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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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입니다.

이 살인 사건을 판가름한 것은 '규칙'입니까?

'도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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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네마치에서 경범죄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지만, 어느날부터 사건으로 발전했다. 도로 급커브 출구 쪽 지점에 놓인 골판지 상자를 운전자가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았고 그 안에는 토끼의 사체가 있었다. 그리고 상자에는 빨간색 크레파스로 '생물 시간을 시작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얼마 후에 여자아이가 공업용 접착제가 발린 철봉에 매달린 채 발견되었고, 아이의 등 뒤에 빨간색 크레파스로 '체육 시간을 시작합니다'라고 적힌 찢어진 노트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역 유지인 야오야기 집안의 장남이자, 유명 도예가인 야오야기 후미이치(난보)가 자살한 현장인 자택에서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죽인 사람은 누구?'라고 적힌 낙서가 발견된다. 

 

현재 일을 쉬고 있는 프리랜서 영상 저널리스트인 후시미는 13년 전에 발생한 나루카와 제2초등학교 살인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촬영 제안을 받는다.

13년 전 나루카와 제2초등학교 강당에서 마사키 쇼타로가 강연 도중에 과거 제자였던 무카이 하루토의 칼에 찔려 사망한다. 그 자리에서 붙잡힌 무카이는 재판 중에도 해명이나 반성의 말조차 하지 않았고, 판결 직전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라는 유일한 한 마디만을 남겼다.

 

연속 경범죄 사건과 나루카와 제2초등학교 사건이 '도덕'이라는 한 단어로 기묘하게 교차하고, 범죄의 동기 역시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살한 도예가 난보의 집에 남겨진 낙서를 적은 건 정황상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경찰은 후시미의 아들은 도모키를 의심하는 듯 했다. 도모키가 미술부원인 점, 난보의 저택 근처에서 자주 놀던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점 등으로 말이다.

거기다 다큐멘터리 관련해서도, 후시미는 연출인 오치 후유나가 중요한 뭔가를 숨긴다고 여겼고, 그녀가 촬영 대상인 당시 목격자들을 다루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속 경범죄를 일으킨 범인이 난보 선생의 자살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오치 후유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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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도덕의 시간》뿐만 아니라, 책 속에서도 '도덕'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이지만, 평소에 '도덕'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 노약자 혹은 임산부에게는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등등 일반적인 도덕에 대하여만 굳이 의식하지 않은 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던 듯 하다.

 

책의 시작, 페이지 상단에 늙은 현자와 소년의 대화가 나온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소년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개를 잡아 먹으면 안 되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 심정이 조금 복잡해졌다.

당연하다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런 행동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그걸 일률적으로 모든 환경의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

 

책은 시종일관 흥미롭게 진행된다.

후시미 주변에서 발생한 연속 경범죄 사건과 나루카와 초등학교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범인이 누구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도덕의 의미에도 다시금 생각이 미친다. 

 

다 읽고 난 후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 지 묵혀둔 사이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서 다시 책을 읽었다.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각각의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추리소설 작가인 오승호 님의 다른 소설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특히 작가에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안겨 주었다는, '범죄자와의 공생은 가능한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하얀 충동>이 무척 궁금하다.

 

 

 


- p. 159

무카이가 마사키를 죽였다는 판결, 그리고 무카이 하루토의 죄를 판가름한 것은 과연 법이라는 이름의 규칙일까요? 아니면 도덕일까요?

- p. 409

도덕이라...

참으로 모호하고 그럴싸한 단어. 실상은 무기력한 주제에 마치 규칙처럼 굴려는 단어죠.

대체 누가 그런 걸 정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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