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도둑맞은 편지

에드거 앨런 포 / 열린책들

 

 

워낙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은 이미 많이 들어봤다.

작품 중 읽어본 것은, 이 책에도 수록되어 있는 <검은 고양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다른 단편들도 읽었을텐데 기억에 남는 것이 <검은 고양이>인 듯도 하다.

 

그리고 참으로 우연히도 얼마전 에드거 앨런 포의 시가 소재로 사용된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 <시인>도 읽은 터라 이 책이 더욱 반가웠고 궁금했다.

 

<어셔가의 붕괴>, <붉은 죽음의 가면극>, <검은 고양이>를 읽다보면, 기괴하고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감정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나는 죽어가고 있어.

이 비참한 상태에서 분명 죽게 되겠지.

그렇게, 다름 아닌 바로 그렇게 죽을 거야.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두려워.

그 일들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가 두려워.

가장 사소한 일조차 그것이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동요에 미칠지 모를 영향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사실 위험 따윈 두렵지 않아. 위험에 따르는 공포가 두려울 뿐이지.

이렇게 무기력한, 이 비참한 상태에서 소름 끼치는 유령과 같은 공포와 맞서 싸우다가 목숨과 이성을 함께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조만간 닥쳐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_ 18쪽

 

 

친구인 로더릭 어셔가 보낸 절박한 편지를 받고 그의 저택에 온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어셔가의 붕괴>는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

거대하고 황폐하고 음산한 저택,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남자 등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고딕한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

어느 폭풍우 치는 밤에 남자의 죽은 동생이 문 앞에 나타나 더욱 공포스러운 느낌을 준다.

 

<붉은 죽음이 가면극>도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걸리는 순간 30분 안에 피를 토하며 죽는 역병 '붉은 죽음'을 피해 프로스페로 공은 지인들을 수도원으로 대피시키고 그 안에서 지낸다.

외부의 사람들이 붉은 죽음으로 죽어나가든 말든, 수도원 안에서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성대한 가면무도회가 열리고 초대받지 않은 '붉은 죽음'의 형상을 한 누군가가 나타난다.

가면극이 열리는 곳의 인테리어,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이들의 기괴한 모습 등이 무언가 오싹하고 섬뜩하다.

 

유명한 <검은 고양이>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오싹하다.

동물을 사랑해서 많은 반려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화자는, 어느 순간 점점 기질과 성격이 나쁘게 변한다.

아내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감정마저도 변덕스럽고 조급해져 급기야는 폭력까지 휘두른다.

아꼈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쪽 눈을 도려내고 죽이기까지 한 화자는, 집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려 볼 공포스러운 광경을 목격하지만 그래도 그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아쉬운 마음에 검은 고양이를 찾는 그에게, 어느날 플루토와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기질은 다시 한번 흉악한 일을 저지르게 만든다.

 

 


 

위 3편의 단편이 공포와 기괴함을 주었다면, 마지막 단편 <도둑맞은 편지>는 추리소설의 정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느날 '오귀스트 뒤팽'에게 경찰청장 G가 찾아와 '문제가 너무 단순하지만 자신들을 곤경에 빠뜨린 수수께끼'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체 높은 누군가가 중요한 편지를 도둑맞았고 범인을 알지만 그 범인 모르게 그 편지를 되찾아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G는 범인이 자리를 비운 틈에 그의 사무실 등을 모두 뒤졌지만 그 편지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며, 구석구석 벽이나 지하실, 의자 하나하나까지 모두 수색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분명히 범인이 가지고 있을 그 편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뒤팽의 추리로 결국은 편지를 되찾아오게 되는데, 그가 펼치는 논리가 압권이다.

압권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너무 장황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좀 들지만... 하하.

 

여기 등장하는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 연작 3편과 '황금 버레', '범인은 너다'를 합하여 추리 소설의 모든 것을 확립한 다섯 단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뒤팽이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사실은, 확실히 요즘 추리소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기본 원칙으로 보인다.

 

짧은 단편들이었지만, 환상 소설과 공포 소설, 추리 소설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포의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지도를 이용한 수수께끼 놀이가 있는데,

이 놀이를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깨알같이 작게 쓰인 지명을 제시하여 상대를 골탕 먹이려고 하지만,

숙련된 사람은 대문자로 지도의 한쪽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이어져 있는 지명을 고른다네.

이런 지명은 지나치게 큰 글자로 쓰인 거리의 간판이나 플래카드처럼 너무 명백해서 주의를 끌지 못해.

여기서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을 오히려 보지 못하는 물리적 간과는 정신적인 몰이해와 거의 비슷해.

인간의 지성은 너무 중뿔나고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한 고려 사항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지.

 

_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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