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소 도축장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12일 현지에 파견됐던 정부 검역단이 어제(26일) 돌아왔다. 한마디로 비싼 여비를 들여 쇼를 하고 돌아온 것이다.

검역단 9명은 4개조로 나뉘어 미국 14개주에 있는 31개 도축장을 둘러봤다고 한다. 그리고 예정된 결론을 아무 부끄럼 없이 내놨다. ‘아무런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동시간 빼면 열흘 남짓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조사나 제대로 했는지 심히 의문이다. 정부는 조사 과정과 그 기록부터 낱낱이 밝혀야 한다. 정말 문제점을 찾지 못한 것인지, 문제점을 찾지 않은 것인지는 그 다음에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미국의 소 도축 검사과정 자체의 부실함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농림부 검사관들의 무수한 증언과 양심 있는 사람들의 고발과 폭로가 있었다.

오로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미국 자체의 검사과정도 요식행위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SIS(Streamlined Inspection System)의 토대 위에서 검사관들은 조사를 제대로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행여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생산 라인을 세울 권한이 없다.

또 하나 중대한 문제점은 광우병 위험 등을 가리기 위해 전체 소의 1% 미만에 한해 겨우 표본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와 같은 동물은 그 자체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체로서 일반 공산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000명의 주민이 있는 한 마을에서 의사가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서 건강진단을 한 다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그 마을 주민 전체가 건강하다는 판정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마침 미국의 소 도축 실태와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주목할만한 두 권의 책이 최근에 나왔다.

<도살장> 게일 A. 아이스니츠 저/박산호 역 | 시공사 | 원제 Slaughterhouse | 2008년 06월

<독소> 윌리엄 레이몽 저/이희정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원제 Toxic | 2008년 05월

먼저 <도살장>의 일부 내용을 인용해 본다.

“업계에서 ‘토한 머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머리들을 포함해서 검사를 통과하는 소머리들은 소화가 미처 다 되지 않은 음식물로 가득 차 있어서 오염물질이 머리 바깥쪽 표면으로 새어나와 다른 소머리도 교차 오염시킨다. 머리 고기는 보통 햄버거 고기로 쓴다. “매일 몸통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회사에서 그 몸통을 다시 작업 라인에 걸기 전에 다듬거나 씻지도 않고 그대로 걸어놓는다. 바닥은 피, 기름, 배설물, 농양에서 나온 고름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상태이다. 이 중 많은 오염물질이 고압 분사기 덕분에 고기로 들어가게 된다.” “벌레들이 살판 난 거죠. 쥐새끼들이 들끓고 2인치나 되는 바퀴벌레들이 날뜁니다. 창자를 손질하는 테이블에 오줌이 흥건히 배어 있는데 종종 고기에 이 오줌이 묻어요. 회사는 구더기 방지 물약을 바닥에 뿌리지만, 하수구가 자주 차서 몸통이 레일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더러운 물이 몸통에 튀어요.”

“스미스는 목장주이자 정육 업계를 대변하는 홍보 컨설턴트, 로비스트, 여성 대변인, 정책 입안자로 활동했다. 쇠고기 판매 촉진 부문에서 업계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로 각광받은 그녀는 미국인들이 쇠고기를 더 많이 먹도록 설득하는 데 모든 경력을 다 투자했다. 그래서 미국 정육 협회(정육 업계의 노동조합)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스미스는 1989년 5월 부시 행정부의 농무부에서 마케팅과 검사 서비스를 담당하는 차관보로 임명됐다. 쇠고기 업계 제1의 대변인이자 삶의 목적이 쇠고기 소비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사람이 사실상 도축장에서 연방 정부가 지시하는 검사를 제대로 잘 실시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식용으로 쓰기 위해 도축된 동물에서 발견된 가장 독성이 강한 잔여 약물일지도 모르는 클렌부테롤은 스테로이드 같은 약으로 송아지 고기 업계에서 송아지의 성장을 빨리 촉진시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약이다. 이 약물이 남아있는 고기를 먹은 사람은 급성 중독에 걸릴 수 있다. 클렌부테롤이 들어간 사료가 거의 2백만 파운드어치나 판매됐다는 사실을 연방 정부에서 문서로 증명했는데도 미 농무부는 클렌부테롤을 투입한 송아지를 미국 국민들에게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클렌부테롤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경고하는 대신 그 조사를 실시했던 부처들은 대대적인 뉴스 발표 금지 조치를 실시했다.

다음은 <독소> 가운데 미국 축산업 시스템의 야만성을 다룬 내용들이다.

