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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삶에서 불현듯 어떤 깨달음을 얻을 때란 대개 두 가지 상황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여유롭고, 한가하며, 느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얻은 삶의 통찰, 어떤 깨달음은 안정적인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유려한 문체로 씌여진 문학작품을 연상시킨다.
다른 하나는 다급하고, 급박하며,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물에 대한 극적인 이해. 여기서 얻은 ’이해’ 는 ’체득’ 된다. 두서 없고, 날 것의 비린내가 나기도 하지만 이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이 두 가지 상황은 거의 정반대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쉬이 양립할 수 없는 둘은 놀랍게도 [파이 이야기] 에서 기적처럼 마주친다. 이 둘이 으르렁대며 싸운 적은 없다. 다만 동전의 양면처럼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이였을 뿐. 그런 그들이 한 권의 책, 겨우 400쪽 안에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불가능 했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파국을 이야기한 책이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한 소년이 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 특별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은 신과 동물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소년은 왜 한 번에 여러 종교를 믿으면 안되는지 의문을 가졌다. 소년은 목요일에는 힌두 사원에 갔고, 금요일엔 이슬람 사원엘 갔으며, 토요일에는 유대회당에,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 소년에게 모든 날은 성스러운 날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 푼을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 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 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중략)
내게 종교는 우리의 악행이 아니라 우리의 존엄성과 관련된 것이다.
-『파이 이야기』96-97쪽.
또한 소년은 동물과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사실 모든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한 오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동물이 야생이라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사악한 인간들에게 사로잡혀 동물원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히면 동물의 행복은 끝나버리고, 동물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자유를 빼앗긴 동물은 그림자 처럼 되어 영혼이 꺾여버린다고...
그건 사실이 아니다.
(중략)
동물은 아주 작은 변화에도 당황한다. 동물은 며칠이고 몇 달이고 똑같기를 바란다. 놀라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공간에 대해서도 그런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특별할 것도 더 자유로울 것도 없다. 동물원에서는 평소 자리에 평소 그맘때, 평소 자세로 있지 않으면 무언가 일이 생긴다. 사육사가 두고 간 둘둘 말린 호스는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반응을 야기한다.
(중략)
야생의 영역은 취향 때문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넓다. 동물원은 집이 사람에게 해주는 일을 동물들에게 해준다. 손이 닿은 수도꼭지에서 강이 흐르고, 잠자리 바로 옆에서 몸을 씻고, 요리한 곳에서 식사하며, 적에게 위협받지 않는 담장 안에서 자기를 보존할 수 있다.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마찬가지 역할을 해준다.
쉴 곳, 먹고 마실 곳, 목욕할 곳, 털을 가다듬을 곳 등등. 사냥할 필요가 없고, 먹이가
제때에 생기는 것을 알면 동물은 동물원에 자리를 마련한다. 영역을 확인하는 절차가
끝나면 동물은 초조한 세입자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침범을 받으면 사력을 다해 영역을 지키는, 야생 그대로의 자세를 유지한다.
객관적으로 야생과 비교했을 때 더 나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 같은 책, 29-31쪽.
저자인 얀 마텔은 100여 페이지가 넘게 소년의 어린 시절을 그린다.
더욱 긴 파국을 위해서.
온 가족이 캐나다로의 이민을 위해 배를 타고 떠나던 중 바다 한 가운데서 벌어진 사고.
생존자라곤 자기 자신 뿐인 이 대 파국은 이야기로서 굉장한 흡입력이 있다. 많은 서평들이 이 모험적인, 표류하는 인간의 극적인 모습을 극찬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인간과 ’그 무엇’이 아닐까?
혼자인, 온통 파랗고 깊은 세계 속에 검은 점 같은,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 혼자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혼자일 때, 절망은 의외로 쉽게 찾아온다.
망망대해에서 생존에 필요한 목록ㅡ배멀미 약 192알, 500밀리리터 들이 물 124깡통, 구토용 비닐 32장, 구급식량 31통, 모직 담요 16장, 태양 증류기 12개, 오렌지색 구명조끼 10벌, 모르핀 앰플 주사기 6개, 화염 수신호 6개, 물에 뜨는 노 5개, 낙하산 투하식 조명탄 4개, 질기고 투명한 50리터 비닐 주머니 3개, 유리 비커 3개, 깡통따개 3개, 방수 성냥 2상자, 물에 뜨는 오렌지색 화염 신호 2개, 오렌지색 플라스틱 양동이 2개, 노란색 스펀지 2개, 물에 뜨는 합성 밧줄 2개, 물에 뜨지 않는 합성 밧줄 2개, 낚시 도구 2세트, 갈고릿대 2개, 띄우는 닻 2개, 도끼 2개, 빗물받이 2개, 볼펜 2개, 나일론 화물 그물 1개, 사냥용 나이프 1개, 바느질 도구 1세트, 응급처치 상자 1개, 신호용 거울 1개, 중국산 담배 1곽, 생존 지침서 1개, 나침반 1개, 공책 1권ㅡ들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120일 가량 당신의 목숨을 연장시켜줄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해도, 혼자인 당신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게 작동해 줄지는 의문이다.
로빈슨 크루소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동물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묵시록이 비극인것은 온전히 혼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심지어는 신도 죽어버렸을 것 같은, 라그나로크(신들의 황혼) 이후의 우주같은, 그런 곳 말이다.
그런면에서 주인공 파이는 깊이 1미터, 폭 2.4미터, 길이 8미터, 최대 수용인원 32명의 구명보트라는 작은 공간에서 하나의 사회를 겪을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그것이 비록 뱅골 호랑이 한 마리, 하이에나 한 마리, 오랑우탄 한 마리, 얼룩말 한 마리, 사람 하나인 사회일지라도
후에 침몰한 배의 사고 원인을 알아보러 나온 조사단에게 동물들을 모조리 사람으로 대체한 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장면에 이르면 확실해진다. 배는 하나의 사회였다.
이 리뷰를 쓰겠다고 나흘 전부터 난리를 쳤었다. 예상보다 쉽지 않았고, 오래 걸렸다.
책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도 너무 많았고, 그것을 단 두 번의 독서로 끌어내어 글로 옮기기란 나의 수준으론 힘든 일이었다. 되도록 요약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요약을 해보려 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매일 밤을 절망으로 지새웠다.
결국 거기서 나를 끄집어 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었다.
인간에게 절망은 가장 나중의 것이예요.
파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