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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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소 도축장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12일 현지에 파견됐던 정부 검역단이 어제(26일) 돌아왔다. 한마디로 비싼 여비를 들여 쇼를 하고 돌아온 것이다.

검역단 9명은 4개조로 나뉘어 미국 14개주에 있는 31개 도축장을 둘러봤다고 한다. 그리고 예정된 결론을 아무 부끄럼 없이 내놨다. ‘아무런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동시간 빼면 열흘 남짓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조사나 제대로 했는지 심히 의문이다. 정부는 조사 과정과 그 기록부터 낱낱이 밝혀야 한다. 정말 문제점을 찾지 못한 것인지, 문제점을 찾지 않은 것인지는 그 다음에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미국의 소 도축 검사과정 자체의 부실함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농림부 검사관들의 무수한 증언과 양심 있는 사람들의 고발과 폭로가 있었다.

오로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미국 자체의 검사과정도 요식행위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SIS(Streamlined Inspection System)의 토대 위에서 검사관들은 조사를 제대로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행여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생산 라인을 세울 권한이 없다.

또 하나 중대한 문제점은 광우병 위험 등을 가리기 위해 전체 소의 1% 미만에 한해 겨우 표본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와 같은 동물은 그 자체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체로서 일반 공산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000명의 주민이 있는 한 마을에서 의사가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서 건강진단을 한 다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그 마을 주민 전체가 건강하다는 판정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마침 미국의 소 도축 실태와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주목할만한 두 권의 책이 최근에 나왔다.

<도살장> 게일 A. 아이스니츠 저/박산호 역 | 시공사 | 원제 Slaughterhouse | 2008년 06월

<독소> 윌리엄 레이몽 저/이희정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원제 Toxic | 2008년 05월

먼저 <도살장>의 일부 내용을 인용해 본다.

“업계에서 ‘토한 머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머리들을 포함해서 검사를 통과하는 소머리들은 소화가 미처 다 되지 않은 음식물로 가득 차 있어서 오염물질이 머리 바깥쪽 표면으로 새어나와 다른 소머리도 교차 오염시킨다. 머리 고기는 보통 햄버거 고기로 쓴다. “매일 몸통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회사에서 그 몸통을 다시 작업 라인에 걸기 전에 다듬거나 씻지도 않고 그대로 걸어놓는다. 바닥은 피, 기름, 배설물, 농양에서 나온 고름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상태이다. 이 중 많은 오염물질이 고압 분사기 덕분에 고기로 들어가게 된다.” “벌레들이 살판 난 거죠. 쥐새끼들이 들끓고 2인치나 되는 바퀴벌레들이 날뜁니다. 창자를 손질하는 테이블에 오줌이 흥건히 배어 있는데 종종 고기에 이 오줌이 묻어요. 회사는 구더기 방지 물약을 바닥에 뿌리지만, 하수구가 자주 차서 몸통이 레일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더러운 물이 몸통에 튀어요.”

“스미스는 목장주이자 정육 업계를 대변하는 홍보 컨설턴트, 로비스트, 여성 대변인, 정책 입안자로 활동했다. 쇠고기 판매 촉진 부문에서 업계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로 각광받은 그녀는 미국인들이 쇠고기를 더 많이 먹도록 설득하는 데 모든 경력을 다 투자했다. 그래서 미국 정육 협회(정육 업계의 노동조합)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스미스는 1989년 5월 부시 행정부의 농무부에서 마케팅과 검사 서비스를 담당하는 차관보로 임명됐다. 쇠고기 업계 제1의 대변인이자 삶의 목적이 쇠고기 소비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사람이 사실상 도축장에서 연방 정부가 지시하는 검사를 제대로 잘 실시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식용으로 쓰기 위해 도축된 동물에서 발견된 가장 독성이 강한 잔여 약물일지도 모르는 클렌부테롤은 스테로이드 같은 약으로 송아지 고기 업계에서 송아지의 성장을 빨리 촉진시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약이다. 이 약물이 남아있는 고기를 먹은 사람은 급성 중독에 걸릴 수 있다. 클렌부테롤이 들어간 사료가 거의 2백만 파운드어치나 판매됐다는 사실을 연방 정부에서 문서로 증명했는데도 미 농무부는 클렌부테롤을 투입한 송아지를 미국 국민들에게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클렌부테롤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경고하는 대신 그 조사를 실시했던 부처들은 대대적인 뉴스 발표 금지 조치를 실시했다.

다음은 <독소> 가운데 미국 축산업 시스템의 야만성을 다룬 내용들이다.

