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
박경철 외 지음 / 리더스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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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나, 이렇게 허술하게 살아도 돼?

라디오의 주파수에 몸을 맡긴 채 맥주를 홀짝이던 어느 새벽이었다. 고등학생이 보낸 짧은 문자 사연은 수능을 얼마 앞두고 있다고,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위해 이렇게 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득해졌다. 찬란한 순간을 얼마나 꿈꿔보았는가. 대학 정규 과정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겠다고 강행한 1년의 휴학이었다. 1년은 벌써 채 반도 남지 않았고,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중으로 미뤄버린 시간보다 가치있는 것을 찾아 얼마나 헤매어 보았는가.

낭만적인 밤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

지금 이 순간에도 친구들은 목표를 위해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고 있을텐데, 무사태평하고 안일하게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았다. 오래전에 썼던 낙서를 찾아 보았다. 새해다짐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무엇도 하고, 또 무엇도 하고...참 많은 목표가 적혀있었다. 그럴듯한 이유도 있었다. 눈을 넓히고, 손을 높이고, 발을 키우고...말은 참 번지르했다. 의도한 대로 살 수 있는 삶을 꿈꿨던 것은 같은데 그만큼 내가 열망하고, 결단하고, 행동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스스로 나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지 못했기에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내겐 더 이상 출구도, 답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자니 나 자신이 더욱 한심스러워질 것 같았다. 영양가없이 바쁜 날이 지속되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한 채 기운만 빠져갔다. 

실패한 돈키호테. 외로웠다, 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누구와도 같이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었다. 그토록 높은 곳을,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것을 꿈꿨던가, 싶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바랐다. 산초 판사가 거들었다. 

네 뜻은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는게 어떻겠어?
그 말이 따뜻한 위로로 들렸다. 왈칵 눈물이 나오려했다. 

나를 구한 건 하나의 메뉴얼이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사용설명서.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그것이 왜 눈에 띄었는지, 평소라면 고개를 돌렸을 그것을 왜 펼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용설명서는 슬펐다. 그토록 슬픈 사용설명서는 본 일이 없었다. 메뉴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경우, 메뉴의 조작방법을 모른다, 카메라 점검 및 수리를 의뢰하려고 하는 경우, 같은 말들이 어쩜 그리도 슬프던지. 200여 페이지나 되는 카메라 사용설명서의 마지막 장까지 읽었을 때, 먼 하늘에서는 동이 터오고 있었다. 

200여 페이지나 되는 사용설명서는 말하고 있었다. 단지 카메라 하나를 사용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복잡한 설명이 필요해. 그런데 넌 그 카메라를, 설명서에 나온대로 쓸 수 있잖아. 너의 어디가 허술하니? 너의 어디가? 

그동안 인생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는 질문을 참 난감해했다. 그럴때면 유식한 척,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들을 말하곤 했었다. 외국작가들의 혀 꼬이는 이름은 참으로 그럴듯하게 들렸으니까. 그런데 이젠 일부러 혀를 꼴 필요가 없어졌다. 좀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사용설명서, 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2.
몇 세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 상징이 있다. 그것이 귀하건, 흔하건을 가리지 않고
책은 지식과 올바른 인격에 비견되는 상징으로 공고하다. 오래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책을 읽는 사람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곁에는 늘 책이 있어왔다. 성공과 행복은 동일한 말이 아니지만, 책은 성공의 조건도, 행복의 조건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 분명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권기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어떤 책들이 나를 뒤흔들어주길 바라면서도, 읽고 난 뒤에 그 전까지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책은 세상에 없길 바란다. 나는 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뀌려고 하는 사람이 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에서 뭔가 바뀌길 원하는 당신, 밤낮을 헤매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공병호, 김영세, 박경철, 이지성, 조성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찬 이름들.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 그들을 만든 책을 옆구리에 한 권씩 끼고서. 

이 대열의 끝, 당신이 들고 있을 책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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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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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늦은 밤, 택시를 탔다. 순천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고 느지막이 올라온 길이었다. 택시타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달리 도리가 없었다. 호기롭게 택시 문을 열고 기사님께 인사를 한 뒤, 목적지를 말하는데 그날따라 목소리가 참으로 걸쭉했다.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 깨어나서 그런 듯했다.

  어디 일하고 오시는가 보네?

그날따라 옷도 좀 투박해보이는 것들로만 걸치고 있었다. 일하러 다니지 않는다고 하려다가 불쑥 속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광주에서 일하는 친구들 좀 만나고 오느라고요. 공단에 친구들이 있거든요.

