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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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범죄소설의 대가, 하드보일드파의 거장이라 찬사를 듣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이제서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하드보일드라고 한다면, 음울하고 어두운 도시에서 고독하고 무정한 탐정이 등장해 거친 세상을 홀로 상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하드보일드'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으로,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낳게 하였다고 해요.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5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살인의 예술》은 표지마저 취향저격인데요, 여성이 살해된 듯한 피웅덩이 위에 서 있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탐정의 뒷모습과 번뜩이는 두 눈, 똑바로 겨누어진 총구, 매력적인 여성의 입술 등이 표현된 복고적인 느낌의 책표지는 고전적 매력이 느껴지는 범죄 소설을 기대하게 합니다.

 

또 《살인의 예술》에 수록된 5편의 소설은 각 소설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탐정들이 활약하며 사건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여성의 집에서 노란 실크 가운을 입고 죽은 채 발견된 유명 밴드의 리더 킹 레오파디의 사건을 추적하는 스티브(황금 옷을 입은 왕), 호텔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 감독 월든의 사건을 추적하는 달마스(영리한 살인자), 약혼녀 엘런의 요청으로 펜러독 부인의 사라진 진주 목걸이를 찾기 시작하는 월터(사라진 진주 목걸이), 호텔에서 전남편을 기다리며 며칠째 숙박중인 크레시를 지켜보는 호텔의 새벽 무전담당자 토니(호텔 방의 여자), 자신이 거주하는 층의 다른 객실에서 수상한 남자와 쓰러진 여자를 발견하고 그녀 주변의 사건에 접근하는 카마디(시라노 클럽 총격 사건) 등 각 소설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탐정은 다른 매력과 개성을 가진 인물들로 연이어 벌어지는 관련 사건들에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노련한 방식으로 위기 상황을 벗어나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갑니다.

 

5명의 탐정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녔는데요, 그래서인지 이들의 개성이 뚜렷해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첫 단편인 '황금 옷을 입은 왕'을 읽을 때만 해도 너무 숨가쁘게 사건사건이 이어져서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왜 이렇게 다 죽어야 하나요?'라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하하하), 점점 이야기의 매력 속에 빠졌어요.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에, 문체는 건조해서 처음에는 흑백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사라진 진주 목걸이'에서 잠시 컬러로 화면이 반짝 바뀌었는데요, 매력적인 약혼녀 엘런에게 은근히 잡혀 사는 듯한 거구의 월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읽었더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말마저 유쾌해서 마지막까지 즐거웠어요.

'시라노 클럽 총격 사건'에서도 매력적인 탐정 카마디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답니다. 하하하.

살인과 협박, 납치까지 있으니 내용적으로 웃긴 것은 아닌데요, 특정 장면들에서 마치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피식 웃음이 났어요.

카마디는 자신이 일부 소유한 호텔에서 생활하는데, 어느밤 같은 층의 열린 객실에 쓰러져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고 그녀를 일으켜 입 안으로 위스키를 조금씩 흘려 줍니다. 깨어난 여자는 속삭이듯 말해요. "위스키 괜찮네요. 조금 더 마셔도 돼요?(268쪽)"라고.

그리고 대화를 나눈 후 카마디는 방을 떠나면서 여자의 입술에 키스하며 말합니다.

 

당신과 함께 지옥에 가고 싶어, 천사아가씨.

당신이 마음에 드는군.

- 271쪽

 

 

하하하. 이게 뭐죠? 범죄소설인데 위트가 넘칩니다. 하하하

 

각 단편들은 하드보일드 거장의 소설답게 문체는 불필요한 수식이 일체 없이 긴박한 상황 속 사실만을 간결하고 담백하게 전달합니다. 사건은 지지부진한 부분 없이 빠르게 전개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탐정은 바쁘게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건의 진상을 향해 숨가쁜 질주를 해요.

그들은 때로는 거칠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가끔은 정의감도 보이기도 하며 선악이 공존하는 듯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저는 단편소설은 솔직히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요, 짧은 분량 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결말이 나는 경우를 몇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살인의 예술》 속 단편들은 모호한 결말도 없었고, 내용적으로도 군더더기없이 꽉 차 있어서 좋았어요.

 

이번 책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읽을 책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전설적인 탐정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기나긴 이별>로 정했습니다.

 

참, 왜 제목이 《살인의 예술》인가 했더니, 레이먼드 챈들러가 기존의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짧은 에세이 'The Simple Art of Murder'가 있다고 하네요. 그 에세이도 함께 수록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해 봅니다. ('하나비'님의 블로그에서 본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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