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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교사와 한국근대교육 - 미션스쿨의 설립과 일제하의 갈등, 번역총서 9
이성전 지음, 서정민.가미야마 미나코 옮김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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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제기한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다. "미국선교사가 조선에서 어떻게 교육에 힘썼는가, 어떻게 미션스쿨을 현지 상황을 감안해가면서 발전시키고 전개해 갔는가? 미국의 교육이 그 모델로 설정되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선택적으로 현지에 뿌리내릴 수 있었는가? 또 어떻게 그것이 수용되어 갔는가? 이 선교사들이 주도한 미션스쿨을 통해서 심겨진 서양 근대가 일본 제국지배, 혹은 총독부가 추진한 교육과 일본 통치하에서 어떠한 관계성을 갖게 되었는가?"(21쪽)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서 밝혀지는 역사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근대사 안에서 발견되는 미국형 근대의 부식, 수용, 발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서 근대 한국의 다양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22쪽) 이러한 역사 이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근대 한국의 교육은 조선 정부에 의해서 주도되지 못했고, 일제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면서 교육 제도가 갖추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개신교 선교에 의해 기초가 닦였지고 있었다.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들의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 선교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교회, 병원, 학교라는 저자의 표현으로 말하면 "트리니티" 선교사업의 결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고 식민통치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교육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름아닌 선교사들의 활동임이 분명했다. 시기적으로 세분화하면 교육정책의 강약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제통치 후기로 가면서 "신도"의 강요로 인한 대립양상이 격해지게 되었는데, 이 양상은 "종교와 종교의 갈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제도, 선교사도 서로를 더이상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선교사들이 일제와 맺게되는 관계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저자는 "평양과 서울의 갈등"으로 정리하여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양상을 저자는 세계교회사 맥락으로 이어가서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의 맥락이다. 그러나 보다 폭넓게 본다면 이러한 갈등 양상도 결국은 저자의 견해를 빌어 이야기 한다면 미국형 근대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입장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양이든 서울이든 개신교 선교사업의 한 축이었던 교육사업은 일제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미국형 근대가 자리잡을 수 없었던 한국의 구조적인 한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한계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역사의 굴절과 왜곡현상을 지적했다. 신앙의 자유를 지켜내며 기독교 신앙을 유지했고 또한 인권적인 측면에서도 저항의 역사를 남긴 긍정성을 말하면서 동시에 교육에 있어서 총독부 교육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교육공간의 완전한 소멸과 함께 식민지 교육과의 전면적 통합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부정성을 동시에 지적한 것이다. 저자의 말 그대로 "전진해도 지옥이요, 물로나도 지옥과도 같은 아포리아적인 상태"였다. 

이 연구와 함께 안종철의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의 활동과 한미관계" 를 읽으면 당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후자의 연구는 자세하고 세심하며 보편적인 역사실증을 통해 구체적인 역사현장을 재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미에 이런 추기(追記)를 달았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근대 조선에서의 미션스쿨이 조선인들에게 어떤 교육공간이었는지, 또는 식민지 하에서 일본의 제국 지배를 상대화하는 공간으로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291쪽). 이 부분에 있어 또 다른 연구가 나온다면 보다 당시대를 살아간 한국인들의 삶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제국주의 국가였던 미국과 일본, 그리고 그 제국주의 국가의 영향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한국, 한국인들의 수동적이고 때로는 주체적이었던 근대화의 노정을 기독교와의 연결 속에서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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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류대영 지음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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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쪽의 내용을 어느 것 하나 낭비되는 글 없이 꽉꽉 채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는이로 하여금 쉽지 않는 길을 걷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참고 걸어가서 그 종국에 이르렀을 때 쓰여진 내용을 꽉 채우고도 넘치도록 부어지는 듯한 깨달음, 통찰, 배움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가능한 것일게다. 이 책은 그렇게 꽉 채워져 있고, 또 채워지도록 한다.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읽는 것은 딱딱한 역사로도 가슴이 설레이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참 잘 읽었다. 이 모든 내용을 머리 속에 다 기억하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구한말 문명개화를 꾀하고자했던 조선 조정, 고종과 그를 둘러싼 여러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과 조선을 향하고 있는 세계 열강들, 그런 것과는 아랑곳이 종교적 열심을 최우선에 안고 영혼구령의 열정으로 기독교 선교의 기치를 올렸던 미국의 선교사들, 이들의 역학관계가 보여주는 제국주의적 힘의 구도. 미국 선교사들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준 서구 문명의 영향력과 그것을 받아들인 조선의 지식인들의 다른 꿈, 조선의 미래를 향했던 그들의 노력과 선교사들의 종교적 희망이 빚어내는 또 다른 갈등 양상. 이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개화기의 역사가 총체적으로 드러난다. 때로는 거대한 담론으로 그러나 때로는 한 개개인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렇게 적어가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이것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꽉찬 알맹이들 때문이다. 

