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정독 - 인간을 보는 여섯 개의 눈
박제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그림을 본다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말을 하기가 지칠 때,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것을 단지 느끼고 싶을 때 그림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림과 만나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답답함 - 이는 뭔가를 열어 젖히고 싶은 마음의 다른 느낌일 것이다 - 은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는 학창시절의 경험은 이런 내게 하나의 위안거리로 다가왔고, 작은 웃음과 더불어 저자의 글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들어가는 말에 담아놓은 저자의 말을 빌려서 큰 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장 "추락"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될 때, 그 어둠을 밝혀주는 신화를 주제로 인간의 한계 의식을 보여준다. 2장 "증인"은 인간의 삶이 끊임없이 쌓여 이루어진 역사를 거울에 비춘 모습이다. 3장 "낙원"은 인간의 운명과 내면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담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보이지 않아 두려운)을 찾아가는 여행과 같은 것이 아닌 가 생각해본다. 4장 "심판"은 인간의 본능이며 필요인 종교를 선과 악의 이름으로 노래 부른다. 5장 "빛"에서는 인간을 만든 자연과 인간에게서 생겨난 신앙이 어우러진 모습을 그렸다. 6장 "그늘"에서는 인간이 모여 있는 사회와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밝음과 어두움을 드러냈다. (10쪽 참고)

여섯 그림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샘물과 같았다. 특히나 저자가 "예술 속에는 인간들이 이제껏 살아왔던 이야기들이 모조리 함축되어 들어 있다. 더불어 인간이 걸어왔던 길을 밝히고 이끌어온 선구자들의 발자취가 담겨 있다. 그러기에 예술과 문화에는 국경과 민족이 따로 없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공유할 가장 값진 유산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림의 미적 가치만을 말하지 않고, 삶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그림 속에 담긴 맑은 물들(물론 삶이라는 것이 맑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던져준다는 것으로 본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니겠나)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와 더불어 이 여섯 그림을 그려낸 예술가들의 인간에 대한 표현, 시대를 앞질러 갔던 그들의 시대적 자각, 인간성에의 긍정은 철학자들이 어려운 말로 풀어내는 글들과 동일한 노력과 통찰력이 담겨 있음을 말해 주었다.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것 같은 부분은 맨 마지막 "그늘"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와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의 밝음과 어둠, 몰락과 부흥, 아픔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신세계"를 통해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를 통해 본 "빛" 부분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이 부분은 책에서 아마도 가장 짧은 이야기로 풀어낸 부분이 아닌가 싶지만,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 문외한에게 작은 느낌의 흔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인용은 아랫 부분 참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림에 대한 하나의 조그만 만남을 가졌다는 기쁨을 얻은 것 같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아쉬움이다. 꼭 그 이야기들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위안거리이긴 하지만서도, 읽어도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나의 제한된 크인것만 같아 왠지 속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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