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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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소설가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고 또 미디어를 통해서도 보았지만, 이렇게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인 듯 하다.

SF 소설집이라 나랑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잠시, 책을 읽자마자 작가의 재기발랄한 유머와 무한한 상상력에 웃고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에는 10개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표제작인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은 짐작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지구'를 바라보는 외계인의 시점에서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적혀 있다.

외계인의 시점에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느꼈지만 외계인의 의문처럼 정말 인간들은 알 수 없는 존재가 틀림없어 보인다.

인간들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이들도 있으나, '헌혈' 등을 통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들을 돕는 이들도 많다.

그리고 외계인이 주목한 헌혈 후에 받는 '빵'에 대한 관점도 너무 재밌었다.

 

여러 단편들이 실려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신들의 황혼이라고 마술사는 말했다'였다.

소설 속 마술사는 사람들이 창조하고 다루는 게임 속 캐릭터였지만 그저 게임 안에서조차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고 지혜롭게 수행하였고, 어느새 게임 밖의 사람마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마술사를 부러워한다.

 

 

(p. 92)

삶에 시달리던 사람은 그저 마술사가 이 이야기 속에서 벌이는 모헙을 점점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의 의지는 피폐해졌고 사람은 하루 종일 마술사의 게임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재미없게 실패하기만 할 거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마술사의 세상을 지켜보며 놀고 있으면 그동안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마음만 미약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가짜 세상에서 무엇이 아름다우며, 무엇이 추한지를 보는 일만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중요한 일로 남았다.

 

 

'이상한 녹정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상상조차 해 본적 없는 일들을 곽재식 작가의 소설을 통해 해 볼 수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뛰어난 자질의 마라톤 선수가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니, 거기다 그는 사람이 아닌 것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어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계획과 결과도 기상천외하고 놀라웠다.

갑자기 길거리의 더러운 물을 먹으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하는 비둘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하하.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을 읽으면서 시간에 쫓겨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중에 계속 뭔가를 설치하라는 팝업이 떠서 귀찮고 짜증났었던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고,

'판단'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꼰대임을 인정하지 않는 꼰대같은 선배들이 사소한 문제 하나로 엄청 길고 지루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상황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 물론 소설 속 인물처럼 사직서를 쓰지는 못했지만... 하하하.

'지상 최후의 사람일까요'를 읽으면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재난이나 전쟁 등의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인구가 줄어들어 언젠가는 로봇들과 생활하는 지상 최후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평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공간과 상황에서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다니, 작가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곽재식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 하하하.

어마어마한 상상력에 적재적소의 재미까지 더해져 SF소설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지고 기대치가 높아졌다.

작가의 끝없는 호기심과 유머를 또다시 만나기를 소망해 본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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