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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강지용은 서울 시내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에 붙었지만, 그 대학은 부모님의 기준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담배를 피던 옥상에서 민신혜를 보게 된다.
그렇게 지용은 신혜와 가까워지게 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눈다.
정부 고위 관료인 아버지, 영어유치원 원장인 어머니, 의대에 다니는 형, 미국 비지니스 스쿨에 다니는 누나 등 지용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대한 압박에 시달려 왔다.
신혜는 술집을 하는 엄마로 인해 열한 살부터 성매매에 던져졌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증오하고 벗어나고 싶어한다.
의붓여동생마저 자신의 전철을 밟게 될까 두려워 어머니를 아직은 떠날 수가 없다던 신혜는, 겨울 어느날 여동생이 어머니로 인해 다쳤다며 힘들어하고, 지용은 그녀를 위해 그녀의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 "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을까."
- p. 20
실수를 하면 모두 끝이다. 다음 시험이란 없다. 꿈꾸었던 다른 삶도 없다.
여자의 몸 위에 솜이불을 도로 덮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무도.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고,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깨끗했다. 더러운 일이었다면, 손을 더럽히는 일이었다면 아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 p. 23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장 나쁜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삶, 아닐까.
오늘은 좋은 일만 상상하고 싶었다. 시험처럼 실패해 버리고 싶진 않았다. 붙거나 떨어지거나. 죽거나 살거나. 사랑하거나 외면하거나. 잡히거나 빠져나가거나.
인생은 매번 둘 중의 하나다. 중간은, 없다.
그렇게 신혜의 어머니를 죽인 후, 지용은 누나가 있는 뉴욕으로 떠난다. 지용과 신혜는 직접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진 않았지만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간간히 알려주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어느날 신혜의 SNS에 더이상 새로운 소식이 올라오지 않고 전화연락마저 되지 않자, 지용은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녀를 찾아 다시 한국으로 간다.
그리고, 여기서 지용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자신이 신혜에게 철저히 속고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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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사랑이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라도 되었다면 지용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할 수는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공부만을 달려오다 트랙 중간에서 이탈해 버린 지용은 트랙 밖의 세상을 몰랐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세상에 내던져졌던 신혜는 부모와 공부에 대한 분노가 마음 속에 가득한 지용을 마음과 몸으로 품는 듯이 행동하며 그를 이용하고 조종했다.
신혜는 재수하기 전까지 공부만 했고 이젠 재수생일 뿐인 스무살의 지용을 살인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지용은 진짜 지옥에 던져졌다.
- p. 60
다들 지옥에 있다고 하지. 모두 너 때문에 내가 지옥에 있다고 욕하는데, 너 역시 지옥에 있다고 아우성을 쳐. 그러면 이게 다 누구 책임일까.
지용의 누나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지용에게 부모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해도, 극단적인 그 선택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결국은 지용의 그 원망하는 마음이 넘쳐 흐른 것이 신혜에게 조종당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나 넘쳐서 부모에게 휘둘리다 마음을 주었다 여긴 사랑하던 그녀에게까지 휘둘려 버렸으니 말이다.
- p. 113
그런데, 그러니까, 네 인생이니까 남에게 휘둘리진 말았으면 해.
나는 누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게 싫었거든.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야. 누굴 만나러 돌아가는진 몰라도, 엄마 같은 인간을 네 인생에 또 만들어 놓는 건 그렇지 않니? 누가 내 인생을 맘대로 흔드는 거, 정말 질색이다. 지긋지긋해.
마음이 서늘하고 헛헛하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지용도, 그를 속인 신혜도, 지용을 그런 원망 가득한 인간으로 성장시킨 부모도 모두 약간은 안타깝고 약간은 화가 난다.
"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을까?"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