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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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전 경주:역전 마라톤은 주자와 주자가 어깨띠(tasuki)를 건네받는 마라톤 릴레이를 말한다. '역전'(ekiden)은 station(駅)과 transmit(伝)가 합쳐진 말로, 역전 마라톤 강국 일본에서 처음 유래됐다. 역전 마라톤은 1917년 요미우리 신문이 일본의 도쿄 수도 이전을 기념하기 위해 3일간 교토~도쿄 508km를 달리는 대회를 개최한 것이 시초. '역전'이라는 말은 당시 요미우리 신문 토키 제마로 사회부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때 일본은 길가를 따라서 역이 일정한 간격으로 위치해 있었는데, 역전 주자들은 역과 역 사이를 달렸기 때문이다. 특히 하코네 대학 역전 마라톤은 역전마라톤의 꽃이다. 
 

여기, 육상선수도 아니면서 역전경주에 참가하겠다고 열심히 연습하는 10명의 청년들이 있다. 운명처럼 우연히 한자리에 모이게된 이들은 왜 전문선수도 어렵다하는 이 경기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달리고 싶지만 더는 달릴 수 없었던 고교시절의 육상선수 기요세는 간세이 대학에 들어간 후, 지쿠세이소라는 육상부 합숙소를 관리하며 참을성있게 달릴 만한 선수들을 하숙생으로 모아들였다. 9명에서 한 명이 모자라던 그때 달리기 위해서 태어난듯한 가케루를 만나며 기요세의 꿈은 현실로 다가온다. 이들(기요세와 가케루)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사실 육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검도를 했다는 유키, 고교시절 육상선수 경험이 있는 니코짱(지금은 이름이 말해주듯 담배를 달고 사는), 축구선수를 했던 조타와 조지 쌍둥이, 고교시절 축구부였던 킹, 유학생 흑인 무사, 깊은 산골 출신으로 걷는데는 타고난 신동, 운동과는 눈 한 번 마주친적 없을 듯한 만화광 왕자까지. 경험도 경험이지만 달리기에 대한 꿈도 호감도 없던 그들을 달리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요세는 그만의 본능으로 그들 속에 잠재해 있는 달리고자 하는 열망을 알아차린 것이다.그리고는 반협박을 통해 모두의 승낙을 얻게 된다. 

이야기는 막상 시작은 참신했지만, 그 끝은 불을 보듯 뻔하긴 하다. 주위의 조롱과 불신을 한껏 받으며 꿋꿋하게 참아낸 외인구단이 의외의 호투로 역전에 성공하여 모두를 놀라게 한다는 상투적인 스토리 그대로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인물들의 잔잔하면서도 친근감있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달리기를 소재로 한 스포츠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네 인생이 담겨있다. 마치 인생은 이어달리기를 하더라도 결국엔 혼자 뛰는 것이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달리면서 그간의 갈등에 직면하고 자신에게 질문하며 답을 찾아간다. 서로간의 오해와 미움도 생기지만, 그런 빗줄기가 땅을 굳히듯 관계도 두터와지게 만든다. 관심 밖이었던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기꺼이 응원하게 된다. 정상을 꼭 밟겠다던 욕망은 1등만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정상(top)이란, 의미의 차이 아닐런지.

결말은 그렇다. 이들은 1등을 하진 못했다. 했다면, 그건 리얼리티를 무시한 것일수도 있다. 우린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나. 그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꿈은 실현되었다. 간절히 바라고 꿈을 향해 쉼없이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요세와 가케루를 제외하곤 달리기에 전혀 관심없던 8명은 의외의 순간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젊음은 무엇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하는 데에, 그 가능성을 품고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도전이 말해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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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뫼비우스 서재
존 하트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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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말이 참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일까?
그 경계의 모호함을 유지하며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형사사건 변호사로 오랫동안 일했다는 작가의 이력에서 소설의 치밀함은 이미 예견 되었다.
주인공은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쥔 최고의 변호사의 아들(워크)이며 그 또한 변호사이다.
복잡한 가정사를 비밀로 한 워크 피킨스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다. 아니 이미 불행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돈 밖에 모르며 여자를 우습게 아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사는 힘없는 어머니,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로 부터 멸시와 학대를 받는 딸, 아버지의 그늘에서 지시에 따라 살며 인생을 저당 잡힌 아들. 이 가족의 어디에도 가족의 기본인 사랑과 존중, 이해는 없다. 

어느날, 어머니가 죽은 그날, 아버지가 실종 된다. 전화를 받고 나간 아버지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아직은 어떤 추리도 되지 않았다. 그것이 스릴러 소설의 매력이지 않은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또한 의문 투성이다.
이야기는 인물들과 그들의 배경을 설명하는 자세한 묘사로 초반부는 책장 넘김이 빠르지 못하다. 여동생을 범인으로 생각하는 워크가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쓸 계산으로 사건에 뛰어들며 속도가 붙게된다. 그러면서 새로이 나타나는 인물들이 이야기의 폭을 넓혀주며 더욱 사실감있게 다가온다. 

