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 아프로스미디어

 

'정의'라는 단어는 분명 건실하고 바르고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느낌을 준다. 워낙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면면들이 드러나는 일이 많기에 '정의'라는 단어에 기대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정의'는 누군가를 몹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하기도 한다.

 

가즈미, 유미코, 리호, 레이카, 노리코는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가즈미, 유미코, 리호, 레이카에 전학을 온 노리코가 함께하면서 그녀들은 고등학생 시절을 함께 친하게 지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을 하면서 멀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다섯 명의 친구들은 졸업 15주년 기념 동창회를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다들 도쿄에 산다는 걸 알게 되고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노리코는 무척 바르고 '정의'를 무척이나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복장과 머리스타일 역시 '모범학생'의 전형이었다.

또 그녀는 어떤 융통성도 없이 오로지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행동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즈키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노리코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일들을 계기로 노리코를 더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들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노리코가 친구인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도와줬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노리코는 그저 '정의'를 그 행동을 한 것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노리코의 그런 '정의'로운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저 불편하고 싫은 감정만을 가지고 묵묵히 그녀를 견딘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건 모른채 말이다.

 

다시 만나게 된 그녀들은 처음에는 노리코에 대한 과거의 불편함을 잊고 반가워했지만, 모임이 몇 차례 계속되고 노리코와 만남이 지속되면서 또다시 예전의 그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제 노리코의 그 정의는 불편함을 넘어서서 그녀들의 삶까지 뒤집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하던 그녀들은 우연찮게 노리코를 죽이게 된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노리코로부터 초대장이 날아온다.

노리코는 죽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초대장은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일까?

 

 

 

 

(P. 124)

노리코도 그랬다. 노리코는 정의밖에 보지 않는다. 정의만을 지키기 위해, 노리코는 돌진한다.

그녀의 두 눈에는 친구도 우정도 비치지 않는다.

친구인 유미코가 다치고, 나가떨어지고, 피를 흘리지만, 노리코가 지키려는 것은 정의뿐인 것이다.

백퍼센트 옳은 노리코.

정의의 히어로.

그 얼마나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란 말인가.

 

 

(P. 166)

노리코의 정의는 너무나 드러나 있고, 노골적이고,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어디든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고, 망측스럽게 '정의'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융통성과 배려라는 옷을 두르지 않은 알몸의 정의 앞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다.

 

 

(P. 237)

'정의'라는 이름의 무서운 괴물이 끝까지 집요하게 뒤쫓아 온다. 흉기와 같이 날카롭고 긴 손톱을 마구 휘두르면서 레이카의 마음을, 인생을, 미래를 차례대로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완벽한 정의란 그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불길한 것인가.

거기에는 손톱만큼의 자비나 용서의 여지도 없다.

 

 

 

소설은 가즈미, 유미코, 리호, 레이카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노리코의 정의는 보는 이들을 너무 힘들고 숨막히게 한다.

분명 '정의'라는 건 사회에 필요하고 개개인에게도 필요한 가치이자 덕목인데, 노리코의 정의에 대한 집요함은 오히려 끔찍함을 느끼게 한다.

정의의 사이보그, 정의의 몬스터, 정의의 누디스트, 정의이ㅡ 야차, 정의의 포식자... 이것이 노리코의 주변 사람들이 노리코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재독임에도 정신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읽어도 노리코의 정의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무서웠다.

만약에 노리코가 정의를 실현한 후 스스로에게 만족해하며 무의식적으로 짓는 황홀해 하는 미소를 옆에서 봤다면 몸서리칠만큼 끔찍할 것만 같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답게 역시나 반전도 있는데, 이 소설은 반전의 정체보다 반전의 성향이 더 놀라웠고 무서웠다.

성향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지는 모르겠는데, 제2의 노리코, 제3의 노리코가 계속 나타날 것만 같아 살이 떨린다.

어쩌면 노리코 역시 제2의 ○○○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의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소설이었다.

옳은 일을 행하고, 불법적인 일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절대'정의가 아니라 '상대'정의도 필요한 사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빵 한조각을 훔친 장발장이 19년의 감옥살이를 하는 것에 너무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19년을 선고받은 것은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형기가 늘어난 것이지만)

어떤 이는 장발장에게 선처를 베풀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노리코는 선처를 베풀려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경찰에 전화를 하고 제대로 사건이 처리되는지까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할 것 같다.

소설을 곱씹다 보니, 또다시 노리코의 황홀해 하는 표정이 떠오를 것만 같다.

정의 자체에 빠져버려 융통성 없고 배려 없는 절대정의는 무섭다. 하하하.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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