“2003년 12월, 미 농무부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다진 쇠고기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500짜리 햄버거 패티에는 여러 마리에서 나온 쇠고기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 수는 12마리에서 많게는 무려 400마리나 된다. 같은 해 CDC는 식중독과 싸우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면서, “햄버거 하나에 수백에서 수천 마리에서 나온 고기가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실로 경악할 만한 수치다. 그런 햄버거 패티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알면 더욱 당황스러워진다.“

“공장식 축산과정에서 이처럼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대량 사용함으로써, 동물들이 옮기는 박테리아에 대해 인간이 쓸 수 있는 치료법마저 무력하게 만들었다. 현재로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결과가 치료하기 복잡한 위장염이 재창궐하는 것인데, 이대로 간다면 조류독감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비만 유행병 경우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싼값에 고기를 즐기려는 입맛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공장식 축산방식을 정당화하는 건 소비자의 이런 태도다. WTO는 신중하긴 하지만 위선적인 주장을 내세우는데, 이런 태도 역시 버려야 한다. “여러 해 전부터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캄필로박터균의 인간 전염이 증가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는 알려진 바 없다.”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에서는 매년 76억 마리에 가까운 닭들이 옴짝달싹도 못한 채 차곡차곡 포개져서 사육되며, 유일한 활동이라고는 잘린 부리에 닿는 것을 쪼는 일밖에 없다. 이런 닭들의 처지가 어떨지 알아보려고 굳이 ‘현대식 양계장’ 중 한 곳을 방문할 필요는 없다. 다른 닭들의 발밑에서, 똥을 뒤집어쓰며 자라는 닭들은 라군의 유독물질을 고스란히 삼키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부커 도축장은 노스텍사스프로테인North Texas Protein이라는 이름으로 ‘렌더링rendering’사업을 하기도 한다. 렌더링이란 가축을 도축하고 남은 부산물에 열을 가해 지방, 단백질 등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는 과정을 말한다. 육류업계에서는 쉬쉬하며 밝히길 꺼려하지만, 사실 무척 필요한 과정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부커공장과 비슷한 276개의 공장에서 가축 부산물을 ‘렌더링’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넘쳐나는 가축 부산물 때문에 온 나라가 오염될 것이다. 렌더링은 크게 2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직원들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설치된 커다란 통 속에 가축의 부산물을 들이부어 분쇄한다. 렌더링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렇게 분쇄한 혼합물은 ‘셰프chef’ 감독하에 다른 통 속으로 옮겨진다. ‘셰프’는 요리사를 빗대서 쓰는 용어인데, 셰프가 역겨운 ‘수프’ 만드는 일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이 ‘수프’를 135℃에서 1시간 끓이면 표면 위로 노란 지방 덩어리가 떠오른다. 이 지방 덩어리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귀중한 원료다. 특히 화장품회사에서는 이 동물성 지방으로 립스틱·데오도란트·비누를 만든다. 지방을 걷어낸 나머지 부분은 건조하고, 또다시 분쇄기를 통과하여 가루로 만들어진다. 단백질이 풍부한 이 회색가루는 공장형 축산방식으로 키우는 가축들의 사료에 ‘영양보충용’으로 첨가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광우병 위기 때부터 알았지만, 다시 확인할 때마다 여전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회색가루, 곧 육골분은 농식품산업계가 소들을 동족의 부산물을 먹는 ‘식우종食牛種’으로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수프’ 속에 도축장에서 도축된 가축의 부산물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패스트푸드업체에서 감자를 튀기고 남은 기름이나 음식 찌꺼기 등 지방이 수 리터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팔다 남은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도 들어간다. 작업을 빨리 해야 하는데 일손은 부족하여, 직원들은 포장이나 스티로폼 그릇도 제거하지 않은 채 분쇄기에 그대로 집어넣는다. 동물보호소나 동물병원에서 온 초록색 비닐봉투도 던져 넣는다. 그 안에는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의 사체가 들어 있다. 미국에서 매년 안락사당하는 600~70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 중 일부가 이런 식으로 처리된다. 이게 다일까? 아니다. ‘수프제조법’은 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은 여러 종류의 동물 사체까지 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지막 ‘양념’으로 가금류 퇴비가 있다. 10년 전부터 닭 사육장 바닥에 쌓여 있는 배설물과 깃털까지 모아서 ‘렌더링’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육하는 닭 83%가 식중독균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이는 매우 위험하다.”

