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넌(John Lennon)의 노랫말처럼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화약 음모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도, 유대인을 '예수 살인자'라고 박해하는 것도, 북아일랜드 '분쟁'도, 명예 살인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번들거리는 양복을 빼입은 채 텔레비전에 나와 순진한 사람들의 돈을 우려먹는 복음 전도사("신은 당신이 거덜 날 때까지 기부하기를 원합니다")도 없다고 상상해 보라. 고대 석상을 폭파하는 탈레반도, 신성 모독자에 대한 공개처형도, 속살을 쌀짝 보였다는 죄로 여성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행위도 없다고 상상해 보라."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7~8쪽.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 John Lennon, <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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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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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으로 <육식의 종말>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제레미 리프킨이 1993년에 쓴 책인데 한국에는 2002년에야 번역 소개되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국면에서 누구나 꼭 다시 한 번 주목했으면 하는 책이다.

쇠고기 문제가 언제 이렇게 이슈가 된 적이 있었나.
지금이야말로 건강권의 문제와 함께 육식 문화 전반을 사회적으로 논할 적기다.
나도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다시 읽으면서
현재의 논의 지평을 어떻게 확장해볼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현대의 인류가 육식 문화를 궁극적으로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결론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육식을 좋아하더라도 모르고 먹는 것보다 알고 먹는 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축산업과 이와 연결된 무지막지한 육식 문화는
인류의 건강을 해칠뿐 아니라 지구적 규모의 불평등을 도외시하고,
지구 생태계의 안정성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리프킨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다. 리프킨은 육식 문화에는 성 차별적 요소가 있으며,
사회적 차별과 계급 불평등, 국수주의까지 내재해 있다고 분석한다.
리프킨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곡물로 키운 소의 쇠고기는
불에 탄 삼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지,
말라붙은 강이나 개울을 희생시키고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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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3
구춘권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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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세계화와 관련한 무수한 책들이 있지만, 이 책만큼 깔끔하게 잘 정리하고 있는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이라면 분량도 작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화라는 키워드를 이해하는 입문서로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다만, 내용적으로 아쉬운 점 두 가지 정도만 언급하렵니다. 우선, 이 책은 지구화를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올바르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와 포스트포드주의적 축적체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틀이 명쾌하기는 하지만, 아직 엄밀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축적체제를 어느 범위까지 설정할 수 있는지, 국가라는 개별 마디 사이의 편차를 어떻게 고려할 수 있는지, 개별 국가 내에서 이러한 체제의 변화가 지배적인 현상이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실증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론 정세적인 이유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이 포스트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성립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엄밀한 논의가 없이 말입니다. 《제국》의 약점 중의 하나가 경제적 분석의 결여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저자들은 이를 부인합니다. 저자들은 경제의 변화에 내재한 계급투쟁의 동학을 자신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하지요.), 그에 덧붙여 이러한 전제를 자신의 이론적 기반으로 삼는 것은 주관적인 정치적 독해라고 보여집니다.

다른 하나는 결론 부분입니다. 저자는 대안적 지구화의 길로 국제금융시장의 규제, 지구적 불평등의 완화 노력, 환경적 측면의 고려, 경제적 지구화와 정치적 지구화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제협력기구 설립 이 네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이것이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은 이미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안들의 맹점도 함께 고려하면서 좀 더 균형있는 서술을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결론의 무용성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근본적인 방책은 아니나 과도적인 정책 수단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참, 지구화와 관련하여 책을 한 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앞서 소개한 책과는 좀 반대되는 특징을 갖는 책입니다. 독특한 시각에서 지구화를 논하는 조금은 난해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김동택 옮김, 한길사, 2003)

제목에서도 느껴지시겠지만, 지구화를 장미와 가시의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틀이 책 속에 녹아 있습니다. 여행자/떠돌이, 천당/지옥, 위계의 상층부/하층부, 지구화/지역화 등이 그러합니다.

이 책은 지구화가 초래한 시간과 공간의 변화 그리고 인간 사회의 변화, 공간을 둘러싼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지구화, 지구화 현상 속에서의 국민 국가의 퇴락과 초국가적 세력의 대두, 지구화가 만들어낸 차별적인 인간 조건으로 인한 문화적 영역의 양극화, 지구적인 법칙과 지역적인 질서의 대비로 나타나는 양극화의 극단적 표현 등의 내용을 다룹니다.

