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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평점 :

할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립고 고맙고 아련한 느낌이 든다.
예전만큼 자주 뵙지 못하는 할머니라 그립고, 어린 시절 나를 예뻐해주셨던 할머니라 고맙고, 젊은 시절 얼마나 고생하셨을까를 생각하면 아련하다.
나에게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의 할머니였던 그녀였기에, 어쩌면 나의 할머니가 아닌 그녀의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책 <나의 할머니에게>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 물론 손녀를 사랑하고 애정으로 보살피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한국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여성 작가 6인이 각자만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더 특별하고 따스하다. 우리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우리를 애정했던 그녀들을 제대로 응시한 적이 없었으니까.
제사 전날이면 늘 꿈에 찾아왔던 남편이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대신 그는 어느새 관계가 소원해진 딸과 아들,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을 찾아갔다. _ 윤성희 | 어제 꾼 꿈
할머니의 네 번째 기일에 남동생은 20여년 전 프랑스에 살 때 1층에 살던 이웃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고, 그녀는 그동안 읽지 않고 보관해 둔 할머니의 일기장을 펼친다. _ 백수린 | 흑설탕 캔디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미래, 노인들이 거주하는 유닛 A, B, C, D, F가 있고, 민아는 가장 쾌적한 최상위 유닛인 A를 거쳐 현재는 유닛 D에 거주한다. _ 손원평 | 아리아드네 정원
모든 이야기들이 좋았지만, 위 3가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어제 꾼 꿈> 속 '나'는 하루하루 동네의 다른 노인들과 이것저것 배우면서 하루를 보내지만, 실상은 자녀들에게 소외되고 주변 친지들과도 평탄하지 못하다. 물론 소설 속 '나'는 친모가 아닌 계모라는 특수사정이 플러스되어 자녀들과의 관계가 더 안 좋긴 하지만.
<흑설탕 캔디>는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몰랐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망 후에 남매를 돌봐주던 할머니는 아빠가 파리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자 남매를 위해 전혀 낯선 외국으로 따라가게 된다. 남매가 곧 그 곳에 적응하며 자신들의 생활에 몰두하자, 할머니는 그야말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덩그라니 놓여 버렸고, 그 안에 외로움과 고독이 점점 쌓여 간다. 그러다 어느날 1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발을 멈추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그와 사전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조금씩 마음 속 활기를 되찾아간다.
물론 지금에 와서 할머니와 그의 관계가 연애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햇살 가득한 방에서 함께 각설탕을 쌓으며 환하게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저 마음이 따스해진다.
<아리아드네 정원>은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사회, 저출산 문제가 계속되자 이민자 수용 정책을 펼쳐 다양한 인종이 유입된 사회, 재정상태에 따라 유닛이 달라지고, 돈이 있다면 죽음조차 정할 수 있는 사회.
그러나 세금의 상당수가 유닛에 쓰여지고 젊은이들의 불만은 고조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린 인종이 아니라,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단결할지도 모르겠어요.(P. 226)"
우리도 나이가 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고 머릿 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현재에서의 이 간극은 메우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위 문장이 틀리지 않다는 걸, 그리고 그들도 살기 위해서라는 걸 알지만 씁쓸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소설 속 모습이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어 다가오는 미래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평소에도 좋아하던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이라 좋았다.
그냥 흘려버렸을지도 모를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 있어 좋았다.
그리고 소설 속 할머니들이 여전히 따뜻해서 더 좋았다.
나를 참 많이도 업어주고 예뻐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역시나 떠오른다. 정말 할머니란 단어만 봐도 왜 이렇게 애틋해지는 걸까.
할머니 등에 업혀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 할머니 댁 마루에서 사촌들과 커다랗게 떠들며 웃는 어린 시절의 나, 할머니 댁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사촌 언니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반짝반짝거린다.
내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할머니, 그런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더 좋았던 소설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