USA 라는 나라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만들어낸 미국이라는 이름을 보더라도 한국에게 있어 미국은 뭔가 아름다움의 대상, 추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가깝게는 6.25를 겪으면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통해 극단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생산되고 고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상 그러한 이미지, 실제적 영향력은 그 오래전부터 역사의 흔적 가운데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유산처럼 쌓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개화기 조선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과 그들이 행한 인도적 차원, 종교적 차원의 여러 가지 일들이 양산한 긍정적 이미지들과, 철저히 상업적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가운데 정치적 제국주의의 침략을 피해가며 정교분리의 허울을 통해 선한 나라의 이미지를 쌓아간 미국 국무부와 한국 주재 공사관의 노력은 이미 조선 조정에게 미국에 대한 환상을 낳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 조선 민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00여년지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을 외치고 미국을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현실은 개화기에서부터 이미 그 역사적 노정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환상은 너무나 순진해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인간은 알면서도 애써 그 앎을 무시하면서 환상을 추구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앎 자체가 없을 경우도 허다하겠지만. 그래서 앎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알아버리는 순간, 환상의 묘약은 사라져 버리니. 현실을 마주하기에는 내가 감당해야할 책임이 너무나 커 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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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경의 삶과 교육사상 연세총서 3
손인수 / 연세대학교출판부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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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경은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 땅에서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한국 땅에 영원히 묻힌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그는 선교사로 한국에 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선친 원두우(언더우드 1세, Horace Grant Underwood)의 뒤를 이어 한국 사회와 연세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일제 식민지하에 한국에서 일생동안 일하면서 한국인의 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또한 한국에서 일어났던 여러사건을 지켜본 증인이다. 그는 또 일제의 압정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 청년들에게 학문과 행동으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참 교육자요 신앙인이었다. 또 그는 한국의 시골풍경과 온도로, 숭늉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했으며, 한국의 명승고적치고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학문적으로도 그는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한국학 분야의 연구가 그러하다. <한국의 수렵안내서>, <한국의 현대교육>, <한국에 미친 서구문학>, <한국관계 서구문헌목록>, <한국의 선박> 등 그의 저서와 논문들은 외국인의 한국 연구에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또한 이 나라의 근대화 작업에 자기가 담당한 활동을 이룩하려는 꿈을 지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연희전문학교가 언젠가는 한국인의 손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주요 보직에 한국인들을 대거 등용한 선각자였으며 사상과 신앙을 초월해 인재를 영입한 자유인이었다.

