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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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 검은숲

 

 

상관없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

그게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야.

 

_ 157쪽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한 남자, 아니 한 노인이 있다.

그는 어딘가에서 탈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대체 몇 살일까? 이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 곳을 빠져나간다는 내 판단은 옳을까?

내 머리를 믿어도 될까. 이 모든 것이 망상이라면 어쩌지.

드디어 숲을 빠져나갔을 때 인간만큼이나 큰 파리가 그에게 다가와 말한다.

"어서 와. 네가 오기를 내내 기다렸어."

 

그, 사부로는 노인요양시설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기억력에 의문을 느끼고, 자신이 있는 이 시설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기억을 되찾기 위해 일기장을 뒤적이던 그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남긴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발견한다.

이 곳은 감옥이고 이 메시지를 봤다는 걸 들키면 안 되고, 도망치기 위한 힌트는 여기저기 있으니 조각을 모아라, 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본 사부로는 자신이 자주 가는 공간에서 지문이 새겨진 골무를 발견하고 사용해 본 후 메시지를 남긴 '협력자'의 존재를 믿기 시작한다.

사부로는 이제 탈출을 결행하기 위해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서 동료를 모아 그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려고 하지만, 동료 중 한 명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기억을 잃은 채로 돌아온다.

 

사부로의 탈출 계획은 들통나 버린 걸까?

도대체 사부로가 있는 이 시설은 어디이고, 이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사부로는 과연 이 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

사실 SF소설은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고바야시 야스미'라는 이름 하나로 책을 선택했다.

작가는 <앨리스 죽이기> 등 죽이기 시리즈로 워낙 유명하지만, 나는 작년에 읽은 <분리된 기억의 세계>를 너무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분리된 기억의 세계>가 '기억'이라는 소재로 미래의 모습을 다뤘다면, 이번 《미래로부터의 탈출》은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달과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인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바야시 야스미가 그린 미래의 모습은 솔직히 끔찍했다.

저출산과 의료기술 발전으로 인한 수명 연장으로 전세계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일하지 않고 사회보장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늘어나면서 '실업자'라는 개념조차 시대착오적인 말이 되어 버린다.

인공지능에 의존하며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 거기다 인간들은 더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어느 순간 제한없이 '개조'되기 시작한다.

 

작가가 어마어마한 상상력으로 그린 독특하고 탄탄한 미래의 모습이 그저 허황되게만 보이지는 않기에 조금은 오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바야시 월드 속 미래의 모습은 절망적이지만, 조그만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또 생각해 보면 애매하다. 그래도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할 테니 '희망'이라도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토록 매력적이고 독특한 '고바야시 월드'의 새로운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내게 그런 것처럼 다른 독자들에게도 작가의 유작이 된 《미래로부터의 탈출》이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가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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