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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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면 길이
                                이성복

밤이 오면 길이
그대를 데려가리라
그대여 머뭇거리지 마라
물결 위에 뜨는 죽은 아이처럼
우리는 어머니 눈길 위에 떠 있고,
이제 막 날개 펴는 괴로움 하나도
오래 전에 예정된 것이었다
그대여 지나가는 낯선 새들이 오면
그대 가슴속 더운 곳에 눕혀라
그대 괴로움이 그대 뜻이 아니듯이
그들은 너무 먼 곳에서 왔다
바람 부는 날 유도화의 잦은 떨림처럼
순한 날들이 오기까지,
그대여 밤이 오는 쪽으로
다가오는 길을 보아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길이
그대를 데려가리라

좀 멋져 보이라고 시로 시작했다. 괜찮았는가? 흠흠. 
어색하니까 헛소리말고 본론으로 가야겠다.
우리는 도미니카란 곳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니, 질문을 바꾸는 편이 낫겠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곳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굉장히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집 냉장고에 들어있는 반찬의 가짓수만큼도 모른다. 
그리고 더욱 창피한 일은 나같은 사람들이 백사장의 모래알 수만큼 많다는 사실이다.
푸쿠(쉽게 말해서 염병할 저주)!

이것이 푸쿠가 아니면 도대체 뭘로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 불과 30년 전의 광주는 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마치 우리 머릿 속에 기억을 갉아먹는 쥐라도 어있거나, 혹은 개미만큼 작고 실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화가가 들어있는 것 같다.
기억이 까맣게 덧칠되고 있는 것을 보면. 
30년 전부터 였을까, 푸쿠의 시작은? 아니면 더 오래된 시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것은 저 바다건너 태평양 너머에서 옮겨왔을 수도, 저 넓은 사막을 건너 들어왔을 수도, 아니면 세계가 시작될 때 그 문틈으로 대가리를 들이밀었을 수도 있다. 언제인지 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푸쿠는 푸쿠가 나온 처음의 상태로 모든 것을 돌리고 싶어 하거든. 젠장! 그래서 우리는 지금 후퇴중인거다. 
벌써 15년은 돌아갔다. 인터넷을 할 줄 아는 배 나온 무직자를 먹여주고 재워주려고 허위사실을 뒤집어 씌워 데려간 것일까? 
그럼 이건 모종의 사파(쉽게 말해서 염병할 저주의 역주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은 푸쿠가, 돌아온 배트맨처럼 활약하는 영웅서사시다. 아니, 훌라댄스를 추던가? 옷은 입었던가, 안 입었던가? 내가 왜 주인공인 오스카 얘길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미리 말씀드린다. 이건 오스카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반지의 제왕에서 미나스 티리스로 진격하다가 투석기 돌에 깔려 장렬히 전사하는오르크 2041번 보다는 중요하다. 아닌가? 간달프쯤은 된다고 할까?
어찌됐든 골치 아픈 놈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오스카를 가장 잘 알았던 건 그의 어머니 벨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 보면 이렇게 외쳤으니까.
무차초 델 디아블로(망할 놈의 자식)!

어쨌든 중요한 건 푸쿠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오스카의 할아버지인 아벨라르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그의 딸이자 오스카와 롤라의 어머니인 벨리다. 그럼 오스카랑 그 누나인 롤라는 뭐냐고? 배트맨과 조커 사이에서 태어난 투페이스쯤 된다.(이건 순전히 원작 코믹스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와 관련된 소리다. 오스카라면 천 번쯤은 돌려봤을 그런 영화 말이다.) 푸쿠는 3대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닌다.(비웃지 마시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파멸, 파멸, 파멸. 푸쿠가 그들을 위해 끊어놓은 것은 지옥행 급행열차 티켓이었다.(비웃지 마시라, 우리라고 다를까.) 소심하지만 졸라게 여자를 밝히고, 매일 이상한 SF 판타지 소설이나 끄적이면서 온갖 애니메이션과 망가를 섭렵하고, 요정어로 인사하며, 환장하게 뚱뚱한 소년인 오스카(라고 말했었나?)는 무모하게도 그 열차의 기관실로 가서 선로를 이탈시키려고 한다. 
이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 멍청한 짓이었다!

평생 이해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던(누나인 롤라는 빼자.) 오스카.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오스카. 사랑에 빠진 오스카. 사랑의 확신에 모든 걸 걸었던 오스카.
푸쿠는 당황했다. 이 염병할 자식이 모든 걸 망치려고 하잖아.
3대에 걸쳐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푸쿠는 경로를 수정했다. 
아마추어 같은 방식으로.

사랑은 우리의 삶을 가장 조용하게 뒤바꾸는 혁명이다.
이별은 우리의 삶을 가장 격렬하게 뒤집는 태풍이다.
이별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안다면 결국 우리의 삶은 온통 사랑뿐이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니까.

그래서 오스카는 바뀌었다. 푸쿠는 프로답지 못하게 처신했고.

하하하, 빌어먹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눈물을 흘리지 말길 바란다. 그건 푸쿠가 바라는 유치한 연약함을 내비치는 일일테니. 
이 유치하고 빌어먹을 염병할 이야기를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꼭 그래야 한다면)
그건 인생일거다. 
이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이라고 외쳤던 오스카여, 동의한다.)

다 쓰고보니 그렇다.
아임 쏘리, 중요한 건 오스카였다.
그러게 푸쿠는 어디에나 있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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