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두 명의 공통점은 둘 다 흑인의 피가 섞였다는 점, 다른 점은 한 명은 백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흑인임을 인정하며 중산층으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겠다.
클레어는 자신이 흑인임을 속이고 백인 사업가와 결혼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아이린은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린은 2년 전 시카고에서 클레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클레어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른 지역의 먼 친적집으로 가게 되었고, 십이 년만에 이렇게 우연히 재회하게 된 것이었다.
반가워하고 벅차하는 클레어와는 반대로 아이린은 클레어가 불편하다.
그런데도 그녀의 초대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고, 그녀의 집에서 흑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가득한 인종차별주의자인 클레어의 남편 잭을 만나게 된다.
클레어는 소위 '패싱'이라 일컬어지는 백인 행세를 하며 잭과 결혼했고, 잭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흑인에 대한 혐오가 가득한 남자였다.
클레어는 아이린의 삶에 자꾸 끼어든다.
클레어를 멀리 하려는 아이린의 의지와는 반대로, 클레어는 아이린의 집에 찾아오고 그녀의 주변 흑인들의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하며 할렘 안의 활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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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을 통해서 '패싱'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가끔씩 선택적 패싱을 하는 아이린의 모습과 잭이 하는 말들을 통해서 그 당시 얼마나 인종차별적 요소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백인 행세'를 하는, 소위 '패싱'을 하는 여성들의 태도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가난했던 클레어는 적극적으로 패싱을 해서 부유한 남자를 만나 돈 걱정없이 살 수 있었고, 아이린은 적극적인 패싱은 하지 않았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굳이 자신이 흑인임을 드러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시카고의 드레이튼 호텔 루프탑에서 아이린은 자신이 흑인임이 밝혀져서 호텔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한다.
더구나 아이린은 남편 브라이언이 의사여서 중산층에 속했고 어느 정도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가끔은 저런 차별적 대우를 받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흑인들의 삶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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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극심한 행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아무 잘못없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도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의 어느 곳에서는 흑인들에게 '검둥이'라고 혐오 섞인 발언을 하며 그들을 공격하거나,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턱대고 총을 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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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클레어의 행동의 의미를 잘은 모르겠다.
그토록 원하는 삶을 가졌는데도 그녀는 무언가 공허함을 느끼고 자신이 부정하고 떠났던 흑인들의 삶에 다시 발을 넣는다.
만약 그 사실이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인 남편에게 알려진다면,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텐데 말이다.
백인 행세를 하면서도 흑인에 대한 갈망을 품었던 클레어,
그녀가 가진 그 위태로움은 그녀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두껍지 않은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내가 클레어였다면, 아이린이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