“2003년 12월, 미 농무부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다진 쇠고기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500짜리 햄버거 패티에는 여러 마리에서 나온 쇠고기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 수는 12마리에서 많게는 무려 400마리나 된다. 같은 해 CDC는 식중독과 싸우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면서, “햄버거 하나에 수백에서 수천 마리에서 나온 고기가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실로 경악할 만한 수치다. 그런 햄버거 패티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알면 더욱 당황스러워진다.“

“공장식 축산과정에서 이처럼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대량 사용함으로써, 동물들이 옮기는 박테리아에 대해 인간이 쓸 수 있는 치료법마저 무력하게 만들었다. 현재로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결과가 치료하기 복잡한 위장염이 재창궐하는 것인데, 이대로 간다면 조류독감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비만 유행병 경우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싼값에 고기를 즐기려는 입맛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공장식 축산방식을 정당화하는 건 소비자의 이런 태도다. WTO는 신중하긴 하지만 위선적인 주장을 내세우는데, 이런 태도 역시 버려야 한다. “여러 해 전부터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캄필로박터균의 인간 전염이 증가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는 알려진 바 없다.”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에서는 매년 76억 마리에 가까운 닭들이 옴짝달싹도 못한 채 차곡차곡 포개져서 사육되며, 유일한 활동이라고는 잘린 부리에 닿는 것을 쪼는 일밖에 없다. 이런 닭들의 처지가 어떨지 알아보려고 굳이 ‘현대식 양계장’ 중 한 곳을 방문할 필요는 없다. 다른 닭들의 발밑에서, 똥을 뒤집어쓰며 자라는 닭들은 라군의 유독물질을 고스란히 삼키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부커 도축장은 노스텍사스프로테인North Texas Protein이라는 이름으로 ‘렌더링rendering’사업을 하기도 한다. 렌더링이란 가축을 도축하고 남은 부산물에 열을 가해 지방, 단백질 등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는 과정을 말한다. 육류업계에서는 쉬쉬하며 밝히길 꺼려하지만, 사실 무척 필요한 과정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부커공장과 비슷한 276개의 공장에서 가축 부산물을 ‘렌더링’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넘쳐나는 가축 부산물 때문에 온 나라가 오염될 것이다. 렌더링은 크게 2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직원들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설치된 커다란 통 속에 가축의 부산물을 들이부어 분쇄한다. 렌더링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렇게 분쇄한 혼합물은 ‘셰프chef’ 감독하에 다른 통 속으로 옮겨진다. ‘셰프’는 요리사를 빗대서 쓰는 용어인데, 셰프가 역겨운 ‘수프’ 만드는 일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이 ‘수프’를 135℃에서 1시간 끓이면 표면 위로 노란 지방 덩어리가 떠오른다. 이 지방 덩어리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귀중한 원료다. 특히 화장품회사에서는 이 동물성 지방으로 립스틱·데오도란트·비누를 만든다. 지방을 걷어낸 나머지 부분은 건조하고, 또다시 분쇄기를 통과하여 가루로 만들어진다. 단백질이 풍부한 이 회색가루는 공장형 축산방식으로 키우는 가축들의 사료에 ‘영양보충용’으로 첨가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광우병 위기 때부터 알았지만, 다시 확인할 때마다 여전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회색가루, 곧 육골분은 농식품산업계가 소들을 동족의 부산물을 먹는 ‘식우종食牛種’으로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수프’ 속에 도축장에서 도축된 가축의 부산물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패스트푸드업체에서 감자를 튀기고 남은 기름이나 음식 찌꺼기 등 지방이 수 리터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팔다 남은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도 들어간다. 작업을 빨리 해야 하는데 일손은 부족하여, 직원들은 포장이나 스티로폼 그릇도 제거하지 않은 채 분쇄기에 그대로 집어넣는다. 동물보호소나 동물병원에서 온 초록색 비닐봉투도 던져 넣는다. 그 안에는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의 사체가 들어 있다. 미국에서 매년 안락사당하는 600~70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 중 일부가 이런 식으로 처리된다. 이게 다일까? 아니다. ‘수프제조법’은 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은 여러 종류의 동물 사체까지 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지막 ‘양념’으로 가금류 퇴비가 있다. 10년 전부터 닭 사육장 바닥에 쌓여 있는 배설물과 깃털까지 모아서 ‘렌더링’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육하는 닭 83%가 식중독균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이는 매우 위험하다.”

<독소>는 현재 20여 개 국가에서 이미 출간됐거나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서 제외되어 있다. 미국의 현실을 파헤친 이 책이 정작 미국에서는 출간될 예정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축산업체들의 막강하고 값비싼 로비와 압력 때문이다.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한국만큼 광우병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없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 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한 번 크게 당한 게 상징적 사건이다. 그녀는 1996년 4월 16일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은퇴한 목장 주인으로부터 죽은 소의 사체를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주입한 목장 소의 실태를 듣고 “무서워서 더 이상 햄버거를 못 먹겠다”는 말을 했다가 축산업계 및 육류가공업계로부터 무려 5개의 죄목으로 고소당한 일이 있다.

그녀는 거액의 변호사비를 들여 2002년 9월에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이로 인한 학습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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