<독소>는 현재 20여 개 국가에서 이미 출간됐거나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서 제외되어 있다. 미국의 현실을 파헤친 이 책이 정작 미국에서는 출간될 예정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축산업체들의 막강하고 값비싼 로비와 압력 때문이다.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한국만큼 광우병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없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 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한 번 크게 당한 게 상징적 사건이다. 그녀는 1996년 4월 16일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은퇴한 목장 주인으로부터 죽은 소의 사체를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주입한 목장 소의 실태를 듣고 “무서워서 더 이상 햄버거를 못 먹겠다”는 말을 했다가 축산업계 및 육류가공업계로부터 무려 5개의 죄목으로 고소당한 일이 있다.

그녀는 거액의 변호사비를 들여 2002년 9월에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이로 인한 학습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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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회 - 권력에 중독된 한국 기독교 내부 탐사
김지방 지음 / 교양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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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를 거친 김지방 씨가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를 본격 비판한 책이다. 대학시절 진보적 기독학생운동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가 봐도 한국 교회는 너무나 잘못이 많습니다. 때론 저도 '이러니 개독교라는 말이 나오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는 그 신분부터가 불투명합니다. 저 사람은 어디서 어떤 경로로 목사가 됐는지 목사들끼리도 믿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예수는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했지만, 교회는 세상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보다 교회의 이익이 더 먼저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합니다. 지난날 권력 가까이에서 혜택을 입었던 한국 교회는, 최근에 와서는 아예 권력 그 자체가 되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몰지각한 행동에 한국 교회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과 조직이 앞장서고 있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교회 안에 없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어떻게 정치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지 사실을 고발하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이고, 두 번째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하께 생각해보고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 지 짚어보려 합니다."

최근 추부길 청와대 비서관의 '사탄의 무리들' 발언과 김홍도 목사의 '빨갱이 색출' 발언에 이어 6월 10일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대항한 맞불시위까지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정신세계를 조목조목 파헤친 이 책이 다시금 주목받을만 하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의 4장 '권력을 향한 의지'를, 한기총의 실체가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의 5장 '한기총은 정치 십자군인가'를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나찌에 반대하였던 그의 '이성과 양심'의 발톱만큼이라도 한국의 보수적 대형교회 목사들이 지녔다면, 지금처럼 '개독교'란 비난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회퍼는 자신의 용감한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찬하면서도, 그것은 다만 그가 이성과 양심의 목소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저자는 진보적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진보적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많이 보일 순 있다. 그러나 지금껏 아무도 그와 같은 노력을 하진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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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빠진 이'의 영성과 타락한 기독교 극복
    from 일체유심조 2008-06-10 14:47 
    이 하나를 뽑고 새로 하기 위해 서너 달을 친구가 운영하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사용하던 몸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결정적인 고통의 순간엔 몸 전체를 ...
 
 
미리내 2008-06-1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의 한국 교회는 권력의 도구이자 권력과 유착관계였던 로마 기독교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현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2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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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훌륭한 새 세상을 만들고자 30년 동안 밤을 낮 삼아 뛰어다녔던 불요불굴한 우리 조선의 혁명가 이현상은 그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만들었던 남조선노동당이 사라지면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돌아가신 뒤에도 그 넋이나마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지리큰뫼의 건공중을 떠도는 중음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삼룡 선생은 최후진술에서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소이다. 나를 더 이상 욕보이지 말고 죽여주시오" 하고 짧게 끊었다는데 이현상 선생은 무슨 말을 남길 틈도 없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역사라는 이름의 장강대하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니, 기억 또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 그 기억을 적어두는 기록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에서는 역사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역사가라는 사람들은 우리 조선의 혁명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 김성동, <이현상 평전> 발문 가운데

작년에 실천문학사에서 이 책이 나왔을 때 알만한 사람들한테는 꽤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이 충분하진 않다 하더라도 작가 안재성이 채우는 역사의 빈 칸 하나하나는 큰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작가 김성동이 이 책의 발문을 쓴 것은 너무나 맞춤했다. 누가 감히 이 책의 발문을 쓰겠다고 덤벼들 수 있었겠는가. 그와 그의 창작 세계에는 선고(先考)의 피가 아직 생생히 흐르고 있다.

이제까지 혁명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던 지리산 빗점골을 10번이 조금 못되게 다녀왔다. 혼자서도 여러번 갔었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기도 했다. 물론 이현상의 기일에 맞춰 다녀와 본 적은 없다. 올해는 한 번 계획을 해 볼 요량이다.