어쩌자고 그런 소릴 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내겐 광주 공단을 다니는 친구도, 그렇다고 내가 공장에서 일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기사님은 본인의 아들이 고3이고, 그와같은 공단에 들어가길 바라고 있다면서 내게 이것저것 묻고 동의를 구하셨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등학교 때 공단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 본 적도 없었다.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군 시절, 경호경비를 위해 광주공단에 갔던 단편적인 기억에 의지해 나는 거짓말을 만들고 있었다.


 

수줍음도 좀 타는 편이고 의외로 낯가림도 있는 편이라 한번도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그렇게 많이, 흥에 겨워하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걸쭉하고 거친 목소리, 시원시원하게 이어지는 문장과 문장들. 잠결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내 안에 마치 또다른 내가 있어서 이제야 비집고 나온 것 같았다. 이윽고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다. 요금은 4300원 정도가 나왔던 것 같다. 나는 4500원을 드렸고, 아저씨는 500원을 돌려주셨고, 나는 500원을 받지 않고 내렸다.


 

이상스런 기분이었다. 분명히 즐겁게 이야기를 했고 여전히 즐거운데 모두 허깨비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어떻게 터미널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거지, 내가 뭘 했던거지, 방금 잠에서 깬 듯 몽롱한 느낌이었다. 마치 시간을 뺏겨버린 느낌이었다. 그 공허한 느낌에 주머니에 괜히 손을 넣었다 뺐다 했고, 가방을 열어 괜히 안에 있는 물건들을 매만졌다. 그런 별 것 아닌 행동으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확신, 이 서리라 믿었던 것 같다. 가방을 뒤적이는데 책이 한 권 있었다. 커피를 주제로 한 웹툰을 엮어놓은 책이었다. 에스프레소는 마실 줄 모르지만 아주 검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마시는 맥심 커피가루를 머그컵에 잔뜩 넣고 끓는 물을 아주 조금, 넣었다. 커피전문점 원두만큼의 맛은 나지 않았지만 머리가 아찔해질만큼은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해 본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굴었던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쓰디쓴 커피를 마시고 싶어했는지도.


 

2.

따냐, 안나, 월향. 그녀같은 여자는 없었다. 영웅이 되겠다는 망상에도 빠지지 않고, 자기 스스로에게도 먹히지 않았다. 역사에 매몰되지도 않은 여자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변하지 않았고, 살아남았다. 그녀에게 변하는 것이란 가비, 뿐이었다. 또한 변하지 않는 것도 가비, 뿐이었다. 그녀의 가비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 달고 쓰고 떫어졌다. 그녀에게 가비는 아버지였다. 아버지 흉내를 내는 사기꾼이 아닌, 아버지였다. 안온했던 어린날의 젖냄새였고, 사랑했던 지난 어느날의 날씨였다. 그녀는 가비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어쩌면 이리도 욕심이 없단 말인가. 역사의식, 올바른 윤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그녀가 사랑스럽다. 욕심이 난다.


 

숨 돌릴 틈 없이 질주하는 이야기를 붙잡아 두고픈 마음은 없다. 붙잡아 둘 수 있으리라 여기지도 않는다.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이 책을 읽어보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출간 즉시 영화화' 라는 구절을 본다. 과연 우리나라에 그녀일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따냐, 안나, 월향. 그녀가 된다면, 그녀를 스크린에서 숨 쉬게 만들어 준다면, 어떤 배우가 되었든 그는 새로운 유형의 배우로 종횡무진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녀는 황제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여자였다. 잠시라도 그녀를 곁에 둘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황제가 되리라.


 

此鳥安可籠哉

이 새를 어찌 조롱 속에 가두랴


 

3.

신파를 말해야겠다.『노서아가비』를 읽고나자 그때의 밤이 떠올랐다. 그 밤, 택시 안에서의 분명하고도 매력적인 목소리, 거칠지만 거침없던 몸짓. 나는 잠시 그녀, 였다. 어쩐일이었는지, 그녀는 내게로 왔었다.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분명히 그랬다. 어눌한 내 목소리로 사람을 매혹시키기란 불가능했다. 그건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진한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건 내 입맛이 아니었다. 그토록 검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것은 그녀의 잔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로 그녀가 내게 다시 온 일은 없다. 그녀의 느낌도, 향기도 이젠 낯설지만 진한 커피만큼은 익숙해졌다. 그날 이후로 맥심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으나 간혹 아주진한 커피향이 나를 유혹할 때가 있다.