"바우만은 지구화 현상을 분석하면서 상상력과 날카로운 분석, 사례 연구를 통해 우리가 경험해왔던 것들과 장밋빛 공약과 날카로운 장미 가시에 찔려 고생하는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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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배받지 않는다
마리아 자이데만 지음, 주정립 옮김 / 푸른나무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원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

로자와 관련한 책들이 최근 몇년 사이에 제법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그녀의 정치적 저작들이 소개되었지만, 최근에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그녀의 정치적 저작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시류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일입니다.

시류를 거스르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책을 손에 쥔 것이 책 자체의 매력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귀에 익은 역자의 이름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주정립'. 그리 이름이 알려진 분은 아닙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불과 몇 해 전에 한국으로 돌아온 분입니다.

한 다리를 건너 그 분의 이름을 여러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까지도 독일에서 맑스를 공부한 몇 안되는 분들 중 하나입니다. 맑스엥겔스 전집을 통째로 꿰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만나뵙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만나뵙지는 못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연인이었던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독립적인 두 사람의 전기적 요소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로자와 요기헤스가 느꼈을 법한 감정들을 소설적 필치로 그려내고 있어서 보는 이에 따라 상반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저자인 자이데만에 대한 정보가 책에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입니다. 이 책 앞부분에는 로자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루이제 카우츠키의 회고록도 실려 있습니다. 로자는 칼 카우츠키와 정치적으로 결별한 뒤에도 루이제와의 우정은 이어갔습니다.

로자의 일대기와 그녀의 사상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고싶은 분들에게는 파울 프뢸리히가 쓴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와 사상>을 권하는 편입니다. 아주 오래전 것으로는 석탑에서 나온 것이 있고, 2000년에 책갈피에서 다시 펴낸 것이 있습니다. 로자의 섬세한 감정들이 담긴 편지들을 선별해서 모은 책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예담)이 그것입니다.

한국에 소개된 로자의 저작들 중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대중파업론>과 함께 <러시아 혁명에 대하여> 정도는 분량도 많지 않고 비교적 읽기 쉬운 것들이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마지막 것은 아주 오래전에 문고판으로 나온 것도 있는데, 지금은 절판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여유가 되시면 자발성 혹은 자생성을 둘러싼 로자와 레닌의 논쟁에 관한 논문들도 읽어 볼만 합니다.

그런데, 로자의 저작들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될 날은 언제일까요. <자본축적>같은 핵심 저작들도 아직 번역본이 없습니다. 박종철출판사에서 <로자저작선집>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꽤 되었는데, 진척이 무척 느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자의 저작들이 제대로 출간된다한들 이것이 몇몇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에 머문다면 출간의 의미는 퇴색해버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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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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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이름이지 싶습니다. 그것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보다 철자가 많아 기억하기 벅찬던 사람입니다. 대학 시절 철학 세미나 때 고대 철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가볍게 인사 정도는 나누었습니다.

그도 아니면 영어 공부의 와중에 지문에서 그의 이름을 간혹 발견합니다. 'Aristotle'을 '아리스토텔레스'라 읽지 않고 '아리스토틀'이라고 읽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를 만날 기회도 없었고, 찾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철학도 아닌 경제를 말하는 그를 만납니다. 어쨌든 그를 우리와 다시 대면하게 해 준 홍기빈 님에게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으로 경제를 논합니다. 그러면서 현대의 '경제', '경제학'의 상식을 뒤집어 엎습니다. 고대의 영혼을 불러내어 현대의 사고를 전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뒤집어 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스레 곧 친구가 됩니다.

우리보다 먼저 친구가 되었던 사람들도 짤막하게 등장합니다. 바로 맑스와 칼 폴라니(Karl Polanyi)입니다. 맑스는 1857년 12월 21일 라살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항상 이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애정을 느껴왔는데, 고대 철학자 중 내가 그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뿐이다.”

맑스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꽤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경제학자 폴라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홍기빈 님은 또 폴라니의 사상에 크게 감화를 받은 분입니다. 이 책도 폴라니의 영전에 바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까지를 경제의 문제를 중심으로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와 이를 지탱하는 사고의 틀을 상대화해서 보게 해 줍니다. 또한 이 상대화 작업은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이루어집니다. 그 꿈은 비록 폴라니가 꾼 것이지만, 저자의 해몽 솜씨는 매우 탁월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자의 작업을 건조한 스케치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은유적인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이를 간파한 사람들은 필경 어깨가 무거워지리라 보입니다. 상대화 작업은 인식론적 단절과 전환을 위한 예비작업입니다. 이는 또한 존재론적 단절과 전환을 위한 예비음모로 이어집니다.

폴라니의 대표작인 《거대한 변환》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속좁은 음모'말고 '거대한 음모'를 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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