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익명의 소녀
세라 페카넨.그리어 헨드릭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평점 :

나의 사적인 비밀을 말해주는 대가로 내가 며칠을 일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을 지불한다는 제안을 받는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내가 버는 돈으로 뉴욕의 생활비는 물론이고 아픈 동생의 진료비도 지불해야 해서 늘 돈에 허덕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위와 같은 제안은 정말 내 마음을 솔깃하게 하지 않을까요?
뉴욕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는 제시카는 위와 같은 조건을 다 가지고 있었죠. 그녀의 수입은 넉넉치 못하고, 거기다 부모님 몰래 고향의 아픈 동생 치료비도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인 금요일, 그녀는 출장 메이크업을 갔다가 손님의 전화 통화를 듣게 됩니다. 제시카는 설문조사 한 번에 500달러를 지급한다라는 통화를 듣게 되고, 이 손님이 친구와 설문조사에 못 갈 거 같다는 말을 하자 자신이 그 곳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제시카. 설문조사의 질문들은 은근히 날카롭게 그녀의 답변에 파고 들었고, 그녀는 긴장하며 질문들에 집중하고 또 거기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적은 보수가 아닌만큼 그녀는 그 다음 설문에도 계속 참여하게 됩니다.
대외적인 설문조사의 목적은 '21세기의 윤리와 도덕성에 관한 포괄적 연구'인데, 사실 그 숨은 저의는 알 수가 없지요.
그도 그럴 것이 설문조사의 질문은 지나치게 사적이고, 실즈 박사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실즈 박사의 말투가 참 아리송하고 미스터리하고 불길한 기운까지 풍기거든요.
소설은 잠시 언급했듯이, 실즈 박사의 시선과 제시카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실즈 박사의 이야기 속에는 5번 피험자가 등장하는데, 5번 피험자가 또 미스터리해서 뭔가 더 불안한 마음이 생겨 납니다. 5번 피험자는 제시카 이전에 실즈 박사의 실험에 참여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P. 59
당신의 본모습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52번 피험자님, 점점 더 매력적인 당신의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전에 이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질문자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 사람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5번 피험자. 그녀 역시 여러모로 나머지 피험자들과는 달랐지요.
5번 피험자는... 특별해졌습니다. 그리고 실망을 안겨주었지요. 결국엔 내 가슴을 찢어놨어요.
그리고 실즈 박사가 제시카에서 연구에 깊이 참여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겉잡을 수 없이 이상해집니다.
실즈 박사가 제시카에게 시키는 일들도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많아졌구요.
제시카도 실즈 박사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히 그녀에게 휘말려 들어갑니다.
- p. 79
이 연구에 더 깊이 참여해보시겠습니까? 보상이 훨씬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당신에게 요구하는 바도 훨씬 더 많아질 겁니다.
실즈 박사는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부유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나 현재는 뉴욕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만큼 멋진 외모와 멋진 커리어를 가졌단 말이죠. 그런데 그런 그녀가 제시카를 통해 이상한 심리 실험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실즈 박사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토머스. 그러나 그는 바람을 피워 실즈를 실망시켰고, 현재 그녀와 별거중입니다.
실즈 박사는 제시카를 토머스와 의도적으로 만나도록 하고 그를 유혹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제시카는 이상한 점을 깨닫고 이미 그 전에 벌써 토머스와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실즈 박사에게 숨기게 되죠. 그리고 토머스로부터 자신이 실즈 박사의 남편이라는 말도 듣게 됩니다.
남편을 유혹하게 한다? 뭔가 이상하죠.
점점 제시카, 실즈 박사, 토머스가 각자를 지키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이 시작됩니다.
실즈 박사와 토머스 사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또 이들과 5번 피험자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제시카는 이 이상한 심리 실험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까요?
- p. 105
사람들이 바깥세상에 내보이는 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허울이에요. 대부분의 사교적 만남에서는 가식적 대화만이 오가죠. 자신의 본모습, 뿌리 깊은 두려움, 숨어 있는 욕망까지 드러낼 만큼 누군가를 신뢰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친밀한 관계가 탄생한답니다.
당신은 오늘 나를 당신 안으로 맞아들였어요, 제시카.
당신의 비밀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거에요...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말이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제시카의 어린 시절 꽁꽁 숨겨둔 비밀이 드러납니다. 실즈 박사의 비밀도 그녀의 입을 통해 드러나지만, 제시카의 비밀은 실즈 박사가 그녀가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역할을 합니다.
나중에 제시카가 더 이상 실즈 박사에게 휘둘리지 않고 벗어나려고 자신의 비밀을 가족들에게 솔직히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제시카는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죠.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끔찍한 사고였어." (p. 476)
좀 더 빨리 가족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했다면 오랜 시간 덜 아팠을 텐데...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책을 다 읽은 후 느낌은,
상대방을 더 사랑하는 쪽이 늘 약자다, 라는 것과
내 가족을 좀 더 믿고 혼자 속 끓이지 말고 터놓고 이야기하자, 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제시카는 아주 똑똑했다, 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