 

새벽, 그녀를 생각하며 진한 커피를 마셔야겠다.

그녀를 위한 가비를 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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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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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기술이 발달하고 교통·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누군가를 공경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컴퓨터에 전원을 연결하고 익스플로러 창을 더블 클릭하거나 TV의 전원 버튼을 한 번 누르는 것만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의 공경이란, 사교에서나 필요한 연기 덕목으로 전락해 버렸다. 간혹 사람들은 공경을 명성과 혼동하기도 한다. 우리는 공경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 는 바로 이 공경이야 말로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의 밑바탕임을  말하는 책이다. 물론, 이 짧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어떤 것' 이 책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으리라, 믿는다. 모든 글에는 오로지 그 행간에서만 발휘되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 이 아우라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하거나, 슬픔을 느끼게 하는 등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한다. 그것이 바로 난해한 철학 원전을 읽게 만드는 힘이며, 길고 긴 장편 소설을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옛 말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란 말이 있다. 여기서 웃음이란 실 없는 웃음이 아니다. 생각없이 헤실거리는 것이 난처한 상황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 웃음은 상대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태도로서의 웃음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존중과 공경 속에 담긴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파급력이 크다. 제 아무리 허황된 문장일지라도 진정성을 담고 있는 발화는 결국 사람을 움직인다.

2.
서점에서 일하면서 출판사 직원분들을 종종 뵐 기회가 있었다. 그 분들은 매달,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6일 안에 전국에 있는 모든 거래처(서점)를 돌며 담당자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재고를 확인하고, 일정한 만큼의 수금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었다. 그 분들의 일정은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한 서점에 채 10분도 머무르지 못하는 그 분들의 공통점은 '그래도 항상 웃는다' 는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경의를 표할만 한 일이었다. 전쟁같은 일정 속에서도 그 미소를 유지할 수 있다니! 그 분들 모두는 대단하지만 그 찰나, 수 없이 많은 출판사의 직원분들이 지나쳐가는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분들이 몇 있다. 굳이 '왜 그럴까' 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정해져 있는 답, 진정성 때문이었다.

대체로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비슷한 패턴의 대화만을 나누게 되는 영업상의 대화에서조차 진심은 통했다. 똑같이 안부를 묻는 첫 인사부터 기억에 남은 그 분들은 달랐다. 정확하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고, 지난 달에 보았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으로 안부를 짐작했다. 그 광경을 우연히 지켜보게 되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짧으 시간 안에 수백 개의 서점, 수백 명의 담당자를 만날텐데. 그럼 저 분은 그 모든 담당자들의 이름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업무를 위해 일부러 메모를 해두고 외웠을 수도 있다. 그 노력 또한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겪었던 그 분들은 대체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 분들은 일을 하고 있다기보다 사람을 만나고 있는 듯했다. 작고 사소한 것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 일을 지켜보면서 저분들과 형님, 아우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상을 하곤 했다. 
헛된 상상이지만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 에서는 그것을 공경이라고 불렀다. 일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신을 공경하는 일. 공경을 하면 일과 사람과 신을 모두 얻을 수 있으리라는 원리. [캅베드] 에서 말하는 공경엔 무수히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겸손, 용기, 헌신, 끈기, 사랑…

너무 뻔하다고 혀를 차시는 분들에게, 나는 그것이 자기계발 서적들 본연의 임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뻔하고 당연해서 쉬이 잊고 사는 사실들을 상기시켜 주는 책. 지금 당장 서점에 달려가서 확인해 보아도 좋다. 우리의 머리를 몇 톤짜리 망치로 휘갈기는 것처럼, 마치 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탁월하고 탁월하며 새롭고 또 새로운 자기계발 서적이 있는지를 말이다. 가히 대홍수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책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내용들은 결국,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에 불과하다.

3.
우리는 누구나 우주를 품고 있는 존재들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당신도,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우주가 있기 때문이다.
우주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것이란 자연계의 작동 원리도, 우주의 끝도 아닌, 인간 그 자체다.
어떤 사람은 별의 기원을 밝혀내기도 하고, 자연계의 원리를 증명하기도 한다.

계발서적이란 경전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책을 공경하는 나의 태도이다.
허나, 곰곰 생각해보면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이 어디 있던가.
결국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일깨우는 경전의 한 구절과 같은 것을.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당신도 이 책에서 느껴보라.
나도, 당신도, 누구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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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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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깊은 동물을 만나본 일이 있습니까?

