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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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제목만으로 시종일관 으스스한 공포 호러 소설을 생각했던 내게 《대불호텔의 유령》은 공포소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엄청난 긴장감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뭐랄까.

읽고난 후 나는 이 소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원한, 분노, 악의, 유령 등 호러소설의 요소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었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이유로든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삶이란 것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비주류 사람들의 치열한 모습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왜 이토록 어려울까요.

불안함으로만 가득할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요.

우리에게 사랑이란 덧없는 기억이고,

불행은 오래 남는 이야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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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은 사람들을 떨어뜨려 놓아요.

하나씩, 하나씩, 찢어놓죠.

현실을 알려주는 거예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드러내는 거예요.

혼자 남게 되는 것.

나의 이야기를 오직 나에게만 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

아득한 꿈이 되어버리는 것.

<대불호텔의 유령> 中

 

소설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속삭이는 악의와 분노와 원한이 가득한 목소리들을 듣게 된다.

<니콜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쓰려 노력하지만, 글쓰기는 진척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중 엄마 친구인 보애 이모의 아들 준으로부터 인천의 대불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곳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녹색 재킷을 입은 여성을 보게 된다.

그뒤 나는 보애 이모의 어머니인 박지운에게 과거 대불호텔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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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프런트 직원이었던 고연주는 사람들로부터 '귀신 붙은 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호텔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고연주는 미국인 신원보증인을 만나 미국으로 가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을 돕던 지영현은 인천 월미도 폭격으로 부모님을 잃고 당숙모의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 앞에 유령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 셜리 잭슨이 소설의 소재를 찾아 대불호텔에 장기투숙하게 된다.

여기 대불호텔에는 보애 이모의 아버지인 청인 뢰이한도 일하고 있었다.

 

어느날 대불호텔을 공격한 무리들을 피해 우연히 함께 식당에 모여있던 고연주, 지영현, 셜리, 뢰이한은 대불호텔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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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

무엇에 원한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죠. 그렇기에 두렵죠.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왜 원한을 가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들.

그래서 오직 원한만 기억하는 존재들.

지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

 

<대불호텔의 유령> 中

 

소설 속 셜리 잭슨이 이야기한 자매의 원한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단 한번도 그 동화를 읽으면서 억울하게 죽은 사또들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자매의 원한은 결국 해소되지만, 그들로 인해 또다른 원한을 가지게 된 죽은 사또들의 분노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것은 원한이 또다른 원한을 낳게 되는 끔찍하고 서글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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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는 박지운, 보애 이모에게서 각각 다른 대불호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각기 달랐기에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대불호텔에 오래도록 뿌리 내려진 원한과 악의가 깃들어 있다는 서늘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청화루의 이청화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소설은 악의와 분노로 점철된 결론이 아닌, 삶이란 것에 한걸음 내딛을 수 용기와 사랑을 보여준다.

 

꼭 어떤 가능성만을 보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후회할지도 모르죠.

아마 끝내 이루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력이 남아 있어요.

이 힘이 남아 있는 한, 그냥 계속 이렇게 해보고 싶어요.

 

<대불호텔의 유령> 中

 

너무도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없는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짜 마음을 만들어낸 어느 여인의 모습을 통해 감추어진 진짜 사랑과 영원한 사랑을 생각해 본다.

결국은 끊임없이 계속 기억하고 기억될 사람, 사랑.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악의? 그까짓 것들.

언젠가 악의와 분노와 원한의 목소리가 또다시 불쑥 또아리를 틀어 속삭이고 위협하고 달려들지 몰라도, 지금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 옆의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삶을 지속하게 하고 글을 쓸 수 있게 한다는 걸 이제 소설 속 '나'도 잘 안다.

 

그래, 결국은 사랑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든 그 사랑이라는 걸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때로는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조용히 소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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