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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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미카에게 무슨 짓을 했냐고 다름 아닌 미카에게 말한 것이다.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을 언제까지고 그때의 시간에 멈춰 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미래 학교라는 조직에 그녀들을 가두고, 시간을 멈추고, 추억을 결정화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다.

호박에 갇힌 곤충 화석처럼.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 <호박의 여름> 중 419쪽

 

시즈오카 현의 미래학교 터에서 여아의 백골 사체가 발견된다.

그것을 뉴스로 접한 변호사인 '곤도 노리코'는 어린 시절 여름방학에 미래학교 여름 합숙에 참여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사체로 발견된 그 여아가 그때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친구 '미카'가 아닐까하는 걱정을 하던 노리코에게, 백골 사체가 자신들의 손녀인 것 같다며 확인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오고 노리코는 미래학교 도쿄 사무국을 방문한다.

추후 백골 사체는 '이가와 히사노'로 밝혀지고, 그녀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함께 홋카이도의 배움터로 전학을 간 '다나카 미카'가 죽음에 관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들이 떠돈다.

소설은 미래학교 터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된 이후의 일들과 노리코와 미카가 초등학교 시절 미래학교에서 보냈던 일들로 진행된다.

그리고 히사노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밝혀진다.

미카는 히사노의 죽음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도대체 그 여름, 미래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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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든지,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미래학교의 아이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교육이념이라든지, 교육 철학이라든지, 혹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굳건한 믿음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한창 부모의 애정으로 자라나야 할 어린 아이들을 미래학교라는 곳에 맡겼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미카 역시 부모님과 매일 같이 살고 싶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소원을 마음 속에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분명 그리워했을, 보고 싶었을 친구 노리코를 만나면서도 기억나지 않는 척 모진 말을 뱉는 미카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당시 겨우 11살이었던 아이가 오랜 시간동안 가슴에 짊어지고 살았을 무게를 생각하니 그 안쓰러움에 먹먹해진다.

어른들은 말만 그럴싸 했을 뿐, 사실상 그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고 그 아이를 위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미래가 여기 있다면서 겉만 번드르한 말을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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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을 읽었을 때도,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가 그려낸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 분명 아이의 시절을 겪고 어른이 되었을 텐데, 아이들의 마음이 그럴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무심한 그저 그런 어른이 된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우리 아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할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가벼운 말들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진심을 담아 솔직한 마음을 내 아이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읽은 그녀의 소설은 가슴 한 편을 늘 먹먹하게 만들었다.

진심으로 미카가 행복하기를, 그리고 작은 몸으로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늘 행복하기를 살며시 기도해 본다.

 

세상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

정답도, 이것이 절대적이라고 하는 올바름도, 이 세상에는 명확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유도된 사고방식이라고 미카가 깨달은 것은 언제일까.

미래 학교에서는 언제든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당시의 미래 학교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하는 어른들로 가득했다. (p.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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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였든 살인이었든, 벌어진 일은 미카 씨의 책임이 아닙니다.

사건을 숨긴 게 당신과 당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건 어른들의 궤변입니다.

당신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면, 그것 자체가 학대와도 같은, 당신의 미래를 얽어매는 사고방식입니다.

책임을 져야만 하는 건 어른들입니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p. 608)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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