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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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관련 책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는 걸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미술 작품들을 접하고 그 내용을 알아가면서 그 작품들이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래서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은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총 3개의 시리즈로 기획된 '더 갤러리 101(The Gallery 101)'은 예술가 101명의 그림을 통해 본 다양하고 풍부한 인간들의 모습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리즈의 두번째인 이번 책에서는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의 작가와 작품들, 그리고 미술사조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작품들도 많았고 기억에 남는 작가들도 많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떠올려 보면, 원래 알고 있던 작가와 작품보다는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더 인상적이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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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전 유럽을 흔들던 때, 빠르게 발전하고 번성해 가는 영국은 '최고의 시절'처럼 보였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젊은 예술가들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때 재능있는 젊은이들은 라파엘 이전의 가식 없는 예술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라파엘전파'를 결성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그린 '진실'에 악평을 날린다.

일반 대중들에게 '진실은 좋지만 궁상은 싫었고, 거짓인 줄 알지만 풍요는 좋았기' 때문이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살롱전에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악평을 쏟아냈다.

이전 그림 속 비너스들처럼 8등신의 늘씬한 여자가 아닌 자그마한 키의 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젊은 여성, 거기다 흑인 하녀가 예약을 암시하는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을 당시 사람들이 봤을 때는 '당시의 적나라한 현실'을 그대로 까발린 것처럼 보였기에 그들은 마네를 비난하고 마네에게 분노했다.

이전에는 '비너스'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왔던 누드화의 법칙을 마네는 여지없이 깨버렸고, 그는 그렇게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관례적으로 행해졌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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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사회에서 자신만의 뛰어난 예술성을 발휘했던 화가들도 있었다.

'메리 커셋'의 그림을 보면 아이를 돌보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티타임을 갖는 등의 상류층 여성의 일상을 그린 것 같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그들의 모습에서 미묘하게 권태로움이 느껴진다.

르누아르, 드가, 툴루즈로트레크 등 유명 화가들의 모델이었다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게 된 '수잔 발라동'의 그림과 삶도 인상적이었다.

제1, 2차 세계대전 등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작품으로 남겨 연민과 공감을 일으킨 '케테 콜비츠'도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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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그림은 무슨 그림일까, 생각을 많이 했다.

제목과 미묘하게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 더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표지의 그림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나쁜 예감"이라는 작품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라는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작품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하면 모를까, 이 작품이 시장에 나와 거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밀레비치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비상하던 절대주의와 기하학적 도형들은 스탈린의 집권 이후 전체주의 독재가 본격화되자 거부당하고 부정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레비치 역시 불행하게 사망했다는 내용을 보고 나니, '나쁜 예감'이라는 그의 작품은 책과 잘 어울려 보인다.

책을 대표하는 그림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이고.

보인다.

노란 루바쉬카를 입은 얼굴없는 남자가 무척이나 고독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존재하니, 그에 있어서는 위대한 고독의 순간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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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기존에 읽었던 미술 관련 책들도 좋았지만, 이번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이 더 좋았던 것은 내용이 더 깊게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깊다는 것이 내용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책에서 내가 느낀 깊이는 문장이 주는 소리였던 것 같다.

그 그림들이 어떤 내용을 토대로 그렸고 어떤 걸 나타내고자 했다는 등등의 이야기들도 좋지만, 저자가 전해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특별했다.

 

훌륭한 작품들을 남긴 화가들의 창작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과 외로움과 비난 등을 감수해 나갔던 고독의 순간들.

그 순간들로 인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나 훌륭하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멋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레비치의 그림처럼 개인의 얼굴이 지워진 익명의 존재로 남아 있거나

스스로 얼굴을지우고 익명의 존재가 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말레비치의 노란 루바쉬카를 입은 남자는 오랫동안 얼굴(개성)을 잃은 채 그곳에서 고독하게 서 있었다.

마음 속에는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을 간직한 채 눈앞에 닥친 디스토피아를 견디면서.

 

_ 432쪽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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