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전작인 <칠드런>을 읽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뜻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사카 고타로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작가의 전작들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읽은 책들의 대부분이 좋았기에 이 책 역시 읽기 전부터 기대를 품었다.

책 속의 주인공은 가정법원 조사관인 진나이무토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의 진나이와 순진하고 성실한 스타일의 무토는 성격은 다르지만 꽤 잘 어울리는 파트너다.

시작은 이렇다.

진나이와 무토는 무면허운전으로 인사사고를 일으킨 다카오카 유마라는 소년을 감별소로 데려다준다.

또 무토는 인터넷상에 협박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죽어'라는 협박편지를 보낸 걸로 시험관찰 중인 오야마다 슌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날 오야마다는 무토에게 인터넷상에 살인예고를 한 후 실제 실행되었던 게시글의 URL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마지막 건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고 실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무토는 진나이와 함께 범행을 막기 위해 실행 확률이 높은 초등학교 앞에서 대기하다 범인을 잡게 된다.

한편, 다카오카는 마음을 열지 않고 조사관들의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단순 무면허운전으로 인한 사고라고 여겨졌던 이 건은 조금씩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다카오카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고, 초등학생 때는 등교길에 미성년자가 운전하던 차가 인도로 돌진하는 바람에 바로 옆에 서 있던 친한 친구를 잃었다. 진나이와 무토는 이렇게 교통사고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과거가 있는 다카오카가 자신 역시 무면허운전으로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이 등장한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미성년자에 의한 흉악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 그들은 나이를 무기로 처벌을 피해간다. 그 중에는 분명 제대로 반성하고 속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눈에 비친 많은 이들은 반성의 기미는 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우롱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서브머린 속의 소년들은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상대방에 대한 사죄의 마음도 가지고 있다.

- p. 51 ~ 52

소년이 반성하고 있는지, 죄책감을 느끼는지, 얼마나 후회하는지, 아마 소년 본인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만난 적도 없는 누군가가 뉴스에서 보고 들은 정보만으로 소년의 심정을 파악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심정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에는 '분명'과 '어차피'가 넘쳐흐른다.

우리는 그래도 소년의 심정을, 본심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만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며,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무토는 더 나은 방향을 위해 항상 고심한다. 무심하고 제멋대로인 듯 보이는 진나이도 그런 마음은 마찬가지다.

- p. 136

네가 애쓴다고 일어날 사건이 안 일어나지도 않고, 안 일어날 사건은 안 일어나. 그렇지?

우리 일과 마찬가지야. 우리 노력과 상관없이 소년은 갱생하기도 하고, 안 될 때는 안 되지.

소년범죄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약자(어린이, 장애인 등)에게 터뜨리는 증오범죄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 속에 증오와 화를 품고 약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얼마 전 읽은 어느 책에서는 쓰레기차 같은 사람들을 피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소설 속 범죄를 보면 이런 사람들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방어했을 뿐인 일에 대해 자신만의 이유로 증오를 품는 사람을 어찌 예상하고 막을 수 있을까?

무겁지 않게 이야기들이 흘러가지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소년범죄, 증오범죄, 그에 대한 속죄와 용서 등 많은 부분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진정으로 속죄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데 무작정 그걸 감싸거나 혹은 욕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다만, 보이는 대로가 아닌 '진심'과 '본심'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조금 들었다.

- p. 197

아직 어린애인데 제 인생을 좌우할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다나오카 유마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면서 마주하는 소년 대다수가 그랬다. 인생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무엇을 멀리할 것인가. 부모나 변호사의 조언에 따를 수도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가혹한 일이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어른들도 정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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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197

아직 어린애인데 제 인생을 좌우할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다나오카 유마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면서 마주하는 소년 대다수가 그랬다. 인생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무엇을 멀리할 것인가. 부모나 변호사의 조언에 따를 수도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가혹한 일이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어른들도 정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답해야 하니까.

- p. 219

누구와 비교하려는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불공평하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항의, 아니, 최소한 물어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어떻게 좀 안 됩니까.

항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객센터는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 자체를 할 곳이 없었다.

- p. 302

솔직하게 말하면 편하다. 누구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테지만, 주변 질서의 안정을 위해, 혹은 인간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참는다. 진심을 감추고, 또는 완곡하게 표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에도 없는 맞장구를 치며 스트레스를 적립한다.

그 고통에서 도망치는 건 너무 약았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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