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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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죽음이 없는 삶이 있다. 시간은 흐르지만 누구도 결코 죽지는 않는 그런 삶. 아무리 모진 고문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한이 있어도 아무도 죽지 않는 그런 삶.

 

주인공 '나'는 물고기섬에 살던 가난한 소년이었다. 여덟 살에 사흘동안 내린 폭우로 집에 남아 있던 엄마와 누나가 사망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살았다.

마을에 호텔이 생기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고, 소년은 이 물고기섬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사는 것을 꿈꾸게 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와 함께 사막을 벗어나려 했는데, 임종을 앞두고 돌아가실 듯 했던 할아버지는 끝끝내 죽지 않고 집요하게 살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임종을 앞둔 때에 인간의 삶에서 '죽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할아버지는 계속 살아 있고, 임신을 한 사람은 계속 출산을 하지 못하고 임신중인 몸으로 그렇게 계속 살아있는, 이상한 세계. 이상한 삶.

 

이 소설은 주인공 '나'가 열다섯 살의 나이로 죽음이 없는 백 년의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을 직면하자,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해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니, 죽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지거나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어딘가에 중독되는 생활에 빠진다.

어떤 짓을 해도 계속 살아 있기에, 오히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난폭하고 광기에 어려 살아가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 p. 42

스스로를 자경단원이라 칭한 일시적인 폭도들은 호텔을 털고 길에서 드잡이질을 벌이고 노략질에 맛을 들였다.

전에 농부이거나 양치기라거나 교사였다거나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멈춰버린 시간이 불러낸 낯선 사람들이었다. 숫자가 불어날수록 죄책감을 나눠 갖기 때문인지 그들의 공격성은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계속 살아있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죽이면 죽음이 올 것이라 믿고 할아버지를 계속 죽이려 온갖 방법을 다 쓰던 아버지는 결국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선인장을 훼손하고, 그것으로 인해 마을 사람의 희생양이 되어 그들의 광기어린 고문을 받게 된다.

 

- p. 44

아버지는 심장을 파먹히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처지였다. 죽지 않는 그는 다음 날이면 다시 독수리들에게 물어 뜯겨야 했다.

 

주인공 '나'는 그런 물고기섬을 탈출했고, 사막에서 '아야'라는 소녀와 '이탕카'라는 술사를 만나게 된다. '이탕카'가 떠나고 난 후, '나'는 '아야'와 사막을 벗어나 다른 장소로 여행하며 죽음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무절제한 삶을 살아가는 폭도나 중독자들도 있고, 무리를 지어 이성을 유지하며 교육이나 일상을 살아가려는 이들도 있었다. 또 버려진 아이들의 무리도 있고, 무인도에서 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야'는 '이슬라'가 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 p. 11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시간.

무엇인가 명백하게 어굿난 시간.

......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든 사람, 그것은 나였다.

이슬라가 내게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모두의 죽음을 다시 낳아주었다.

 

죽음이 없는 삶이란 어떨런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성을 부여잡고 무한한 시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겠지만, 아무리 써도 계속 무한한 시간이라면 과연 나는 계속 이성적일 수 있을까...

죽음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후에야,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그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듯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후에야, 현재의 유한한 삶에 대한 애착이 더해지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조연정 평론가의 "《이슬라》는 삶에 대한 절망이 아닌 삶에 대한 애착, 즉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말하는 소설"이라는 문장이 더욱 공감된다.

 

- p. 16

죽음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은 유령에 불과하다는 것. 죽음이 있기에 역순으로 삶의 의미가 생겨났고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 같은 커다란 꿈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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