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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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나와 후미의 관계를 표현할 적당한 말, 세상이 납득할 말은 없다.

거꾸로 같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산더미처럼 많다.

우리가 이상한 걸까.

그 판단은, 부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미 거기 없으니. _ p. 356

 

무엇보다 자유롭고 사랑이 충만했던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살던 사라사, 아홉 살이 된 사라사는 부모님을 잃고 이모의 가족과 살게 된다.

자유롭게 살던 사라사는 이모의 가족과 집이 답답했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숨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라사는 친구들과 놀던 공원 벤치에서 늘 아이들을 바라보던 남자 '후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다. 이모의 집에는 너무도 가기 싫었기에.

외롭고 억압되어 있던 사라사는 후미의 집에서 예전과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고, 후미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두 달의 시간이 흘러 사라사는 실종처리되어 TV에까지 사진이 공개되고, 판다를 보러 갔던 공원에서 사람들의 신고로 후미와 사라사는 붙잡힌다.

세상은 사라사를 불쌍한 피해자, 후미를 파렴치한 아동성애자로 낙인찍고 그들은 서로의 손을 놓고 만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후, 자신의 감정과 슬픔을 마음 속에 억제하고 평범한 듯 살아가던 사라사는 우연히 방문한 카페에서 그리웠던 '후미'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후미의 앞에 떳떳하게 나타날 수는 없어 카페를 방문하며 그를 조금씩 바라본다.

 

-

사라사는 평이한 듯 무난한 듯 살아가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늘 노출되어 있다. 세상은 여전히 그녀를 파렴치한에게 감금된 '불쌍한 피해자'로만 인식하고,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그녀가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거나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더 안타깝고 불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라사와 후미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나조차도 이런 일을 뉴스로 접했다면 '사실은 이게 진실'이라고 외치는 후미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5년이나 흘렀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없어 보였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라사와 후미를 세상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의 행적과 현재의 모습을 추적하고 인터넷에 올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계속되고 반복된다.

분명 주변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많았다. 진심으로 사라사를 걱정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 역시 사라사를 걱정하고 동정할 뿐,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았다.

세상의 평범에서 동떨어진 그들의 마음과 상처를, 그들만이 보듬고 치유할 수 있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세상 사람들에겐 허공 속의 메아리뿐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많이 울었다.

내가 왜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다시 한번 느꼈다.

나 역시도 이런 일을 현실에서 봤다면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고 부정하고 동정했겠지만, 소설이 있기에 그들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과 다양한 관계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마음대로 세상의 잣대로 그들을 재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언제까지고 도망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함께라서 다행이다. 함께 미소지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사라사와 후미가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 있지, 후미. 다음엔 어디로 갈래?

- 어디든 좋아.

어디로 흘러가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_ p. 366

 

 


 

 


(p. 21)

아빠와 엄마와 나, 물방울 가득 맺힌 푸른 에메랄드 쿨러와 사이다에 빛이 비치고 모든 게 꿈처럼 아름답다.

아빠와 엄마가 위험한 사람이라 해도 나는 두 사람이 너무 좋았고, 위험한 일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가 나의 봄날이었다.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나는 믿었다.

 

(p. 236)

어떤 아픔이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내 손에도, 모두의 손에도 하나의 가방이 있다. 아무도 대신 들어줄 수 없다.

평생 자기가 안고 가야 할 가방 안에 후미의 그것이 들어 있다. 내용물은 다 다르지만 버릴 수는 없다.

 

(p. 316)

나는, 당신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어설픈 이해와 상냥함으로 나를 칭칭 옭아매는, 당신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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