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고개 비화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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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신을 받으라> 등의 소설을 통해 '한국형 호러'란 이런 것이다를 잘 보여준 박해로 작가의 신작인 《외눈고개 비화》를 읽었다.

조선시대 금서였던 예언서 '귀경잡록'을 소재로 신기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건국신화를 부정하고 백성들을 미혹시킨다 하여 금서 처분을 받은 예언서 '귀경잡록'은 우주 삼라만상의 진정한 창업자인 육십오능음양군자가 있고 그가 부리는 이계의 원린자들이 호시탐탐 인간 세상을 노린다라고 하여 공포심을 주었고 이 책을 지은 탁정암은 혹독한 국문으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서적은 불태워졌지만, 끈질기게 필사본이 유포되어 전해져 왔다고 한다.

 

푸르른 세상 가운데 온통 회색빛 일색인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것은 오솔길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지옥 가는 삼도천이라 해도 손색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나무들이 즐비했는데 가지는 기형적으로 휘어졌고, 머리 없는 인체와 비슷한 밑줄기에는 외눈 표식이 가득했다.

_ <외눈고개 비화> 40쪽

 

40년 만에 나타난 옛 친구 '김정겸'은 그가 40년 전 외눈고개라는 비경에서 겪은 악귀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정겸은 유서 깊은 안동 김씨의 후예였으나,서자라는 낙인을 짊어지고 살았다.

지혜롭고 무예도 뛰어났지만, 서자인 그가 세상에 뜻을 펼치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김정겸은 위험에 빠진 여인을 구하려다 괴한을 죽이고 말았고 옥에 갇히게 된다.

친구인 이선규는 정겸을 구하기 위해 애썼으나 그는 결국 살인죄를 선고받고 한낱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 정겸이 갇힌 옥사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정겸의 배다른 형들이 살고 있는 고택에서도 화재가 발생한다.

화재가 난 틈을 이용해 정겸과 일부 죄수들이 탈옥하여 사라졌고, 그렇게 40년 만에 정겸이 나타난 것이다.

 

<외눈고개 비화>는 위 김정겸이 탈옥 후 같은 옥사에 있던 육번 안지천 장군을 따라 외눈고개로 가게 되면서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다.

외눈고개는 수백 년 전 조선의 박고헌과 전투를 벌이다 사라졌던 원린자들이 만들어 낸 이계의 공간이었다.

그들이 가진 가공할 만한 힘을 지닌 무기를 가지기 위해 외눈고개로 갔지만, 김정겸과 안지천 등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으며 많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또 하나의 이야기인 <우상숭배>는 비리를 일삼던 악덕 관료 권윤헌이 함경도 함흥으로 향하던 산 속에서 기괴한 탈바가지를 쓴 남자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을 전한다.

여섯 개의 눈알이 달린 탈을 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은 천승도이고, 12사도의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라고 말하며 자신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권윤헌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아침이 되어 날이 밝자, 천승도의 몸은 녹색 불길이 치솟아 다 타버리고 그가 썼던 탈만 남게 된다.

그 뒤 권윤헌과 바우, 그리고 구출된 처녀들은 산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계속 같은 장소를 뱅뱅 돌며 산 속에 갇히게 되었고 밤이 되자 천승도의 말처럼 12사도가 나타난다.

 

원린자들이나 12사도, 청동불 등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그 존재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오한이 느껴질 정도로 소설 속 그들의 모습은 징그럽고 공포스러웠다.

<외눈고개 비화> 속 이선규는 허황된 이야기라 여겨 김정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내 후회한다.

외눈고개 비화 속의 인물들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찌 생각하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자신들의 뜻을 펼치기 어려워 잘못된 희망을 품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반면 <우상숭배> 속 권윤헌은 참으로 치가 떨리게 재수없는(?) 인물이었다. 청아를 생각하는 그 지고지순함(?)이 약간은 코미디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큰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목숨을 지켜냈지만, 글쎄... 그게 행복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햇빛 아래 나설 용기가 없으니 말이다.

 

'귀경잡록' 시리즈는 이계인들이 등장하는 SF와 호러로 가득차 있지만, 결국은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 같다.

앞으로 나올 '귀경잡록'의 또다른 이야기도 벌써 기대된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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