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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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으로 놀랄 만한 반전을 선사해 준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이다.

 

사실 <백광>을 읽을 때보다, 이번 단편집을 읽었을 때 더 작가의 저력에 놀랐다.

각 단편들이 모두 훌륭했다.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말이다.

거기다 단편임에도 각 소설들은 짜임새 있게 전개되고 놀랄 만한 반전을 안겨 주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 마음에 계속 피어나는 감정은 "쓸쓸함"이었다.

각 소설의 화자는 자신이 상대방을 속였다고 생각하지만, 여지없이 당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배신이 난무했다. 형제, 부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서로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물론 모든 단편이 훌륭했지만, '베이 시티에서 죽다'와 '열린 어둠'은 다른 단편에 비해서는 살짝 아쉬웠던 것 같다.

 

 

 

 

내가 좋았던 단편들 위주로 잠시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 두 개의 얼굴

화가인 '나'는 집에서 부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뒷마당에 묻었다, 그런데 자신의 부인이 신주쿠 호텔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게 된다.

호텔에서 발견된 시신의 모습은 진짜 부인 게이코와 흡사했다. 거기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틀림없이 자신이 그녀에게 사 준 반지가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집에서 살해한 게이코가 어째서 신주쿠의 호텔에서 발견된 것일까?

 

뭔가 소설이 진행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출간된 책이라서 그런걸까, 약간 클래식하면서 몽환적은 분위기기가 있었다.

그래서 첫 단편에서부터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다.

 

* 화석의 열쇠

엄마의 운전 부주의로 하반신 마비가 된 소녀 '지즈', 지즈의 사고로 그녀의 아빠와 엄마는 사이가 소원해져 이혼하고 지즈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지즈의 목을 졸라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다.

누가 지즈를 죽이려 한 걸까?

 

지즈는 자신의 몸을 화석이라고 했어. 그 아이의 몸에는 실제로 우리가 가졌던 예전의 애정이며 지난 십여 년 동안의 세월이 화석으로 남아 있는 거야. (p. 127)

 

마음에 많이 남았던 단편이었다. 특히 애정과 세월이 몸에 화석처럼 남아 있다라는 표현이 너무 좋았다.

아이에게 더 애정과 관심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애정과 관심이 우리 아이의 몸과 마음에도 화석처럼 남게 될테니 말이다.

 

* 기묘한 의뢰

흥신소에서 일하는 시나다는 어느날 아내의 동향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시나다는 그의 아내를 조사하던 중 그녀에게 미행하는 것을 들키게 되고, 그녀는 시나다에게 반대로 남편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남자에게 미행하는 것을 들키게 되고, 남자는 또다시 여자가 모르게 그녀의 동향을 조사할 것을 의뢰한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점점 궁금했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이 부부는 도대체 뭐야' 라는 생각도 들고, 여기저기 붙는 시나다를 보면서도 '이런 놈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반전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연결될 줄 어찌 알았으랴.

장편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단편 소설에서는 정말 허투루 나오는 사람은 없다. 행동도 없고.

 

그리고 드는 생각은, 참... 사랑이 뭔지... 그게 사랑이긴 한 건지... 하하하

 

* 밤이여, 쥐들을 위해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란 '나', 그가 태어나 유일하게 말을 건넨 것은 '쥐'였다.

나는 쥐에게 '노부코'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애정을 쏟았지만, 보육원의 누군가가 쥐의 목을 철사로 둘러 죽이고 만다.

그리고 현재,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내 '노부코'에게 죽음을 안긴 놈들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제목으로는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는데, 읽고 난 후에 가장 마음에 많이 남은 단편이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대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의심했고, 그가 범인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범행 의도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화자인 '나'에 은근히 감정이입이 되어가는 나.

그에게 '노부코'가, 그리고 아내가 어떤 의미일지 절절히 느껴졌다.

 

* 이중생활

클럽에서 일하는 마키코는 그 곳에서 만난 열여섯 살 연상의 남자 슈헤이를 사랑해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슈헤이는 육년이나 지난 지금도 처음 찾아온 손님처럼, 밤이면 그녀의 곁을 떠나 다른 집, 다른 여자 '시즈코;에게 돌아간다.

 

흔하디 흔한(?) 불륜 이야기로 생각하면, 나중에 뒷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

미스터리지만 인물들 간은 흔하디 흔한 관계로 생각하며 읽어 나갔지만, 내가 최초에 생각했던 '관계'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해도, 읽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거다. 하하하.

하지만, 힌트는 분명히 있었다. 반전을 알고서야 납득이 가는...

 

그리고 역시나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있었다.

 

에휴... 사랑이 뭔지...

그런 방법이라니.... 뭔가 씁쓸했다.

 

* 대역

인기스타 '하세쿠라 슌'은 아내 '료코'를 죽이기 위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장하고 기차에 오른다.

그를 꼭 닮은 한 남자가 다른 지역에서 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에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 이야기도 읽는 동안 결말을 알 수 없어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다 읽은 후에 씁쓸함과 허탈함은 엄청났다.

인기스타의 대역이라는 소재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가 누구의 대역이었을까?

 

속고 속인다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단편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까지 속였다고? 라고 분명히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이건 속을 수밖에 없다. 평범한 우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니 말이다.

하긴,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대역을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상대에 대한 배신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불쌍하다. 인생을 모두 부정당한 기분이지 않을까.

 

위 단편들 외에도 과거 경찰에서 일했던 한 남자가 사수였던 형사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거에서 온 목소리>, 사랑하는 여자와 믿었던 후배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복수를 위해 이들을 찾아나서는 <베이 시티에서 죽다>, 고등학교 교사가 불량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열린 어둠>이 수록되어 있다.

 

워낙 충격적인 반전을 자랑하는 '렌조 미키히코'의 소설이다 보니, 출판사에서는 "충격적인 반전에 소름돋지 않았다면 100% 환불해드립니다"라는 파격적인 환불 이벤트를 시행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고, 추리소설을 좀 읽는다 하는 독자들도 반전에 속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배신의 깊이가 다르다.

가장 믿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의한 속고 속이기가 펼쳐지니 속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순히 이야기를 꼬고 얕은 반전들로 놀라게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이미 놀라움을 준달까.

등장인물들의 뒤틀린 마음만큼, 이야기 전체가 뒤틀려 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하하.

 

예전에 <<회귀천 정사>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기억은 나는데, 그땐 사실 작가의 매력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의 <백광>과 이번 소설 <열린 어둠>을 통해 작가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다.

또 시간이 흘렀으니 다시 읽어본다면 또다른 느낌을 받지 않으까라는 생각도 든다.

 

당장 도서관으로 가봐야겠다. 하하하

이번 명절에는 '렌조 미키히코'님의 소설과 함께 보내야겠다. 하하하.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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