- 머리말에서 -
원한경의 아버지인 원두우, 곧 언더우드 1세에 대해서는 그나마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연구 성과들이 많이 있다. 한국으로 선교를 하러 들어온 선교사 1세대라는 상징성이 그 연구 성과를 이끌어내는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신앙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도 상당부분 들어있다. 그러나 선교사 2세대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최초의 수식어가 사라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선교사 2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쉽게 들어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언더우드 2세, 원한경의 경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가 선친을 이어서, 전문적인 교육학자로서 교육선교에 매진하며 연세대학교의 전신, 연희전문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가 한 일에 비해서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작은 이야기처럼 들리는 듯하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원한경에 대한 처음의 전문적인 연구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원한경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 책은 필독해야할 입문서이다. 저자는 원한경의 삶을 개괄한 후에 원한경의 교육사상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접근하여 이야기한다. 원한경의 교육사상은 원한경의 주요저서들, 원한경이 기고한 글들을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소개해주는 방법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원한경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주의깊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관심은 저자의 학문 영역인 교육의 영역에 그 중심이 놓여 있다. 그러나 원한경은 교육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선교사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선교사로서의 그의 면모에 대해서, 선교의 방법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조명되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 몫은 후대의 연구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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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포인트 - 기독교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12가지 전환점
마크 A. 놀 지음, 이석우 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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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은 터닝 포인트 자체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건을 상세히 연구해 보면 '교회사'란 결코 주류 교리들이나 충돌하는 원칙들이나 불가피한 결과물들의 위대한 영원함(great eon)을 통한 거창한 흐름만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빈번히 일어나는 불분명한 사고와 주저하는 행동과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과 같은 인간들이 경험했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누적된 결과들이다. 터닝 포인트들에 대해 더욱 더 상세한 정황을 제공하기 위해 각 장은 다루어진 터닝포인트와 가까운 시기에 쓰인 찬손으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을 맺는다. 각 장 역시 역시 포인트에 참여하거나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쓴 글에서 발췌한 여러 개의 긴 인용문을 포함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지 모른다. 도대체 왜 교회사에 관심이 있는가? 1. 첫째로 기독교 역사는 기독교 신앙이 가진 변형시킬 수 없는 특성에 대해 계속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사에서의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받은 영향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 즉 성육신,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하신 사건들 안에서 무한한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2. 교회사가 두 번재로 기여한 것은 성경해석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잘못된 해석을 살펴볼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오늘날 소중한 성경 해석들이 이전 시대의 분명히 비정상적인 해석처럼 우리 시대의 관습에 의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성경의 실제 메시지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3. 또한 교회사 연구는 그리스도인과 주변 문화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실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 기독교 역사는 명확한 답변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상반되는 이야기들이 혼재해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있다. 4. 역사 연구에 있어 크게 부각되는 점은 교회가 자신의 구원자이며 자신을 거룩하게 부르신 자를 자주 배반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지탱시키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이다. 즉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태도를 형성시키는 데 유익을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사 연구를 하면 우리 자신과우리 신앙에 대해 더욱 겸손해지게 된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를 미화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연구를 하게 되면, 이기주의, 반란, 압제, 편협성, 게으름, 소심함, 살인 그리고 다른 모든 욕망과 함께 권력에 대한 갈망이 세상에서만큼이나 광범위하게 아주 수치스러울 정도로 교회에서도 번성했다는 것이 분명해지게 된다. 또한 교회사에는 모든 긍정적인 흐름, 고귀한 사례들과 함께 인간의 사악한 행위가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기록을 보면 인간들의 조바심보다 하나님의 인내가 더 넓으며, 인간들의 범죄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더욱 힘이 있으며, 인간의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크 A. 놀,『터닝포인트』시작하면서 중에서 -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단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분기점이 될 만한 시대, 사건, 인물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전체적인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시각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12개의 단면을 통해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흐름을 제공해 준다. 