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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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 이봄

 

이 소설은 2009년도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수도권 연속 의문사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고 한다.

사건은 이른바 꽃뱀 사건이었는데, 그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보통 꽃뱀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외모와 몸매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피의자인 기지마 가나에는 아름다운 외모나 엄청난 몸매를 가진 여성이 아니라 100KG이 넘는 뚱뚱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들은 어떤 이유로 빠져들고 매력을 느껴서 엄청난 돈을 갈취당한 걸까?

 

소설 <버터> 속 꽃뱀 '가지이 마나코' 역시 평범한 외모와 약간은 통통한 몸매를 가진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주간지 기자 리카는 가지이를 인터뷰하려 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한 상황에서, 친구 레이코의 조언 덕분에 결국은 구치소에서 대면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리카는 가지이에게 조금씩 압도되었다.

리카는 바쁜 생활 탓에 음식을 손수 해먹는 일이 없었지만, 가지이가 인터뷰의 조건으로 요리와 요리를 먹은 느낌을 듣기를 원하자 우선 버터간장밥에 도전해 본다.

버터간장밥을 시작으로 리카는 점점 버터의 맛과 풍미, 음식에 빠져들게 되고, 그와 동시에 가지이에게도 점점 빠져든다.

 

버터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차가운 채로 넣어요.

정말로 맛있는 버터는 차갑고 단단한 상태에서

식감과 향을 맛보아야 해요.

밥의 열기에 바로 녹으니까

반드시 녹기 전에 입으로 가져가야 해요.

차가운 버터와 따뜻한 밥.

일단 그 차이를 즐겨요.

그리고 당신 입속에서 두 가지가 녹아서 섞이며

황금색 샘이 될 거예요.

네, 보이지 않아도 황금색이란 걸 아는, 그런 맛이죠.

버터가 엉킨 밥 한 알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마치 볶은 듯한 향기로움이 목에서 코로 빠져나가죠.

진한 우유의 달콤함이 혀에 감기고...

 

 

_ 40쪽

 

 

작가는 전작인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와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를 통해 음식과 요리를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였는데, 이번 소설 역시 요리와 음식이 너무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특히 제목인 <버터>는 너무도 소설 속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이 책의 제목을 다른 걸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요리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리카는 가지이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녀가 요구하는 음식들을 먹고 요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녀 스스로 음식 본연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고 점점 요리하기를 즐기게 된다.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임에도, 음식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맛깔나고 감각적이었다.

읽으면서 리카가 먹은 요리며 방문한 식당들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특히, 리카가 처음 가지이의 요청으로 만들어 먹게 되는 '버터간장밥'은 인상적이었다.

사실 엄청나게 간단한 음식임에도 리카는 그 버터간장밥을 시작으로 버터와 요리와 가지이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음식에 진심인 가지이는 버터 대신에 마가린을 쓴다는 이야기를 하며 몹시 화를 내기도 하는데, 나 역시도 얼마전까지는 그렇게 밥을 먹었던지라 약간 뜨끔했다.

음, 좋은 버터를 쓰면 버터간장밥으로도 엄청나게 환상적인 맛이 된다는 말이지...

 

처음 가지이가 리카에게 꼭 먹어보라고 했던 '버터간장밥'은 남편이 자주 해 먹는 음식인데, 버터의 종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가린을 얹어 먹었다는...

버터와 마가린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그 차이가 뭐 별거겠어, 라는 생각을 나 역시도 했다.

가지이가 알면 아주 경멸에 찬 눈초리를 보내겠구만...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과도하게 날씬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 소설에서 보여지는 일본 사회의 모습까지는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리카가 취재하던 사건 중에 어울리던 무리들에게 맞아 죽은 중학생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론은 소년이 먹을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그 불량한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다는 걸 전하면서 그 책임을 일하는 엄마에게로 돌린다.

아니, 말이야 방구야...

어째서 자식을 위해 일하는 엄마가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거지...

일본 사회가 더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 가지만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고,

모든 것에서 남들 수준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각자 자신의 적당량을 즐기고, 인생을 전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텐데.

담배도 식후에 한 개비쯤 즐겨도 되고, 살이 좀 쪘다고 주위에서 난리칠 일도 아니잖아.

이렇게 말하면 게으름뱅이라고 혼나려나.

 

_ 106쪽

 

 

소설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건, 요리를 통해 리카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날씬한, 아니 마른 몸을 유지했던 리카는 음식에 눈 뜨면서 체중을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지만, 그런 그녀에게 주변 사람들은 통통해지고 있어 보기 좋지 않다면서 훈수를 둔다.

레이코가 말한 부분이지만, 166cm의 리카의 적정 체중은 60kg 정도이다. 리카는 59kg이 되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그녀가 과체중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적당량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자유롭고 더 멋진 사람이 되었다.

 

리카의 집에서 다함께 칠면조 요리를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행복한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요리를 찾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듯이, 스스로의 행복을 제대로 찾은 듯한 리카의 모습이 너무 멋지고 장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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