특히나 교도소의 모습, 경찰과 변호사의 관계, 법률적 해석 등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용의자로 지목되며 구속된 워크가 자신의 권리와 검찰이 범한 우를 꼬집는 장면에서 후련함과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늘 어긋나기만 했던 동생과의 관계와 형식적이었던 부부생활, 지키지 못했던 진정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게 했고, 그가 잃었던 정체성을 찾게 해주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다. 그것은 남들과 완전히 격리되어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편집한다. 우리 스스로 타협도 하고 거짓말도 하는 것이다....내가 깨달은 사실은 이것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에게 암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있던 종양이 드러내지며 새로운 삶이 탄생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이제 결말을 남겨두고 이야기는 긴박하게 달려간다. 누가 범인일까? 누가 거짓말을 하고있을까?
작가는 이 부분에서 독자를 보기좋게 따돌려야 성공하는 것이다. 독자도 그걸 바라게 되고.
물론,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 나는 범인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토록 추잡한 인간이었다면 죽음도 호사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책읽은 보람을 느꼈다. 

촉망 받는 신예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이다. 첫 소설이지만 그는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가고, 진지하게 다가가며, 깊이 있는 스릴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다음 작품을 부푼 기대감을 안고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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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남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2
스와 데쓰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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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 "체리파하", "타퐁튜"

왜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단어들을 굳이 사람들에게 말하려 했을까?

누가 알아 듣기를 바라지 않으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 우리는 그를 비정상이라 볼 것이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라 했다. 그런 명제로 보자면 그는 분명 비정상이다.

언어란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나를 표현하여 듣는 이가 이해하길 바라는 서로간의 교류이다.

또한 인간은 무리 속에 섞이길 바란다. 그 무리와 같은 언어로 소통하며 소속되길 바란다. 외톨이가 되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만의 세계를 만들고 오히려 세상을 따돌렸다.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숙부와 숙모의 일기장을 발견하며, 독특했던 숙부를 소설로 옮기는 과정의 기록이다.

어려서 말을 더듬었던 숙부는 어느날 갑자기 더이상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 있던 말더듬이의 세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언어가 갖는 법칙이 그를 옭아매고 가둬버리는 것처럼 그는 불편해했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언어적인 회의에 빠지고 통념적인 것의 이면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반골정신을 으뜸으로 삼으며

<안드로메다 남자>로 거듭 난 것이다.

 

그렇다면 안드로메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가 말하려는 '안드로메다'는 비정상도, 특이함도 아닌 그저 세계의 바깥쪽,

저 안드로메다 방향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회에 무언가를 끼치려는 것이 아닌 그저 어딘가 무중력의 장소에서 한숨 쉬어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숙부는 숙모의 죽음 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가 <안드로메다>로 간 것은 아닐까? 

 
화자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과정을 일기를 인용하며 보여주고있다. 소설이 체 완성되기 전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어딘가 모순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특징이다. 아직 소설이 되지 않은 소설. 독특하다 할 수 있지만, 정리 되지 않는 생소함은 남는다.

누구에게나 안드로메다를 향하고픈 열망이 있지 않을까? 혼자 남겨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던 [튤립 남자]처럼 바깥쪽 어딘가를 향해 나만의 표현으로 현실의 무게를 잊고 무중력 상태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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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D - 기계치도 사랑한 디지털 노트
김정철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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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 아니, 디지털!

디지털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0과 1로 이루어진 연산체계이며, 아날로그의 반댓말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디지털시대에 살면서도, 많은 디지털기계들을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은 자세히 몰랐던 것이다. 
내 주위에도 디지털 제품들이 많다. 컴퓨터, 휴대폰, 카메라, PMP, MP3플레이어, 텔레비젼...많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제각각의 사연을 담고있고 모양과 역사도 다양하다.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이미지를 섞어 잘 풀어가고있다.
컴퓨터의 시초부터 컴퓨터를 구입할 때의 유의점에 이르기까지 도움되는 많은 내용들이 고맙게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차세대 디지털 아이템으로 미래의 디지털 문화를 살짝 엿보게 된다.



 

 

다양한 제품만큼이나 제조사나 브랜드마다의 특징도 세세히 나와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게다가 곁들여있는 사진 또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이미 디지털을 완전히 섭렵하신 분들이라면 다소 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에 문외한인 분들, 그야말로 기계치인분들, 앞서가는 디지털제품들이 뭔지 복잡하다 생각하실 분들에겐 
아주 유용할 것이다.


나와같은 부모들에겐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게임기나 휴대폰들이 어떤 것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어떤 것을 사야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조력자 역할을 책은 충분히 할 것이다. 
디지털을 배우는 새로운 문을 열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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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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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이 세상에는 진짜와 또다른 진짜가 존재하기도 한다.

 

 

 


TV프로그램 중에 헤어진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게 있다. 
가끔 그것을 보며 엄마가 우리 남매를 버리고 어딘가로 가지않고 끝까지 잘 키워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 버리고 사라졌다 뒤늦게 찾아나선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기에. 엄마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여자들은 대부분 가정과 자식을 버리고 나갈만큼 힘겹게 살았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가정 속에 섞여 하나되지 못하고 폭군으로 군림해대는 남편과, 쪼들릴대로 쪼들려 희망이라고는 쥐구멍만큼도 보이지 않았던 절망을 받아들이고 홀로 자식을 키우며 돈도 벌어야했던...휴~ 
엄마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거다.