갈 맘이 있으신 분들은 미리 염두에 두시길. 그리고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 가기 전에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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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가, 한국 사회 재설계도
진보정치연구소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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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누가 끊을 것인가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진보정치연구소 지음, 후마니타스, 2007) 출간에 부쳐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를 사흘 남겨두고 공개된 이명박 후보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막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지금,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BBK라는 영문 세 글자만 머릿속에 남는 대선으로 마무리 될 것 같다. 대통령 선거라는 공간이 정책과 가치, 비전의 대결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은 정말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고만 것 같아 씁쓸하다.

어제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사회당 중앙당사로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보낸 것이었다.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진보정치연구소 지음, 후마니타스, 2007)라는 책이었는데, 1판 1쇄 발행일이 2007년 12월 10일자였다. 내용을 대략 훑어보고 나니 불현 듯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타이밍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좀 더 일찍 발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비전과 민주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코리아연방공화국 비전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토론되고 경쟁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비전과 한국사회당의 사회적 공화국 비전이 같은 반열에서 토론될 수 있는 타이밍도 놓쳤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비전은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것이기도 하다. 대선이 끝나가는 시점에 등장한 이러한 국가 비전은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 내에서 벌어질 논쟁의 신호탄과 같은 존재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을 넘어서서 진보정치 전체의 혁신과 질서 재편을 위한 불쏘시개로도 읽혀진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사회 국가 vs 사회적 공화국

독일 헌법에 녹아 있는 ‘사회 국가’ 혹은 ‘사회적 국가’ 개념은 사실 추상적이며 포괄적인 지향을 담고 있는 말이다. 베네수엘라 헌법에도 ‘사회 국가’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 국가’라는 개념은 독일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물론 독일 내에서도 각 정당마다 ‘사회 국가’에 대한 이해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아무튼 진보정치연구소는 ‘사회 국가’라는 표현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비전에 ‘공공’, ‘연대’, ‘참여’라는 특성을 부여했다. 이 중에서 특히 ‘참여’ 부분은 유럽의 사회 국가 혹은 후견 국가의 문제점으로 누차 지적되어 온 것이어서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국사회당이 굳이 ‘사회 국가’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고 ‘사회적 공화주의’, ‘사회적 공화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에도 이러한 맥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급부와 사회권의 문제로만 이해되어 온 사회 국가 개념을 근대 국가 발생의 최초형태인 정치적 국가의 가능조건으로 파악한다. 즉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개념은 사회 국가의 급부중심의 사고방식을 넘어서서 사회권과 참정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전자를 후자의 전제로서 인식한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참정의 물질적 전제로서 사회 국가를 강조하는 것이며 국가에 의한 급부체계를 참정의 조건으로부터 독립시켜 파악하지 않는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사회 국가나 '분배정의'의 상에 묶여 있지 않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자유롭고 대등한 시민의 정치적 공동체는 오직 물질적 사회적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의 표현이다. 바로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전에 사회민주주의에 의해 추진된 사회 국가 또는 복지 국가와 사회적 공화주의의 차별성이 놓여 있다. 사회적 급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참여의 전제조건, 더 나은 사회형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사회적 공화주의가 급부를 강조하는 대신에 '급부를 통한 참여'를 강조하는 이유는 급부체계를 통해 대중의 참여를 역으로 봉쇄하는 후견 국가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후견 국가의 폐해는 복지확충의 의의를 물질적 복지 그 자체가 아니라 복지를 통한 사회적 과정에의 참여에서 찾음으로써 극복될 것이다."(금민, <탈배제 강령과 사회적 공화주의>)

위의 인용은 사회적 공화주의와 기존 사회 국가의 급부 중심적 사고방식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간단히 정리한 부분이다. 여기서 “급부체계를 통해 대중의 참여를 역으로 봉쇄하는 후견국가”라는 정의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관련하여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이남석 지음, 책세상, 2001)라는 책에 마침 이러한 설명을 보충할 수 있는 대목이 있어 몇 부분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사회적 공화주의와 사회 국가와의 차별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복지 국가는 영원한 경쟁이 낳은 희생자 집단을 구제하려는 기획이다. 복지는 자유주의 경제 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의 실패를 정치가 예방하고 수습해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를 제도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경영적 또는 관료적 합리성에 의해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복지 국가는 “이 모든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부자유의 국가이다”라는 말처럼 자유주의의 탈정치화 기획을 더 강화하여, 정치로부터의 소외 현상을 강화시켰다. 복지 국가 하에서 “다원주의라고 하는 현실 그 자체도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으며 기만적이다. 복지 국가의 현실은 조작과 동질화를 축소시키기보다는 확대하며, 불행한 통합을 제지하기보다는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위의 책, 138~139쪽)

