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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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의 내가 꼭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회사 연수를 받았던 그 금요일에도, 서울로 회사를 옮긴 후 원룸에 이사를 했던 그 금요일에도, 나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을 시청했다.

결혼, 연애, 시월드, 고부갈등, 장서갈등 등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사랑과 전쟁'을 통해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ㅋ

내가 애정해 마지 않던 프로그램의 작가였던 분의 에세이라니, "이건 꼭 봐야 해!"를 외치며 책을 펼쳐 들었다.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갱년기의 한복판에 서 있지만 그녀의 문장 안에 슬픔이나 좌절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작가는 갱년기가 "각종 사회적 의무와 양육의 부담, 여성성의 멍에를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와 독립의 시기"라고 말한다.

 

작가에 의하면,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말하는 능력과 집중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말을 거들어주는 조력자가 필요하고 사람들은 대화에 한꺼번에 참여하게 되는 등 어느 한 명이 대화를 독점하지 않는 '대화의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아줌마들의 대화는 평등하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인터랙티브한 대화, 그래서 즐거운 수다라고 말이다.   

 

작가의 문장들이 많은 부분 공감되었는데(근데, 나는 아직 공감되면 안 되는 나이이긴 한데...ㅋㅋㅋ),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보는 주변의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아직 세상에 내놓을 만큼 아이들이 큰 것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은, 가끔은 아이에 대한 과한 애정과 과한 보살핌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때도 있었다.

한 에피소드의 제목은 "나는 옛사랑과 한집에 산다"였다.

이야기인 즉슨,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엄청나게 가깝고 서로만을 바라본다. 그러나 아이가 조금씩 커갈수록 특히 사춘기에 직면해 갈수록 아이는 엄마의 손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아이의 전부였던 엄마는 아이의 인생에서 구석자리로 몰린다. 늘 눈앞에서 알짱알짱 다니지만 자신에 대한 살뜰한 애정은 거두어간 옛 애인... ㅋㅋㅋ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슬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이제 작가는 커 버린 아이들을 두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자신만의 시간도 즐긴다.

 

얼핏 나이를 먹는 일이란 참으로 슬프고 우울한 일처럼 느껴졌다. 더이상 젊지 않고, 몸도 예전같지 않게 무겁고, 내 마음도 예전같지 않게 힘이 쭉 빠진다.

그런데 사실 더이상 젊진 않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남은 인생은 길다. 늙었어, 라는 불평이나 후회를 할 바엔 뭐라도 인생에 재미있는 일들을 하는 게 낫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즘 제2의 인생을 즐기시는 어르신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충분히 유투버, 모델, 화가도 될 수 있다. 지금껏 못 해본 여러 운동을 시작해 볼 수도 있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볼 수도 있다.     

 

느긋하게 내 나이를 받아들이고, 여유있게 천천히 일상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싶다. 그렇게 재미있고 우아한 멋쟁이 할머니가 되는 것도 너무 좋은 미래의 모습이니까.

 

- p. 138

'언젠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언젠가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다를 것이다.

중요한 건 믿음이다. 훗날을 믿지 못하면 훗날을 상상할 수도 없다.

 

- p. 139

나이가 든다 해도 쇠락과 비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채워지는 내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일을 믿으며 오늘을 산다. 연습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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