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이라고 누가 그래요? - 게으른 농부 이영문의 자연에서 일군 지혜
이영문 지음 / 한문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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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주인이라고 누가 그래요?

  자그마한 화단이 있는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나무와 앵두나무 목련를 비롯하여 하늘매발톱, 참나리, 꽃마리등 근 1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잡초라 하는 꽃마리, 제비꽃, 바랭이등도 화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과도한 번식만 하지 않으면 적당히 내버려둡니다.

 

 서로 얼기설기 그렇게 오순도순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화단에 꽃종류만 있는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적으로 놓아두면 꽃종류들이 망초와 같은 잡초(?)와 경쟁하면서 보다 싱싱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종이 너무 무성하여지면 사람욕심으로 제거를 합니다. 그래도 꽃종류나 나물종류가 무성하여지면 웬만해서는 내버려두지만 잡초가 무성해지면 나의 손길은 가차없습니다. 잡초에 대한 편파적인 나의 손길을 보면서 이기심에 나도 놀라게 됩니다. 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낮의 길이를 연장하고 싶은 마음과 같다고나할까요. 

 

 그렇게 도시의 밤은 자정이 되어서야 비로서 서서히 밤으로 돌아갑니다. 관행농법은 낮이 계절에 따라 3~6시간이나 연장되어야 하는 도시문명과 꼭 닮았습니다. 밤의 중요성을 3~6시간 빼앗는 것이지요. 모든 기존의 관행농법 즉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농사는 점점 땅의 힘을 뺏어갑니다. 과학농법이라고 하는 것이 화학농법이고 바로 지구를 약탈하는 약탈농법인 것입니다.  현대 도시문명사회는 사람이 지구의 주인인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만이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방식으로 도시생활이 이루어지고 그 도시민의 근거를 마련하는 농법이 바로 화학농법인 것입니다.


 그러한 문명이지만 그래도 농사만은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농민이 있습니다. 바로 태평농법을 개발한 이영문이라는 사람입니다. 6헥타아르의 벼농사를 혼자서 씨뿌리고 수확을 합니다. 그 것도 단 하루만에 ...적어도 이책을 보면 그렇습니다. 1만8000평(6헥타아르)을 200평을 한마지기로 하면 환산하면 90마지기농사 입니다. 비료 농약을 하나도 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04년 마지기당 전국 쌀  평균 생산량을 대입하여보면 약 500가마를 생산하고 벼로 계산하면 1000석은 나오는 대농입니다. 이모작을 하니 역시 겉보리 2004년 전국 평균기준으로 하면 337가마를 생산합니다.


  이 사람의 농법으로 생산되는 양도 대단하지만 이 농법이 갖은 의미에 귀 기우리다보면 사람도 역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이 보입니다. 예방접종과 수시로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양약을 먹고 바르고 째고 수술하는 양의학은 체력을 약탈하는 약탈식 화학농법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땅에 볍씨를 직파를 하면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듯이 건강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비료농약범벅이 되지 않는 먹거리를 먹는다면 병원에 갈 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혹 병이 나더라도 좋은 먹거리만으로도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긴장관계로 살아가야 하는데 사람이 주인인양 행세하는 현대문명을 저자는 안스럽게 봅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좋은 씨앗이 사라지고 있는 것 역시 안타깝게 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사람에게도 불임율이 17%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은 씨앗이 사라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토양(몸)이 잘못되었고 씨앗(비활동성 정자와 난자)이 잘못되고 있는 현대문명은 이 땅에서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조만간 환경재앙으로 입증할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문득 <도둑맞은 미래> 라는 책과 <침묵의 봄>이라는 책이 같이 떠오릅니다.

이글은개인블러그에도 같이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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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100쇄 특별판, 양장)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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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아들이 읽고 있기에 읽어 보았습니다. 아들아이의 생각을 듣고 싶어 책을 들었다는 것이 옳습니다. 아니 아이와 공감대의 영역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더 했을 것입니다. 아이는 책을 30분만에 읽어냈습니다. 나는 거의 2시간에 걸쳐 읽은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은 멋진 표현이다 저 표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냄새가 난다 생각하며 읽었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 된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글을 분석적으로 읽었겠지만 아이는 직관적으로 읽어냈으리라 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어른 된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안도현님의 특유의 복선을 많이 깔아 놓은 표현들이 있어 조금은 거슬리기도 합니다.

가르치고 싶은 듯한 표현들 ...
좋게 이야기해서 더불어 공감하고 싶어 표현한 것들......

그런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의인화하여 쓰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작가의 생각을 강요당한 느낌을 받습니다.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조금은 덜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그러나 읽고 나서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나도 안도현님 생각과 비슷하게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 더불어 ”이고 “ 네가 있어 내가 존재하게 되어 행복하다 ”라는 작가님의 생각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2007. 9. 18 한겨레신문 <유레카>란에 잠수함의 토끼와 탄광의 카나리아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잠수함의 산소부족을 가장 먼저 느끼는 동물이 토끼이고 탄광속의 유해물질을 먼저 알아차리는 동물이 바로 카나리아라고 하면서 “알 수 없는 위험을 예보하는 자, 누구인가. 작가는 잠수함의 토끼이면서 탄광속의 카나리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 안도현님은 연어를 통하여 인간사회의 토끼와 카나리아가 되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생태적 감수성이나 사회병리에 대한 감수성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안도현님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몇 줄을 옮겨봅니다.