저자의 이런 시도는 그의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무조건적인 섭리를 들이대거나, 자신이 스스로 밝힌 복음주의 신념에 입각한 지나친 편가르기식 혹은 편향적 평가와 판단을 내리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더 폭넓게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삶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역사의 이해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교회사 연구의 의미는 그런 면에서 그의 글쓰기의 탄탄한 기둥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고백적인 내용, 신앙적인 의미 부여 차원의 내용이 자연스레 드러나고 있지만 그리 밉지는 않았다. 도리어 간간히 드러나는 고백적인 서술은 진지한 되물음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편안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정리하도록 도와주는 질문과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할 점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질문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질문거리는 실제로 목회를 하고 있는 한 목회자가 자신의 교회에서 연구 모임을 가져보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정도의 독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교회내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지금의 한국의 교회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기독교인은 역사성과 떨어질 수가 없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굴곡진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그 가운데 있었던 보이지 않는 섭리를 통해서 하나 둘 모양새를 갖추고 이제까지 전승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폭넓고 다양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 것이야 말로 신앙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정도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는 것은 조금은 진지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한 기독교의 길고 긴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의 정리된 지식을 갖추고자 원한다면 그 때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모로 실용적인 저서라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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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과 초기 한국기독교
서정민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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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중원에 대한 앞서의 여러 부문과 연구 영역 중에서 맨 나중에 언급한 교회사적 접근의 하나임을 밝힌다. 특히 제중원의 정체성을 '선교 기관'으로 상정하고 이 기관이 지닌 초기 역사성 안에서 '선교 기능'의 일단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초기 교회와의 관계, 다양한 선교적 효용성은 물론 특히 신앙, 예배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에 미친 영향력, 역할 등을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유의하고자 한 것은 제중원의 선교사적, 교회사적 의의를 좁은 한 공동체와의 관련 범주에 맞추지 않고 한국 초대 교회 전반에 걸친 관련성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제중원의 교회사적 지평을 확장하는 일이며, 오히려 그 특성을 광역화함으로써 얻어지는 포괄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 책머리에서 -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 개인의 실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그 실존이 몸담고 있는 물리적 환경이 이리 저리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고(관계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특히나 그 실존의 사유 세계를 헤아려 보아도 여러 가지의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만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때로는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방황을, 때로는 삶의 기쁨과 열정을 그려내게 한다. 개개의 실존이 만들어내는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이러한 삶의 모습이 더욱 복잡해 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래서 단순할 수가 없다. 연대기적 나열만으로는 그 삶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역사 기록은 그 어느 것도 삶의 폭 넓음을 완전하게 재구성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다만 역사가가 그 진폭의 충분히 느끼며 그 속을 향해서 할 수 있는 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에 대한 최선의 표현을 다하는 것에서 역사 기록의 진정성, 가치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것이다.

제중원이라는 공동체적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이러한 폭넓음이 필요하다. 제중원이 가지고 있는 반국영기관이라는 특수한 성격, 폭넓은 역사적 성격이 때로는 세브란스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역사 사이의 설왕설래가 오고가게 만드는 요소가 됨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반국영기관이라는 특수성만으로 역사성을 점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제중원의 단편적, 단면적 이해에 불과한 것이고, 도리어 일그러진 오해의 역사 서술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할 수 있다. 어찌 그리 역사를, 삶을 그리 단순하게만 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저자의 폭넓은 역사인식과 사료 해석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제중원이라는 공동체적 조직을 또 다른 시야에서, 아니 보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내게 만든다. 눈이 뜨여지는 느낌이다. 여기서 저자의 시각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한국 초대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현상적으로 드러난 선교 방법의 양상을 분석하여 '트라이앵글 메소드'라는 특징적인 틀을 제시한다. 교회, 학교, 병원 선교의 삼각 구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상적 구도를 한 층 더 깊이 분석하여 각 꼭지점이 깊이 관여하는 관계적 구도로 해석한다. 저자는 제중원의 의료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한 꼭지점으로 삼고, 이 꼭지점이 제중원 의학 교육 기관과 제중원 신앙 공동체라는 또 다른 두 꼭지점과 깊은 교류와 관계맺음을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의료 기관으로서의 성격에만 몰두하기 쉬운 상황에서 제중원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성격,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신앙 공동체적 성격을 풀어내는 저자의 해석은 역사를 거꾸로 뒤집어 보게 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제중원의 신앙 공동체적 성격을 한 차원 더 높여 한국 교회 초기의 상황 이해의 원류적 이해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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