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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도둑맞은 가난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글을 읽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돌이켜보면 대학 1학년 2학기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어지러운 철학책들과 신학사상사 책들 그리고 여러 개론책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책장 넘기는 소리를 경쾌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소설이었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대학 1학년 2학기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였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말하면 책을 꽤 읽은 녀석같이 들리는데 절대 그렇지는 않다. 책 읽는 지루함을 달래고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선배들의 말을 듣고 몇 권 읽어보기 시작했던 것 뿐이니까.그 중에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바로 박완서의 소설이었다. 참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을 이렇게 두꺼운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변함없이 내 마음 속에 드는 신기로움이다.
나목(裸木). 전쟁의 참상 속에서 보고 싶었던 발랄하고 경쾌한 인간의 모습. 시대에 짓눌리고 가난에 짓눌리고 처절한 아픔에 짓눌려 가진 꽃을 피우는 것 조차 힘겨웠던 삶의 이야기를 그녀는 우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다. 주인공 이경아와 경아를 둘러싼 회색빛깔의 폭격맞은 무거운 집. 그리고 두 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집을 지키며 억척스레 삶을 연명하는 경아의 어머니. 경아가 다니는 미군 부대 PX의 초상화부. 이런 경아에게 등장했던 화가 옥희도. 이 모두가 시대 속에 살아가는 한 개인과 개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 인간이 가지는 어떤 희망과 같기도 하고 어떤 변화에의 의지와 같기도 하다. 아마도 꾸밈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작지만 커다란 바램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지치지 않고 깊이 도사려 있으면서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해야 하는 형벌 속에 있다는 것에 아랑곳 없이 가끔 나와는 별개의 개체처럼 행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일게다. (p.145)
생활의 냄새가 없는 공허한 서랍들. 생각을 완전히 몰아내고 빈채일 수 잇는 어머니의 머릿속 같은 완전한 '허'의 서람들. 나는 뒤지기를 아주 단념했다. (p.176)
이것은 주인공 이경아 뿐만 아니라 화가 옥희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고 싶어. 내가 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고 싶어. .... 나는 내가 사람이 아니란 것보다 화가가 아닌 것이 더 두려워. .... 며칠 동안만 내가 화가일 수 있게 해줘. (p.181-183)
이러한 바램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도덕적인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모습이 인간의 꾸밈없는 속내일 것이다.
그리고 문득 여벌로 또 하나의 태수가 있었으면 했다.
내가 마음 편하게 무관심할 수 있는 태수와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애착하고 접촉할 수 있는 태수가 따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p.60)
지금의 나에게 메스꺼운 건 그녀뿐만 아니라 온갖 도덕적인 포함되어 있었다. ...
나는 옥희도 씨와 더불어 좀 더 긴 사랑을 설계하고 싶었다.
목이 긴 여자로부터 그를 빼앗아 나에게 몰두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윤리 도덕 따위에 훼방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혼신의 힘으로 온갖 도덕적인 것을 배척해야만 하는 것이다. (p.262-263)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문제다. 여기서 그저 그렇게 망상 속에서만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말그대로 삶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시대와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낼 것인지.
경아. 경아는 나로부터 놓여나야 돼. 경아는 나를 사랑한 게 아냐. 나를 통해 아버지나 오빠를 환상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이제 그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봐 응? 용감히 혼자가 되는 거야. 용감한 고아가 돼봐. 경아라면 할 수 있어.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움없이 받아들여. 떳떳하고 용감한 고아로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봐. 사랑도 꿈도 다시 시작해 봐. (p.291)
여기서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모든 모습들과의 작별이 그리고 은연중에 미워하면서 기대어왔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 필요해진다. 물론 아프겠지. 하지만 그 아픔마저도 따스한 눈길로 마주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긍정,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됨을 아픔으로 그러나 긍정함으로 받아들이며 희망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봄을 그려보며..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달프도록 절실하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p.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