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반전이 없다>라니, 추리소설 제목으로는 참 의외라고 보였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바로 '반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에서 그 묘미인 '반전'이 없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이 책이 이상하게 끌렸다.


친전은 정년을 코 앞에 둔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형사이다. 안면인식장애로 인해 오인체포까지 해 버린 과거가 있어 현재는 유급휴가중이다.

어느날 친전은 50년 지기 뺀질이 김씨(김길중)가 불러 간 곳에서 무너진 책더미에 깔려 압사한 노인을 발견한다. 친전은 얼마 전 손자 나무의 요청으로 어린이집 주변을 다니는 우비 노인을 찾고 있었는데, 김씨는 사망한 노인이 우비 노인과 동일인이라고 말한다.

현장은 너무도 기이했다. 집 지붕에 구멍이 뚫렸고, 집 안은 엄청난 책더미가 널려 있었다. 거기다 피해자의 얼굴은 신원 확인이 어려울만큼 망가져 있었고, 우비를 입고 있었다.


친전은 현장을 살펴본 후 이 건을 살인사건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사건에 투입된 김나영 형사로부터 더 기이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책들 말이죠, 반전이 없는 거 아셨어요? 누가 반전만 싹 찢어갔어요" (p. 47)


피해자의 얼굴을 망가뜨린 살해도구로 쓰인 책들을 살펴보니, 책의 반전이 모두 찢겨 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해도구가 아님에도 반전이 찢긴 책이 있었는데, 그건 "ABC 살인사건"이었다.


추리소설을 너무 사랑해서 엄청나게 읽고 모으는 친전은, 살해도구로 쓰인 책들의 공통점을 발견하는데, 바로 '화이트펄'이라는 추리전문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화이트펄' 출판사를 찾은 친전은 피해자가 '김전무'라고 불리던 전직 일본 야쿠자 출신의 대부업자 김성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화이트펄'의 전신인 '리문출판사'의 이문석 사장이 고의로 부도를 내고 잠적하자 고리대금업을 하던 '김전무'가 부도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친전은 '리문출판사' 및 '화이트펄'과 관련있는 '만석출판사'의 배만석을 만난 후 김상국이 '판권 페이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만석출판사의 배만석도 김성국과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한다. 우비를 입은 채 반전이 찢겨 나간 책뭉치에 얼굴이 짓이겨진 채로 살해당한 것. 차이점은 이번 책뭉치는 만석출판사에서 출간한 추리소설이었다는 것이다. 이 현장에도 기존 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살해도구는 아니지만 반전이 찢겨진 'ABC 살인사건'이 놓여 있었다.


이후에도 영업부장 출신이었던 변수창이 실종되었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고, 만석빌딩 주변은 물론 배만석, 변수창, 비서실장 최세라를 비롯한 예전 리문출판 관계자 대부분의 집에 침입자가 발생하는 등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범인은 누구일까?

범인은 무슨 이유로 피해자에게 우비를 입하고, 반전이 찢긴 책을 흉기로 사용하는 걸까?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형사가, 기묘하게 반전이 없는 책으로 사람을 살해한 범인을 찾는다라니, 특이하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져 흥미진진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사가 기묘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을 찰나, 그 형사가 추리소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추리소설광이라는 정보가 하나 더 추가되자 뭔가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은 못 알아보지만, 추리소설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반전이 없는 추리소설이 주요 증거인 이 사건에 너무나도 적절한 사람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기묘한 사건은 하나로 끝나지 않고 연이어 일어난다.

그리고 과거의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고 피해자에 대한 범행 방법의 이유가 드러나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반전이 없는 추리소설'이 중요 증거이자 주인공 친전이 추리소설광이다 보니, 사건 진행도 재미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들도 꽤 재미있었다.

책에서 친전이 굉장히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초이세'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름이 뭔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일본의 유명 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를 우리나라 작가로 등장시켰던 것이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초이세의 <선과 점>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10만분의 1의 우연>이 초이세의 <10만분의 일의 기적>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얼굴에 흩날리는 비>도 깜짝 등장한다.

아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런 센스에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반전이 없는 추리소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살인사건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진짜 제목처럼 '반전이 없는'지 궁금하다면, 책 속으로 GO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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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47

이 책들 말이죠, 반전이 없는 거 아셨어요?

누가 반전만 싹 찢어갔어요.


- p. 169

살인자가 우비를 고집한다는 것, 피해자에게 우비를 입힌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은 아직 점과 점이었다.

하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이 점 두 개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리라. 친전은 초이세의 추리소설 《선과 점》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 p. 179

우비는 맥거핀.

맥거핀, 히치콕이 한 말이죠. 얼핏 보기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별 뜻 없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어디까지나 사건 진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극적 장치랄까요.

제가 작가라면, 우비는 어디까지나 그저 혼선을 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겁니다. 실제로 노린 건 따로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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