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탐정의 부재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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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탐정의 부재

샤센도 유키 / 블루홀식스 ​

 

 

한 명은 죽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지만, 두 명을 죽이면 지옥행이라는 규칙을.

왜 한 명은 되고 두 명은 안 되는가.

왜 하필 그날 강림했는가.

죄인이 끌려가는 지옥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는가.

의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22쪽)

 

 

강림 이후 탐정의 존재의의는 사라졌다. 적어도 아오기시 생각은 그랬다.

탐정이 죽을 힘을 다해 사건을 해결한들, 그런 노력은 범죄를 없애는 데 일조하지 못했다.

반면 지옥의 존재는 어떤가.

지옥은 탐정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연쇄살인을 줄였다.

자신이 쫓고 있던 살인범의 사례도 있고 하여, 그 사실은 아오기시에게 견딜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겼다. (25쪽)

 

 

-

5년 전에 발생한 '강림', 흐린 하늘을 가른 빛줄기에서 천사들이 튀어나와 짐승같은 몸놀림으로 마을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던 병사들을 화염이 일렁이는 땅으로 끌고 갔다.

비슷한 일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고, 인간을 두 명 이상 죽인 자는 빠짐없이 천사에게 붙잡혀 지옥에 떨어졌다.

 

탐정 아오기시 고가레는 당시 연쇄살인범을 쫓고 있던 중 천사를 만났고, 그 날 이후 연쇄살인범은 범행을 멈추고 사라졌다.

 

현재,

아오기시는 사업가인 쓰네키 오가이의 사건 의뢰를 받은 것을 계기로 천사로 가득한 지상의 낙원이라는 도코요지마 섬에 있는 그의 저택에 초대받는다.

도코요 저택에 모인 사람은 아오기시를 비롯해 저택의 주인인 쓰네키 오가이, 국회의원인 마사자키 구루히사, 천국 연구가 아마사와 다다시, 기자인 호지마 쓰카사, 사업가인 소바 유키스기, 쓰네키의 주치의 우와지마 가나타, 그리고 몰래 섬에 들어온 불청객인 기자 후시미 니코와 저택에 고용된 3명의 직원 등 11명이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한 명의 죽음으로 더 이상 연쇄살인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남은 사람들은 생각했지만(두 명을 죽이면 천사에게 붙잡혀 지옥으로 끌려 가므로), 죽음은 연이어 발생한다.

 

천사의 강림으로 연쇄살인은 불가능함에도 연이어 발생하는 살인, 범인은 누구이며 어떤 트릭을 쓴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탐정 아오기시 고가레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연쇄살인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래서는 지상이 지옥으로 변한 셈이잖아."

천사를 보낸 신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인간들이 저승길 동무를 만드는 이런 세상을 보고, 정말로 만족스러울까?

대체 지옥은 뭘 위해서 존재할까?

 

- 115쪽

 

 

-

일본에서는 최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유행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본격 미스터리에서 보여지는 트릭과 의외성이 힘을 잃게 되어, 특수한 규칙을 설정하고 그 규칙 안에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낙원은 탐정의 부재》 속 특수 설정은 바로 천사의 강림으로 인해 변화된 세상이다. 인간을 두 명 이상 죽이면 천사가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기본 설정 아래 실험(?)과 경험을 통해 세분화된 규칙들이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놀라움과 재미를 준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천사의 강림 이후로 사람을 두 명 이상 죽이는 사람이 없겠구나 했지만, 역시나 인간들은 단순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한 논리들을 펼치며 더 어둡고 무시무시한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인간만 죽이지 않으면 되므로 새롭게 나타난 기묘한 존재인 천사들을 죽여 해부하기도 하고, '천사식' 이라는 괴상망측한 요리도 만들어낸다. (이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두 명을 죽이면 지옥으로 끌려 가게 되니 한 명 정도는 죽여도 된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기도 하고, 아예 가성비를 따져(?) 어차피 지옥에 갈 바에야 많이 죽이자며 대규모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살인자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천사가 강림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세상은 암울하다. 아니 오히려 더 암울해졌다.

천사들은 진정한 '악인'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실행범만 지옥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악인들도 있지만, 천사들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도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은 존재했고, 천사의 강림 이후 탐정의 존재의의를 고민하던 아오기시는 그들을 만나 탐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이들은 때아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천사들이 살인자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면,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는 것일까? 천국은 있는 것일까?

 

촘촘하게 잘 짜여진 특수 설정 상황도 좋았지만, 선인과 악인,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 더 좋았던 소설이었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기묘한 모습을 한 천사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또 천사들의 강림으로 세상이 더 좋아졌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진정한 정의를 찾고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된 이들이 있어 소설의 마지막이 그리 서글프지만은 않았다.

 

 

천사가 있어도 탐정은 필요 없지 않아요.

연쇄살인이 사라지고, 살인은 전보다 훨씬 단순한 행위로 인식되고, 악한 인간은 천사가 자동으로 심판한다.

이러면 확실히 탐정의 역할이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탐정의 역할은 사건에 휘말린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 천사가 있어도 탐정은 무용지물이 아닌 거죠.

천사가 사람을 행복하게 했는지 따져보면 의문이 남죠?

그렇다면 천사가 존재해도 탐정이 있는 세상이 좋아요, 저는.

 

- 310쪽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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