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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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책을 참 좋아한다. 어린 시절에는 이 책 저 책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서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 과정들이 다 좋았다.

 

이 책 <책에 바침>은 정말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저자가 '책에 바치는 헌사'이다.

 

아직 자동차가 사용되지 않았을 시절, 말을 이용해 온갖 운송과 생활을 했던 그 때, 자동차가 혜성같이 등장했지만 사람들은 자동차가 말을 몰아내고 그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책, 기계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압도적으로 우리 생활에 이용되는 지금 현대의 또 다른 대단한 발명품으로 '전자책'이 생겨났다.

자동차가 말이 하던 모든 일들에 사용되는 것처럼, 전자책이 종이책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이 종이책이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되면, 그래서 자신이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 p. 21, 서문 중

그래서 책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이 책에서 한번 열거해보려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거를 발굴해낼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기이하게도 우리 모두가 아주 당연시 여기는 책을 둘러싼 문화 현상 전반에 주목하려 한다. 너무나도 친숙한 나머지 책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될 그 모든 것에.

 

사실 <책에 바침>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유명한 고전이나 책들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책에 바침>은 진짜 '책'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책이라고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저자' 외에도,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텍스트가 필요하고 편집과 인쇄, 제본의 작업까지 필요하다.

 

- p. 25

이제 완성된 작품으로서 수백만 권의 책은, 세상의 모든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이 확고한 형태, 즉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가진다는 확신을 더욱 고양시킨다.

가령 인간의 삶이 그렇듯이.

 

이 책 <책에 바침>은 의외로 재미있다. 작가는 말 그대로 책 그 자체를 여러 분야로 나누어서 이야기해준다.

가령, 새 책, 헌 책, 큰 책과 작은 책, 아름다운 책, 훼손된 책, 불완전한 책, 주석을 붙인 책 등으로 책 몸체에 대하여도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부적절한 책, 비싼 책과 싼 책, 선물 받은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금지된 책책의 사용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해 준다.  

 

책의 여러 모습과 여러 쓰임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험도 빠뜨리지 않는다.

'발견된 책' 부분에서 작가는, 배회하는 애서가를 위한 마지막 남은 피난처 벼룩시장에서 살까 말까 망설였던 수천 권의 책과 결국 손에 넣은 수백 권의 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작가는 벼룩시장에서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예민해져서 책을 고른다. 그렇게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로 인해서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 몇 권의 주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 p. 71

내가 실제로 이 책들을 골랐을까? 아니면 혹시 이 책들이 나를 선택한 건 아닐까? 때로는 책들이 정말로 나를 선택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 책들은 수십 년 동안 제자리를 마련하려고 계획해왔고, 그래서 그레펠트 피쉘른 또는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이 특별한 토요일 아침에 나의 길과 교차한 것이다.

이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서로 얽힌 길을 가던 두 사람이 결국 만나서 평생 함께 지내는 것처럼 숙명 같은 건 아니었을까?

 

책이 나를 선택하다니, 이런 로맨틱한 문장이라니...

확실히 지금의 중고 서점처럼 깨끗하게 정리되고 검색 버튼 하나로 위치와 재고 사항까지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라면, 그 책과 나와의 만남이 이렇게 로맨틱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그 곳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많은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느낌이려나...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일본 여행에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중고 가게에서 cd를 고르고 골랐던 일이 기억이 났다. 가게 앞의 박스 안에 cd가 한가득 들어 있었고, 매장 안에도 가득했다. 일본어를 어설프게 아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카시마 미카' cd를 찾느라 박스를 뒤지고, 매장의 선반을 눈이 뚫어져라 탐색하고 탐색해서 결국 2~3개를 샀었다.

그 때의 그런 느낌이려나... 그 때 엄청 기분이 좋았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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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책에 바침>은 애서가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기분을 선사하는 책이 아닐까.

종이책은 전자책이나 다른 매체에 자신의 자리를 점점 내어주고 있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무한 애정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전자책이 아무리 가볍고 편리하다 해도, 종이책의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너무도 많다. 나 역시도 전자책을 읽지만, 여전히 1순위는 종이책이다. 

 

종이책이 사라진다? 글쎄, 미래의 이야기는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너무나도 바란다. 두근두근거리며 종이를 넘기는 그 손맛, 책 주변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종이 냄새가 너무도 그리워질테니 말이다.

 

- p. 127

나는 개인적으로 조금은 다른 이유에서 초판본을 더 좋아한다. 한편으로는 당연하게도 책 수집가의 자부심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판본에 인쇄된 페이지들을 응시할 때 우리는 작가가 인쇄소에서 갓 나온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응시했던 것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감동 이상의 것이다.

 

- p. 163

읽힌 책은 그것을 읽은 독자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아주 중요한 장의 특별한 한 단락이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독자가 가장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부분, 가장 편안함을 느낀 부분이었다면 언제나 그렇다. 모든 텍스트는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이와 동시에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여행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따금씩 그 여행을 회상하기 위해서라도 읽힌 책은 여행 기록처럼 보관될 필요가 있다. 여행기록들이 다 그렇듯이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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