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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평점 :

474번은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과 현직 국회의원 등 12명을 살해한 남자였다. 피바다가 된 살인 현장에서 남자를 체포했지만, 그는 지문 등록도 되어 있지 않고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범죄정보센터 기록도 없는, 한 마디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였다.
그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 p. 13
별의별 놈 다 봤지만 이런 캐릭터는 없었어. 이상해. 묘한 태도하며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도 그렇고. 너무 깔끔하잖아. 죄를 받아들이고 모두 인정하고 있어. 그런데 뉘우치고 반성하는 태도는 아니야. 달라. 뭔가 다른데 그게 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리고 윤은 474번의 담당 교도관이었다.
윤은 474번의 비밀이 궁금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지켜봤다.
- p. 39
윤은 그것을 잘했다.
그것은 선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악한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기다리고 지켜봤다.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그러던 중 474번을 찾아오는 면회객이 윤의 눈길을 끈다. 윤은 474번에게 접견신청을 하는 여자가 있으며 그녀의 이름은 신해경이라고 슬쩍 흘린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겠다고 말하는 474번. 접견실에서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누나"라고.
474번은 그녀를 만난 후 교화를 위해 온 목사를 협박하면서까지 자신의 사형 집행이 빨리 처리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다시 신해경을 만난 474번은 돌연 마음을 바꾼다. 윤에게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p. 59
어떻게 동생을 무서워할 수가 있죠?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두려움과 공포가 깃들면 나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 p. 138
상처를 주고 싶었어.
누나에게 소중한 것을 잃게 하고 싶어.
그게 나라면... 나를 없앨 거야. 누나도 내게서 누나를 가져갔잖아.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을 것 같던 474번은 윤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한다. 어린 시절 누나와 살았지만 누나는 자신을 버렸고, 그 후 자신은 본질이 이끄는 대로, 자신이 잘 하는 일, 즉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하며 살았다고 말이다.
직접적인 살인 행위는 474번이 했지만, 그가 살인을 하도록 의뢰하고 그의 손에 피를 묻히고 그를 물리적인 도구로 활용해 온 것은 마음 속에 원한이 가득찬 그런 사람들이었다.
작가는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를 묻고 싶은 것인가...
작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라에서 부여된 이름이나 주민번호조차 없는 474번의 불우한 과거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윤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그의 입을 통해 듣는 과거 이야기와 누나이자 엄마인 신해경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어느 순간 그는 474번이 아니라 이름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인간인 '신해준'이 된다.
그러나 474번과 신해경에게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474번은 12명을 죽인 흉악한 살인마일 뿐이다. 그의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작품해설 속에 언급한 말처럼, 악의 실체는 드러나야 하고, 연민을 품게 되더라도 악 자체에는 고개를 돌리지 말고 바라봐야 한다.
여전히 포인트를 잡는 게 힘들다.
온 마음을 집중해서 474번(신해준), 신해경, 윤을 바라보았지만 내가 제대로 이들을 이해했는지, 작가의 이 소설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계속해서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그래서 언젠가는 온전히 소설 속의 이야기를, 그들을 이해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