오래전 일이다. 사랑하는, 지금은 과거형이 되었지만, 반쪽이라 여겼던 사람과 여행을 떠난적이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 뱃길로 한 시간 반이 걸리고, 민가는 11가구 뿐이며, 0.33㎦밖에 되지 않아 2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거기서 30분을 더 걸으면 반대편의 등대를 만질 수 있는, 그곳을 가는 '길' 은 하루에 두 번밖에 열리지 않지만, 바다가 쩍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그림같은 섬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녀와 나는 섬의 온 구석구석과 사랑에 빠졌다. 
좁은 섬을 종횡무진한 뒤에 짐을 푼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너무 흥겨웠던 탓일까. 내 옆에서 걷던 그녀는 발을 접질렀고, 내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그녀는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당황하면 공황상태에 빠지는 버릇이 있다.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나와 주저앉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사이로 달려온 것은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개였다. 민박집에서 기르는 사모예드 종의 새하얀 썰매견이었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나 달려와서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녀석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어디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혹시나 피가 흐르진 않는지, 크게 놀라진 않았는지 꼼꼼히 살피러 뛰어온 것이었다. 녀석들은 그녀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건드리며 상태를 체크했고, 코를 킁킁거리며 잘못된 곳이 있는지 살폈으며, 혀로 손을 간지럽히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녀석들은 침착했다.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둘 중 한 녀석이 내 손을
핥았을 때였다. 
그 순간, 녀석들의 눈빛에 담겨 있던 것은 '배려' 였다. 
내 평생 그런 눈을 가진 개는 본 적이 없었다. 
녀석들의 이름은 누리와 써니였다. 

임신 중이었던, 출산을 위해 조용한 섬으로 요양차 온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도 그랬다. 
"가만히 두면 상관없는데예, 억지로 쓰다듬으려고 하지 마세요. 임신 중이라 예민해요."
경상도 억양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주의를 주셨다. 나는 개를 좋아했지만 겁이 많은 남자였고, 그녀는 개를 무서워하는 여자였다. 그런 경고가 없었어도 제 발을 놀려 개에게 다가가진 않았을 터였다. 
먼저 걸음을 옮긴 건 로즈였다. 누리와 써니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만질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다던 로즈가 그녀에게만큼은 예외였다. 태어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새끼를 품고 있는 개가, 당연한 듯 손을 허락한단 소린 들어본 일이 없다. 
그건 배려였다. 다친 사람을 놀래키지 않으려는 배려.
우리는 머무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가 놀랄 정도로 로즈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앞으로 살면서 그 섬과 누리와 써니와 로즈의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듀이는 바로 그런 고양이였다. 
미국의 한 가운데, 아이오와 주의 작은마을 스펜서에 '배려' 와 '사랑' 을 나누어 준 고양이.
듀이는 생후 8주만에 도서관의 책 반납함에 버려진 고양이였고, 저자인 비키 마이런은 그런 듀이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듀이의 생 19년 동안 영혼을 공유했던 도서관 직원이었다. 

듀이가 도서관 안에서 생활한 최초의 고양이는 아니다. 단순히 도서관에서 생활한 이력때문에 듀이가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누리와 써니와 로즈만큼 듀이는 '배려' 의 눈빛을 지닌 고양이였던 것이다. 도서관의 낯선 방문객들을 경계하거나 할퀴거나 물기는커녕, 그들의 무릎 위로 먼저 뛰어오르고 손길을 허락하고 반갑게 알은 체를 하는 고양이. 그것을 제 일과로, 임무로 삼은 고양이가 바로 듀이였다. 고지식한 마을의 원로들을 한 발 물러서게 만든 고양이가 듀이였고, 어린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마치 자기가 엄마라도 되는 양 보살폈던 고양이가 듀이였으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웃게 하고 희망을 북돋워 준 고양이가 듀이였다.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 고양이가 바로, 듀이였다. 듀이의 진심은 스펜서에서 아이오와로, 아이오와에서 미국 전역으로, 미국에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듀이는 사랑의 전도사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듀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고양이였다.
그는 비키 마이런이었다.

이 책,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 는 사실 듀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비키 마이런의 이야기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듯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에는 으레 그렇듯, 많은 사진과 짤막한 메모같은 글을 바라는 것 같다. 그것이 꼭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너무 많은 책들이 그렇게 출간되어 나오다보니, 그렇지 않은 책이 이상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본문엔 사진이 없다. 하지만 삶과 사랑이 있다. 
'정말로 듀이를 사랑했던 영혼의 동반자 비키 마이런의 회고록' 이란 말로는 다 요약할 수 없는 것들이 책 속에 있다. 그것은 눈부신 햇살에 반짝, 하고 빛나는 투명한 구슬처럼 또르르 책 사이를 굴러다닌다. 
구슬을 집어 눈 앞에 갖다놓으니, 보인다.