“복지 국가는 정치에 의한 경제의 보정을 목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유주의가 의도한 탈정치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복지를 도입한 후 ‘소수 정당에 대한 투표, 총선거에서의 낮은 투표자 수, 지방 선거에서의 보잘것없는 낮은 투표자 수, 참여와 항의에 있어서 이슈 중심적인 운동’이 발생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복지 국가의 진정한 위기는 흔히 말하듯 복지 국가 재정의 위기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참여 의지의 결여, 즉 정치 참여 부재에 있다.”(위의 책, 140쪽)

“관료적 합리성은 ‘국가 관료와 전문가의 힘을 증대시키는’ 반면, 복지 혜택의 수혜자를 정치의 주체가 아닌 복지 정책의 객체, 즉 복지의 수혜자로 바라본다. 복지의 수혜자들은 정치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복지가 주는 혜택을 받으며, 정치 과정에서 스스로 멀어진다. 복지의 수혜자들은 대체로 배제된 집단이거나 차이 집단이다.”(위의 책, 140~141쪽)

한편,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는 ‘평화 공동체’와 ‘녹색’ 지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국사회당 또한 사회적 공화국은 ‘평화국가’이자 ‘녹색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한 가지 더 덧붙여 한국사회당은 ‘세계시민국가’를 주장하고 있는데, 진보정치연구소 또한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진보진영 일각을 명확히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크게 차이나는 부분은 없다.

진보정당운동의 전면적 재구성, 누가 앞장서고 책임질 것인가

진보정치연구소는 “민주노동당이 사회 국가 운동의 정치 부대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당의 전면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민주노동당이 노조운동에 의존만 하던 허약 체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프로그램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대중조직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자기 인식이다. 이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혁신의 화두를 던진 것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진보정치연구소는 버려야 할 유산과 새로 맞아들여야 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0세기에 한때 진보적인 의미를 지녔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과거의 유산들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이를테면 민족주의가 그러하다. 이런 ‘20세기 진보’는 이제 극복의 대상이다. 진보정당은 우선 당 안에서부터 20세기의 이 낡은 유산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리고 생태주의, 평화주의, 여성주의 등으로 표상되는 ‘21세기 진보’의 흐름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나는 진보정치연구소가 일단 큰 방향은 잘 잡았다고 높이 평가하고 싶다.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많은 세세한 질문들은 여기서 생략해도 좋다. 그 방향에 대한 합의를 좀 더 넓히고 공고히 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이 대통령 선거 직후 내부 평가 논란과 총선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을 둘러싼 논란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진보정치의 새로운 좌표에 대한 생산적이고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와 한국사회당의 ‘사회적 공화국’, 민주노동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서로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면 한다. 그 과정에 한국사회당 또한 최선을 다해 참여할 뜻이 있다.

진보정치연구소는 마지막으로 “누가 진보정당운동의 전면적 재구성에 앞장서고 그것을 책임질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졌다. 한국사회의 위기와 진보정치의 위기가 착종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누가 끊을 것인가라는 문제다. 진보정치의 혁신을 바라는 모두가 알렉산더 역을 자처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진보정치 혁신의 논의가 사회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선거라는 사회적 행위 과정 속에서 진보정치 혁신의 의제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하느냐 혹은 투표하지 않느냐는 그 자체로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기 위한 의미 있는 행위여야 한다. 주어진 기회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진보정치의 혁신과 재편을 앞당길 수 있는지 현명한 판단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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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결이 안 되는
만들어짐의 과정

꽃도
암꽃술과 수술로 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벌레나 바람이 찾아와
암꽃술과 수술을 연결하는 것

생명은
제 안에 결여를 안고
그것을 타자가 채워주는 것

일본의 시인 요시노 히로시의 '생명'이라는 시다. 장회익 교수가 최근 펴낸 <공부도둑>(생각의나무)이라는 책에서 이 시를 소개했다. 그는 “아직 생명의 정의를 바꾸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안과 바깥이 함께해야 비로소 생명이 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 시”라고 설명한다.

장회익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이 95년도 여름이었으니 50대 후반에 뵌 건데, 벌써 칠순이 넘으셨다. 그제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신 건 없는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에 녹색대학 건립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셔서 약간 놀란 적이 있었다.

장회익 교수 책을 처음 접한 건 1990년도에 나온 <과학과 메타과학 - 자연과학의 구조와 의미>(지식산업사)이다. 당시에도 장 교수는 생명의 문제에 천착했다. '우주적 생명', '개체생명', '보생명'과 같은 개념도 그 책에 등장했다. 지금은 이 개념이 '온생명', '낱생명', '보생명'이란 표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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