‘연어는 왜 물속에서 살아야 하지 ?’

마음속의 은빛연어는 아무 말이 없다.
‘나는 물속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31쪽)

31쪽의 이 내용을 보면서 이상국의 <기러기가족> 이란 시를 떠올려봅니다.

 

 기러기 가족

                                    이 상국

-아버지 송지호에서 쉬었다 가요

-시베리아는 멀다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말아라. 제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아빠 기러기말이 귀에서 맴돕니다.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ㅎ ㅎ

 

초록강(아빠 연어)은 은빛연어에게 무어라 했을까요?

-그런 소리 말아라. 저 위에는 지느러미 없는 것들이 많단다 라고 할려나.....

 

은빛연어 : “존재한다는 게 삶의 이유라고요 ?”
초록강   : “그래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지.”

.............................

은빛연어 : “배경이란 뭐죠?”
초록강   : “내가 지금 여기서 너를 감싸고 있는 것, 나는 여기 있음으로 인해서 너의 배경이 되는 거야.”

이 글을 마치고 있는 지금

단풍잎을 안고 흐르는 강물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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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 자연결핍 장애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리처드 루브 지음, 김주희 옮김 / 즐거운상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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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에서 멀어진 아일들을 읽고

 

 해봤어 ?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즐겨 쓰는 말이랍니다.

제가 제 아이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 “그럼 해봐!”라는 말을 합니다. 이명박씨의 삶과 철학중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동의하는 부분이 바로 “해봤어?"입니다.


사실 노무현 정권은 진보진영의 이단자이고 다가올 이명박 정권은 보수진영의 이단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두 차례에 걸쳐 각 진영에서 이단자(?) 성향의 지도자를 선택하였지만 공통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해봤어?” 라는 실용적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사람에게서는 방향만 진보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실용적 진보주의에서 실용적 보수주의로 넘어갔다고나 할까요.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단어앞에 실용적이라는 단어가 붙어 버리면 사실 엇비슷한 개념이 되고 맙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말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생태적공포증”이라는 말입니다. <경도-해상시계발명이야기>의 저자 데이바 소벨의 정의에 의하면 생태적 공포증이란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는 두려움과 함께 자연 생태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자라난 우리의 많은 아이들은 생태적 공포증을 앓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라도 지렁이가 두렵고 개구리도 두렵고 어두움도 두려워합니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괴상한 소리나 장면에서는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이 자연의 일상적인 소리나 모습에서도 두려워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와 반대로 시골에서 자라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른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생태적 공포증을 발견합니다. 제 경우이기는 하지만 각종 도로나 터널, 댐등으로 지형이 파괴되는 모습이 두렵고 마음이 아픕니다.


 고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의 최고의 스승은 바로 일, 가난, 그리고 자연이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분의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일, 가난, 자연 의 공통점은 “해봤어!”입니다. 실제로 그 속에 살면서 경험으로 얻어지는 것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엄마가 아프면 “엄마 병원에 가봐”입니다. 아이들 마음에서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을 의사나 병원에 미루어 버립니다.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봐”입니다. 엄마나 아이들에게서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차단되어지는 사회적 구조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엄마가 간병하고, 엄마가 아파서 아이가 간병하는 그 일에서 엄마와 아이간에 커뮤니티가 생기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햄버거를 하나를 만들더라도 엄마와 아이가 같이 만든다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돈으로 해결한다면 불량식품 햄버거만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나 TV으로만 알고 있는 자연은 자연이 아닙니다. 접하고 나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하던가요. 단순명료하게는 “ 해봤어? ”입니다. 우리아이들에게 또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이 책에서는 자연과 멀어져서 생겨나는 정서상의 문제를 재미없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도심의 빈공터를 녹지로 만드는 도시의 녹색운동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자연과의 교감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시문명에서 약점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이 내용은 개인블러그(http://blog.daum.net/jiskis/13555818)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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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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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저) 

 

 

보통의 소설책이면 하루저녁이나 이틀이면 읽는데  소설책 한권을 읽으면서 며칠이 걸렸습니다. 45일간 무기력하게 갇혀있는 사대부들의 말싸움에 책을 덮었고, 동영상을 보는 듯한 저자의  표현력에 감탄하다 책을 열다보니 그리 시간이 오래갔습니다.

