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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초록 ㅣ 문학동네 청소년 78
황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네임 스티커>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황보나 작가의 첫 소설집, <일곱 개의 초록>은 일상 어딘가에서 마주할 듯한 일곱 아이들의 고민과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의 회복과 치유를 통해 빛바랜 마음에 초록빛을 채워가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희연의 이야기 <가방처럼>, 실수로 학교에 불을 내게 되면서 무슨 일이든 망칠까봐 걱정하는 수현의 이야기 <과일맛 젤리>, 아빠가 외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해와 의심으로 누군가를 미행하는 다은의 이야기 <파란 원피스>, 존재를 모르던 삼촌을 알게 되면서 무거운 비밀을 품게 된 진솔의 이야기 <진녹색 양말>, 사랑을 이루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면서도 정작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승미 이야기 <거짓말의 진심>, 이민을 가기 전에 소중한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픈 성민의 이야기 <우박과 안부>, 시간이 멈추는 꿈과 마법의 시간을 경험한 호원의 이야기 <꿈과 시간의 마법>까지, 고민과 결핍으로 색이 바랜 일곱 아이들의 마음은 회복과 치유를 통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심어 놓은 초록색 키워드가 등장하는데요. 이스터 에그처럼 숨어 있는 키워드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작가가 숨겨 놓은 일곱 개의 초록은 무엇일까요?
나로 인해 할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나 뭐라나. 외삼촌, 외숙모, 엄마, 아빠, 이름 모를 친척들까지 다들 같은 말을 연거푸하며 내 등을 쓸어내렸다. 그게 그렇게 뜻깊은 건가. 어떠한 순간에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면 평소에 밥을 같이 먹어 줬어야지. p.29~30
엄마의 강압(?)적인 권유로 외할머니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희연, 깨끗함과 더러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할머니와 무엇이든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희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됩니다. 할머니는 늘 희연의 밥을 챙겼다는 것을, 희연의 발이 시리지 않도록 신발을 데워주고 있었다는 것을, 내내 희연을 돌보고 있었다는 것을, 할머니는 짐처럼 여겨지는 존재가 아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희연은 생각합니다. 따뜻한 한 끼의 의미를, 밥 한 끼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온기를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풀잎이 자수로 새겨진 할머니의 작은 가방은 그래서 더 오래도록 희연의 마음을 초록빛으로 물들일 것입니다. 더불어 희연 또한 할머니의 가방처럼 누군가와의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갈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인생이 물살에 떠맡겨진 나무토막 아니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이 말을 들으면 가슴 아파하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어떤 발버둥을 치더라도 강물에 떠다니는 쓰레기는 힘이 없다.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단한 무언가 위에 내 힘으로 서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걸어갈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도 있다. p.181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학교를 자퇴한 호연, 누구라도 그러하듯 아빠의 허락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호연은 자신만의 계획을 보여주며,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된 호연, 학교 밖 청소년이 되어서 좋은 점은 쓸데없는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작가가 되고 싶은 호연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멈춘 듯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초록색도 회색도 아닌 그 중간색으로 부분 염색이 된 애쉬그린 스타일"과 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마음 속 갈등을 이겨내고,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서 스스로 걸어갈 방향과 속도를 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일곱 개의 초록>은 일상 어딘가에서 마주할 듯한 일곱 아이들의 고민과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의 회복과 치유를 통해 빛바랜 마음에 초록빛을 채워가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심어 놓은 초록색 키워드가 등장하는데요. 이스터 에그처럼 숨어 있는 키워드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작가가 숨겨 놓은 일곱 개의 초록은 무엇일까요?
꿈오리 한줄평 : 빛바랜 마음에 치유와 성장의 초록빛 물을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