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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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 비채

 

아들과 함께 하버드대로 캠퍼스 투어를 온 '나', 그는 오래전 자신이 다녔던 이 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 날은 하버드 대학원 박사과정 종합시험을 앞두고 있던 무더운 여름방학의 어느 일요일 늦은 오후였고, 그는 하버드광장 옆 작은 반지하 카페인 '카페 알제'에서 여느 때처럼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프랑스어로 기관총을 쏘듯이 따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는 북아프리카식 프랑스어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그 원시적이고 세련된 남자가 궁금해졌고,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걸어 버렸다.

그 남자의 이름은 '칼라지'였고, 택시운전사였다.

 

(76쪽)

아마도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 나의 그림자,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다락방에 숨어 사는 미친 형제, 나의 하이드 씨, 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

가면의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 완성되지 않은 나.

속박되지 않는 나, 누더기를 걸친 나, 격분한 나,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세련된 매너가 없는, 영주권이 없는 나.

칼라슈니코프를 들고 있는 나.

 

그 여름 이후 칼라지와 나는 친해졌고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비슷한 점이 많았기에 가까워지고 친해진 듯 했지만, 칼라지가 나에게 가진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그를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니, 비슷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나는 칼라지를 알게 된 후 자유롭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즐기면서도 하버드라는 그 학벌을 놓고 싶지 않았고 하버드로 대변되는 주류 속의 베네핏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던 듯 하다.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함께하면서도 멀어지고 싶은 그 아이러니한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어찌되었든 나는 영주권도 있고, 주류에 속할 가능성이 충분한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조건들조차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에 그 끈을 놓치지 않으려 나는 그런 선택들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누구에게나 어느 특정 순간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답고 푸르렀던 청춘의 한자락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기기도 하고 후회와 아쉬움에 안타까워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때 나의 행동들은 참으로 미덥지 못하고 어리숙하고 후회스러운 일들 투성이니까.

그런데도 그런 후회와 아쉬움들이 가득함에도 무언가 지나간 과거 청춘의 한자락은 아련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고... 내일은 불투명하고 하루하루가 힘에 부쳐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추억들도 있는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소설 속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현실 속 나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어쩌면 돌아가더라도 과거와 똑같은 선택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그 시리도록 말갛고 위태로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 본 수아레.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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