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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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살인이 시작되었다."

열일곱 살의 진웅, 그에게는 빚독촉에 시달려 일가족 동반자살을 시도하다 엄마를 죽게 만든 아버지, 저수지에서 어린 소녀를 떨어뜨려 죽게 만든 범인으로 의심받아 마을을 떠난 형이 있다.

오늘은 아버지가 출소하는 날이다. 그리고 마을을 떠난 후 서울에서 생활하던 형 진혁이 내려오는 날이기도 하다.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유등 축제로 들썩이고, 아버지와 형이 집으로 돌아온 그날, 진웅을 은근히 괴롭히던 반장이 실종된다.

그리고 셋째 날,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오던 진웅의 가족들은 근처 양계장에서 누군가에게 둔기로 맞은 채 죽어버린 반장을 발견한다.

반장이 실종된 첫째 날에 아버지, 진혁, 진웅은 모두 늦은 밤 집을 나섰다.

진웅은 자신이 집을 나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다음날 잠에서 깨어 자신의 몸에 흙이 묻어 있다든가, 할퀸 상처가 있다든가, 형의 옷으로 옷이 갈아입혀져 있다든가 하는 이상한 정황들을 알게 된다.

진웅은 형이 자신이 잠들기 전 밖으로 나갔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도 방에 없었다는 걸 의아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진혁 또한 그 밤에 밖을 나갔고 온 몸에 흙 따위를 묻히고 들어왔다.

진웅은 그 외에도 형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며 뭔가를 숨기는 모습, 거짓말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며 진혁이 사건의 범인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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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진웅의 시선, 아버지의 시선, 진혁의 시선 등으로 순서대로 흘러간다. 진웅과 아버지를 지나 진혁의 시선까지 나아가면서 우리는 10년 전 저수지 사건과 이번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점점 깨닫게 된다. 그리고 범인이 누구인지를 앎과 동시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가슴이 울컥한다.

이 소설에서 10년 전 아버지는 사업이 실패하자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반자살'이다. 그러나 작가도 밝혔듯이 이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는 명백히 틀렸다. 아버지 외에 다른 가족들은 '스스로 죽겠다'라는, 즉 '자살'의 의지가 전혀 없었으니, 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틀렸다.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강제로 희생' 당했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던 형제 진혁과 진웅은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족인 아버지가 엄마를 자신들의 눈 앞에서 죽이고 자신들마저 죽이려 했다라는 끔찍한 사실은 절대 잊지 못한 채 마음 속 상흔이 되어 남는다.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 더 안타까운 이 가족들의 비극에 가슴이 아팠다.

10년 전 시작된 가족의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비극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을 듯 하다.

한 남자의 잘못된 선택이 부른 가족의 비극은, 여전히 유효하다.

 

 

 

 

- p. 18

세상의 모든 죽음은 엄마의 죽음으로 이어졌기에 내게 죽음은 그저 어둡고 끈적끈적한 무엇 같았다. 이를테면, 여름의 밤. 그래, 밤! 어쩌면 죽음은 내게 매일 오고 마는 밤일지도 모른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고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밤.

- p. 337

평생을 갚아도 아버지는 우리한테 죗값을 못 갚아내요. 왜냐고요? 우리는 그날 모두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죽은 삶을 살았다고요,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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