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 실격

다자이 오자무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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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자이는 이 소설을 탈고한 후 한 달 뒤 애인과 함께 자살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다 읽고난 후 뭔가 우울해지는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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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수기 앞뒤에 '머릿말'과 '후기'가 붙은 형식의 액자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머릿말'에 등장하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동일 인물로 보이는 한 남자는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모습, 그리고 머리칼이 다소 희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남자는 언뜻 웃고 있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불길함과 스산함을 가진 얼굴을 하고 있다.

마지막 나이 든 모습에서조차 남자는 표정도, 인상도 없어서 보는 이를 놀랍고 소름 끼치게 만드는, 야릇한 얼굴을 가졌다.

 

그리고 그 남자, 수기 속 서술자인 '요조'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인간으로서 가진 본연의 감각을 가지지 못해 고통스럽고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웃거나 일부러 광대 짓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진으로 보건대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고 머리마저 좋았던 것 같은데, 요조는 필사적으로 남들과 같아 보이는 삶을 살려고 자신의 진짜 속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다.

 

요조는 중학교 시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눈치챈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친구는 요조에게 그가 여자들을 홀릴 것이라는 예언과 굉장한 화가가 될 거라는 예언을 한다.

 

그 뒤 도쿄의 고등학교에 입학한 요조는 아버지 몰래 그림을 그리러 다니며 알게 된 호리키와 어울려 다니면서 술과 담배, 매춘부에게 빠져드는 생활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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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신 병원에 갇힌 후 스스로 인간으로서 실격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그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아봐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을 받아주는 여성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는 듯 보이지만, 그의 시선으로 쓰여 진 수기를 읽어보면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긴, 스스로 '인간으로서 실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만 해도 그 자신을 온전히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실격이라고 판단하지만, 그의 삶을 보면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결국은 의지를 넘어서는 일을 하지는 못하고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말지만 말이다.

또 그의 주변에 이기적이고 나쁜 이들도 많았다.

누군가는 그를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홀대했다.

물론 그를 받아주고 그를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수기의 마지막 그의 고백은 반전 아닌 반전으로 다가와 더욱 안타깝고, 그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을 한참 쳐다본다.

요조의 삶이 다른 이의 눈으로 보면 분명 '실격'에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아온 삶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의 삶을 실격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지만, 다음 번에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은 소설이다.

다시 읽는다면 요조의 모습을 보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또다른 마음이 들 것만 같다.

 

나는 인간에 대한 공포감에 늘 버들버들 떨면서, 또 인간으로서의 자기 언행에 조금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온갖 고뇌를 가슴속 작은 상자에 숨기고, 그 우울과 긴장감을 기를 쓰고 감추며, 오로지 천진난만한 낙천성을 가장하면서 점차 광대 짓만 하는 기괴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어떻게 하든 상관없으니까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내가 그들의 이른바 <생활> 밖에 있어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겠지

아무튼 그들의 눈에 거슬리면 안 된다. 나는 무(無)다, 바람이다, 허공이다.

그런 생각만 커져서 광재 짓으로 가족을 웃기고 온 힘을 다해 광대 짓을 서비스했습니다.

_ 17쪽

 

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닙니다. (P. 137)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재가 지금까지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지르듯 처참하게 살아온 <인간> 세상에서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딱 한 가지는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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