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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덮고 난 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면서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라며 웃을 수 있었다.
이토록 먹먹함을 주는 소설이라니...
'소다 마사유키'는 서른두 살의 조경사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고, 온몸에 화상 흉터가 남아 있고 화상 휴유증으로 제대로 몸을 쭉 펴지도 못한다.
그는 '시마모토 료헤이'가 갓난아기였을 12년전 부터 료헤이를 돌보고 먹이는 등 정성껏 보살펴 왔다. 마사유키는 료헤이의 할머니인 후미에로부터 인간 이하, 아니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했지만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12년 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그들 곁에서 돕고 살아왔다.
마사유키를 무척이나 잘 따르던 료헤이는, 7개월 전 마사유키의 과거를 알고 난 후 반항하며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마사유키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7월 7일을 앞두고 새로운 꿈을 꾼다.
그런데... 7월 7일을 닷새 앞둔 7월 2일 밤, 갑작스럽게 후미에가 세상을 떠나고, 마사유키는 꿈꾸었던 미래를 접고 료헤이를 자신의 집에서 키우기로 결심한다.
- p. 51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3년간, 바보처럼 그날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꿈은 사라졌다.
- p. 81
언젠가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먼 훗날의 일이다. 료헤이가 자라서 세상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후여야 한다. 과연 그때 료헤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마사유키는 지독하게 성실하고, 지독하게 우직하고, 지독하게 착한 남자다. 12년간 후미에가 지독하게 뿜어대는 악의와 인간 이하의 취급에도 자신의 잘못이라며 늘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다. 료헤이의 일에도 마찬가지다. 엇나가기 시작한 료헤이의 행동에 다른 이들에게 늘 사과하고 머리를 숙이는 건 마사유키였다. 료헤이의 부모를 죽음으로 내 몬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그는 그렇게 늘 자신을 낮추고 사과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7월 7일, 그날을 기다리고 꿈꾸며 말이다.
- p. 192
계기는 당신 아버지가 사람을 죽인 거래.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마나베 마이코가 우리 엄마 아빠를 죽였대.
그래, 7월 7일은 마나베 마이코가 만기출소를 하는 날이었다. 오랫동안 그날만을, 마이코의 출소를 기다려온 마사유키는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기만을 꿈꿔왔던 것이다.
그러나 료헤이는 화가 났다.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었던, 그래서 자신이 너무도 좋아했던 마사유키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여자 때문에 자신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 여자가 곧 세상에 나오고 마사유키가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료헤이에게 마사유키는 긴 시간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신과 마이코, 부채집에 대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난봉꾼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마사유키는, 한번도 그들에게서 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게 너무 당연해서 마사유키는 외롭다는 것조차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 마사유키에게 마이코는 하나의 구원이었다. 그러나 마사유키는 마이코 속의 아픔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그리고 결핍되고 절망한 이들은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마사유키의 기억 속 조각 조각 등장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형체를 이루고, 사건의 진짜 전말이 등장하고, 그렇게 인물들의 상실과 절망, 아픔이 여과없이 드러나자 참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이 우직하고 착한 사람 때문에 다행이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 안도감 때문에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정말 굉장한 소설이었다. 한동안 백발의 마사유키가 떠오를 것 같다. 백발의 마사유키가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웃음이 오랫동안 내 마음 안에 머무를 것 같다.
- p. 420
처음으로 사람 앞에서 울었다. 개라서 다행이다, 바보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