듀이는 특별한 녀석이었다. 아니, 듀이는 평범한 고양이였다.
듀이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듀이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듀이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 혹시 내가 특별해 보이나요? 그럼 그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예요.

듀이가 19년의 생을 통해 온 몸으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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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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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모토 바나나’ 는 ’바나나’ 랍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예끼, 장난치면 못 써.’ 라고 말할 것 같다. 그녀의 글은 진짜 바나나 같다. 껍질을 까면 어라, 소리가 난다. 겉은 노란색이고 녹색인데 안은 뽀얗다. 모 회사의 우유처럼 바나나는 사실 하얗다. 
그녀의 글이 일단 그렇다. 껍질을 까면 나오는 온통 하얀 세상. 그건 동화적인 세계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 여기까지 파악이 되면 다시 바나나로 돌아가야 한다. 방금전에 ’일단’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저의를 털어놓아야 하므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빨가면 사과~사과는 맛있어~맛있으면 바나나~

우리는 이 노래를 안다. 
애국가보다 먼저 배웠고, 때로는 한글보다 먼저 익히기도 했으며, 동네에서 좀 논다 싶은 축에 끼려면 꼭 알아야 하는, 이 구성진 가락을 우리는 안다. 너무 완벽한 음악이라 작곡가, 작사가들 마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의 국민가요. 원숭이는 엉덩이가 빨갛고, 사과와 바나나가 맛있다는 사실에 감히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으랴! 

바나나가 있다. 껍질을 깐다.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먹는다. 맛이 있다. 끝.
이 논리대로 따른다면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나나’ 는
먹고 땡, 하는 게 아니란거다. 자, 다시 나열해보자.
바나나가 있다. 껍질을 깐다.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본다. 시간이 지난다...그리고,
까맣게 된다. 

그녀의 바나나, 그 깊숙한 최종 지점은 바로 이 ’까맣게 됨’ 이다. 

’속이 탄다’, ’속이 까맣게 탄다’ 같은 표현이 있다. 심한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 고통은 예상치 못한 파국이나 상실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흥미롭게도 [하드보일드 하드 럭] 의 인물들은 그런 상태의 한 가운데에 던져져 있다. 그들은 세상이 점차 백에서 흑으로 이동하는 지점에 서 있거나(하드 럭), 이미 흑의 세계에 진입해 있다.(하드보일드) 당연히 읽는 사람들도 던져진다. 
우당탕쿵탕!
뭐, 솔직히 독자가 이 정도 과격한 폭력을 당하는 건 아니다. 어찌됐든 ’바나나’ 아닌가.
어딘지 모르게 유아적인 억양을 물씬 풍기는 저 ’바나나’ 를 보라. 

우리는 노오란 껍질의’바나나’ 를 본다. 겉표지의 삽화는 어딘지 모르게 동화책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책을 들어보니 가볍다. 게다가 얇기까지 하다. 괜찮아 보인다.
우리는 노오란 ’바나나’의 껍질을 벗긴다. 하얀 속살이 수줍게 얼굴을 든다. 목자를 보니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다. 글씨까지 큼직큼직 하다.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바나나’ 를 오래도록 놓아 둔다. 내용이 심상치 않다. 머리를 식힐겸 책을 들었
는데 주변이 온통 검게 변했다. 호흡이 짧은 문장은 숨가쁘다. 인물들의 담담한 대화는
아득하다.

결국 안되겠다 싶어 책을 덮는다. 이건 왁자지껄한 곳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상실의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의 힘겨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삶의 대리경험이다.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이 책은 자기 스스로 어설프게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바나나’ 의 미덕이다.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겨울이 힘차게, 잔혹하게 찾아오는 것이다.
                                                                       -『하드보일드 하드 럭』, 135쪽.

힘차게를 받아들일지, 잔혹하게를 받아들일지는 누구의 몫인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다른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어설프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보다 담담하게 비슷한 경험을 말해주는 것에서 큰 위안을 얻는 것 말이다. 이걸 따른다면 ’바나나’ 는 화해와 위안의 달달한 맛이 나리라.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느쪽 의미로든, ’바나나’ 는 전염병처럼 번질 것이다. 우후죽순.
그녀의 글을 굳이 하나로 표현하자면, ’바나나’ 의 역학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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