 수 있어.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움없이 받아들여. 떳떳하고 용감한 고아로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봐. 사랑도 꿈도 다시 시작해 봐.   (p.291)

여기서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모든 모습들과의 작별이 그리고 은연중에 미워하면서 기대어왔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 필요해진다. 물론 아프겠지. 하지만 그 아픔마저도 따스한 눈길로 마주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긍정,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됨을 아픔으로 그러나 긍정함으로 받아들이며 희망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봄을 그려보며..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달프도록 절실하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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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정독 - 인간을 보는 여섯 개의 눈
박제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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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감만 여기저기 찍어 발라 놓은 평면이 아니다. 그 속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정신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표현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바깥에 드러난 모양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울러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이나 느낌을 찾아내고 전달받았을 때, 비로소 그림 감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려면 두말할 것 없이 그림이란 예술을 좋아해야 한다. 거기에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있다. 하나의 작품 앞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것, 마음의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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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정독 - 인간을 보는 여섯 개의 눈
박제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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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다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말을 하기가 지칠 때,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것을 단지 느끼고 싶을 때 그림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림과 만나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답답함 - 이는 뭔가를 열어 젖히고 싶은 마음의 다른 느낌일 것이다 - 은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는 학창시절의 경험은 이런 내게 하나의 위안거리로 다가왔고, 작은 웃음과 더불어 저자의 글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들어가는 말에 담아놓은 저자의 말을 빌려서 큰 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장 "추락"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될 때, 그 어둠을 밝혀주는 신화를 주제로 인간의 한계 의식을 보여준다. 2장 "증인"은 인간의 삶이 끊임없이 쌓여 이루어진 역사를 거울에 비춘 모습이다. 3장 "낙원"은 인간의 운명과 내면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담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보이지 않아 두려운)을 찾아가는 여행과 같은 것이 아닌 가 생각해본다. 4장 "심판"은 인간의 본능이며 필요인 종교를 선과 악의 이름으로 노래 부른다. 5장 "빛"에서는 인간을 만든 자연과 인간에게서 생겨난 신앙이 어우러진 모습을 그렸다. 6장 "그늘"에서는 인간이 모여 있는 사회와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밝음과 어두움을 드러냈다. (10쪽 참고)

여섯 그림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샘물과 같았다. 특히나 저자가 "예술 속에는 인간들이 이제껏 살아왔던 이야기들이 모조리 함축되어 들어 있다. 더불어 인간이 걸어왔던 길을 밝히고 이끌어온 선구자들의 발자취가 담겨 있다. 그러기에 예술과 문화에는 국경과 민족이 따로 없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공유할 가장 값진 유산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림의 미적 가치만을 말하지 않고, 삶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그림 속에 담긴 맑은 물들(물론 삶이라는 것이 맑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던져준다는 것으로 본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니겠나)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와 더불어 이 여섯 그림을 그려낸 예술가들의 인간에 대한 표현, 시대를 앞질러 갔던 그들의 시대적 자각, 인간성에의 긍정은 철학자들이 어려운 말로 풀어내는 글들과 동일한 노력과 통찰력이 담겨 있음을 말해 주었다.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것 같은 부분은 맨 마지막 "그늘"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와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의 밝음과 어둠, 몰락과 부흥, 아픔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신세계"를 통해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를 통해 본 "빛" 부분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이 부분은 책에서 아마도 가장 짧은 이야기로 풀어낸 부분이 아닌가 싶지만,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 문외한에게 작은 느낌의 흔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인용은 아랫 부분 참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림에 대한 하나의 조그만 만남을 가졌다는 기쁨을 얻은 것 같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아쉬움이다. 꼭 그 이야기들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위안거리이긴 하지만서도, 읽어도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나의 제한된 크인것만 같아 왠지 속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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