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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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길고 낯설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던 <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을 읽었다.

정말로 이렇게 불운할 수 있을까 싶은 주인공 '히나구치 요리코'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도라 아저씨는 요리코에게 마술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같은 동네 아이인 쓰루를 옥상에서 아래로 던졌다.

거기서부터 히나구치 요리코의 기구한 인생의 막이 올랐다.

2017년 현재,

볼링을 친 후 스쿠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던 길에 요리코는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사고를 당하면서 낙하하는 순간, 그녀에게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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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폭력을 행사하던 오빠 아라타가 낯선 아파트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가족들은 그가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아라타는 깨어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잊은 채 새사람으로 거듭난 아라타.

그러나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아빠는 사라졌고, 엄마와 아라타, 요리코는 이로카와 백부의 집에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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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볼링장에서 볼링을 치던 요리코에게 우라베 아오이가 말을 건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3명을 죽이고 2명에게 중경상을 입히고 자신은 자살해 버린 아오이의 오빠 때문에, 아오이의 집안은 풍비박산 직전이다.

아오이는 '그 사건'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말하며 도움을 청한다.

"가해자의 동생과 피해자인 언니. 둘이 힘을 합쳐 이 사건을 파헤치는 르포를 쓰는 거예요." (p. 95)

그렇게 요리코와 아오이는 함께 피해자들의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자 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오이의 뻔뻔스럽고 능청스럽고 이상하고 독특한 행동에 요리코는 놀라면서도 이내 수긍하며, 점점 아오이와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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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요리코와 아오이가 진실을 찾아 헤매는 '그 사건'의 기사로 시작한다.

도대체 그 사건에 요리코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사건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요리코의 과거도 모습을 드러낸다.

 

요리코는 정말로 불운한 인생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 겪은 사건, 오빠의 폭력 등은 그녀가 겪어온 다른 일들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약해 보일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요리코 스스로가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어린 나이 때부터 이상한 상황에 노출되어 세뇌당하며 살아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기에, 정작 요리코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것이 요리코를 지키고 돌봐 줄 의무가 있는 부모가 이미 세뇌당해 있었으므로, 그녀는 그런 삶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 죄책감도 분노도 가지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의지'라는 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될 거야.

네 의도와는 상관없이.

운명 같은 거라고 할 수도 있겠네.

네가 우연히 우라베의 여동생으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운명이라는 게 있고, 나도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으니까.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아.

그리고 난 그런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이뤄진 백화점 같은 사람이야.

 

_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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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안 풀리고 부조리한 삶을 살아온 요리코.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싶을만치 안 풀린다.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이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진 요리코의 모습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래도 참 안 풀리고 마지막까지도 쉽게 곁을 내어 주지 않으며 엉망진창인 인생을 선사하던 그 삶이란 것에도 일말의 양심이란 것이 남아 있었나 보다.

 

요리코의 마지막 말이 "살아야겠어."라서 괜히 웃음이 났다.

사실 엉망진창 삶이 아주 콩알만큼의 양심만 있어서 걱정했는데, 그래서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안도의 헛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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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기존에 읽었던 '오승호'식의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니라서 처음 읽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평범하지 않아 보였고,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도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읽는 동안 역시 '오승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조금 달라졌을지라도, 이 소설 속에는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조리한 사회와 그 부조리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해 나름대로 세상을 향해 일갈하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의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운 내용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호'에 한 표 던진다.

아니, '호호'라고 말해본다.

읽는동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마지막의 그 통쾌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역시 믿고 읽는 '오승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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