 




 




  읽어지지 않는 부분의 분위기는 2007년 대선정국과 같은 암담함에서 오는 답답함이었습니다. 정권이 민초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책속에 나오는 사대부들이나 지금의 공무원들이나 얼마나 다를까 생각하다보면 다르지 않음에 가슴이 답답하여 왔습니다. 방향도 잡지못하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그네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습니다. 반면 신생국가를 세운 청나라입장에서 본다면 조선의 정권은 고인물이고 정체된 물이었습니다. 송파나루의 물빛과 산빛이 살아나고 10살의 나루의 몸에서는 초경의 선혈이 나오고 있는데 조정은 그 봄빛에 어울리지 않게 무기력하기만 하였습니다.

 



 




고인물에서 풍기는 물썩은 내와 같은 분위기가 책을 자주 덮게 만들었습니다. 45일간의 남한산성에서 견디어내는 군상들에서 나오는 퀴퀴한 냄새도 책을 덮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글자가 물빛을 그려내고 무기력한 조정대신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게 하는 저자의 글재주는 다시 책을 들게 하였습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니 남한산성에 바라보는 송파나루와 마전들이 눈에 들어오는 듯합니다. 인간사에 치욕의 삼전도가 있었을지라도 해토머리에 송파강이 불어나는 것이 보이고 봄빛이 그려내고 있는 산성의 산빛도 가슴에 들어옵니다.




 이제 다시 소설 남한산성을 잡습니다. 소설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으려 바로 책을 잡기는 이 책이 처음인 듯싶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본 풍경을 어떻게 글로 표현을 할 것인가 수없는 고민을 했을 저자를 생각하여 보게 하였습니다. 수없이 경험한 풍경이다보니 글을 술술 써내려 갔는데도 쉽게 공감을 하게 됩니다. 저자의 느린 자전거 내공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그 느림의 내공에 뿜어져 나오는 글이라 사오십대 세대에서 더 공감을 불러 오지 않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 20 30대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분위기나 그림을 그려낼까 생각하다보면 고개가 저어집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너무 적기에...... 우리 아이들이 책과 학원에서 삶을 이어가다보니 저자가 표현하는 것들이 낯설 것 같습니다.

 




 




노파심이겠지요. 우리 아이들도 볼 것 다 보고 생각할 것 다 생각하고 자라고 있겠지요. 곧 수험생활이 끝나는 딸아이에게 이 책을 권해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렵니다. 아빠는 이 소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냄새를 맡았다고 말입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옥의 티 ; 저자는 10살의 나루의 몸에서 초경이 나오는 것으로 삼전도의 치욕이 있던지 말던지 이 땅에 삶은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나루의 몸에서 초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쟁중이었고 10살의 나루는 영양상태가 말이 아니었을 것이고 또 영양상태가 정상이었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15, 16세가 되어서야 초경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아마도 저자는 최근 환경호르몬이나 성조숙증으로 인하여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여자아이의 초경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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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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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이 책은 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적인 사실인양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류시화의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 “구르는 천둥 ” 등에서 나오는 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와 톤이 같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참부족으로부터 얻은 이름이 두가슴이라는 대목에서는
“내 영혼이 따뜻한 날들”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는 말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그 구절을 옮기면

사람들은 누구가 두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필요한 것을 꾸려가는 몸의 마음이다. 
   몸의 마음은 살기위해서 잠자리나 먹기 위하여 애쓸 때 사용하는 마음이다.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키우려는 마음도 몸의 마음이다.

 

또 하나의 마음은 영혼의 마음인데 이 마음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이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하여서 쓰면 쓸수록 강하여진다.  

 저자는 참부족의 추장으로부터 참부족의 정신세계와 저자 자신의 가치관에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두가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참부족의 정신세계와 현대문명속에서 살아가는 무탄트(돌연변이체, 현대문명인을 말함)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호주의 참부족이 추구하는 가치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추구하는 가치가 같기 때문에 내가 그런 착각을 하였나보다.

나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흙과 나무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서로 형제라는 말에 동의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현대 문명인들을 무탄트(돌연변이체)라는 말에 동의를 한다.
참부족의 말을 빌리면 현대문명인들은 돌연변이체이기 때문에 산과 땅 그리고 하늘(공기)를 망가트리고 그리고 인스턴트와 같은 이상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그 이전과는 다른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상한 질병과 이상한 먹거리를 위하여(?) 평생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 문명사회라는 마취제에 취해서 말이다. 이책은 마취제에 깨어나라고 메신저를 통하여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참부족이 돌연변이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옮겨본다.


우리는 생일이 아니라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 걸 축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들의 배설물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는 문명세계에서 50년이나 음식을 먹고 살았기 때문에 몸을 해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게 분명했다.


인간이 버림의 의미를 배우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새것을 받아들일 빈 공간이 없으면 새것이 들어올 수 없다.

사람이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아직 땅에 묻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숨을 쉬지만 살아있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느 때보다 이상기후를 느끼고 지낸 여름이다.

아니 지금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다 말겠지 또는 설마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던지는 참부족의 메시지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무탄트들이 너무 늦기전에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그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서로 해치는 것을 어서 빨리 중단하기 바란다.

 

이글은 개인블러그 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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