 

처음에는, 술만 마셔대고 무능해 보이는 아비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있는 어미를 둔 연이를 동정했다.결국에 도망치듯 집을 나간 엄마로 인해 연이는 더욱 불쌍해졌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감정은 매마른듯이 무덤덤한 그애가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아무쪼록 더 비뚫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애를 응원했다. 헌데, 예상 밖으로 연이는 강했다. 
그 나이에 내게 없던 강인함을 그애는 품고 있었다. 
든든한 후원자이며 편한 머슴같은 친구 병욱은 연이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모두 드러내고 숨김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 살며 그런 친구 몇을 둘 수 있을까? 
너무 가진게 없어서 그냥 솔직해지는 것이라 해도. 
나는 이제 연이가 부럽다. 그런 친구를 둔 연이를 더는 동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운명 속에서 열심히 살고있는 그녀를 존중한다. 그녀의 삶을 존중한다.  

작가가 연이를 통해 표현하는 세상은 냉소적이며 기발하고 재미있으며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전아리'라는 작가를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시키게 되었다.  

"때가 서리처럼 허옇게 낀 팔꿈치를 허공에 쳐든 채로 역시나 때가 낀 뒷목과 겨드랑이를 부지런히 긁어대는 아이.... 그애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오래 묵은 젓갈 냄새가 났다." ---p.47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집 안에 큼직한 바늘이 있다면 학생 입부터 꿰매고 오세요."---p.60
"사람은 자고로 화를 낼 줄 아는 동물이어야 한다. 마냥 네네, 하며 굽실거리고 있으면 지갑 뺏어가고 외투 벗겨가고 나중에는 배꼽까지 떼어가는 게 세상 아니던가"---p.126 

혼자 웃음짓다, 씁쓸하게 생각에 잠긴다.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독자로선 큰 선물과도 같다. 그만큼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니까.

 11살 부터 19살 까지의 연이를 보며 나의 소녀시절을 떠올리고 추억해 본다. 
내 안에는 연이는 없다. 나와 참 다르구나 싶은 삶을 산 연이를 친구로 삼고싶다.

TV프로그램 중에 헤어진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게 있다.
가끔 그것을 보며 엄마가 우리 남매를 버리고 어딘가로 가지않고 끝까지 잘 키워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 버리고 사라졌다 뒤늦게 찾아나선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기에.
엄마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여자들은 대부분 가정과 자식을 버리고 나갈만큼 힘겹게 살았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가정 속에 섞여 하나되지 못하고 폭군으로 군림해대는 남편과, 쪼들릴대로 쪼들려 희망이라고는 쥐구멍만큼도 보이지 않았던 절망을 받아들이고 홀로 자식을 키우며 돈도 벌어야했던...휴~
엄마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거다.

 
처음에는, 술만 마셔대고 무능해 보이는 아비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있는 어미를 둔 연이를 동정했다.결국에 도망치듯 집을 나간 엄마로 인해 연이는 더욱 불쌍해졌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감정은 매마른듯이 무덤덤한 그애가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아무쪼록 더 비뚫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애를 응원했다. 헌데, 예상 밖으로 연이는 강했다. 그 나이에 내게 없던 강인함을 그애는 품고 있었다.
든든한 후원자이며 편한 머슴같은 친구 병욱은 연이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모두 드러내고 숨김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 살며 그런 친구 몇을 둘 수 있을까? 너무 가진게 없어서 그냥 솔직해지는 것이라 해도.
나는 이제 연이가 부럽다. 그런 친구를 둔 연이를 더는 동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운명 속에서 열심히 살고있는 그녀를 존중한다. 그녀의 삶을 존중한다. 
 

작가가 연이를 통해 표현하는 세상은 냉소적이며 기발하고 재미있으며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전아리'라는 작가를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시키게 되었다. 
 

"때가 서리처럼 허옇게 낀 팔꿈치를 허공에 쳐든 채로 역시나 때가 낀 뒷목과 겨드랑이를 부지런히 긁어대는 아이.... 그애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오래 묵은 젓갈 냄새가 났다." ---p.47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집 안에 큼직한 바늘이 있다면 학생 입부터 꿰매고 오세요."---p.60

"사람은 자고로 화를 낼 줄 아는 동물이어야 한다. 마냥 네네, 하며 굽실거리고 있으면 지갑 뺏어가고 외투 벗겨가고 나중에는 배꼽까지 떼어가는 게 세상 아니던가"---p.126

 혼자 웃음짓다, 씁쓸하게 생각에 잠긴다.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독자로선 큰 선물과도 같다. 그만큼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니까. 

11살 부터 19살 까지의 연이를 보며 나의 소녀시절을 떠올리고 추억해 본다.
내 안에는 연이는 없다. 나와 참 다르구나 싶은 삶을 산 연이를 친구로 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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