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이름이나 작품은 들어보거나 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그림을 보는 법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하다.

유명 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면 늘상 그 곳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성향이나 전시회를 준비한 큐레이터의 의도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눈으로는 그림과 제목을 지긋하게 바라보면서 귀로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조금 더 작품에 다가가도록 노력 비슷한 것을 할 뿐이다.

그래서 미술과 관련한 책들은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줄리언 반스가 쓴 '지적인' 미술 에세이라고 하니 더 겁이 날 수 밖에...

이 책은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영국의 미술 전문잡지인 <현대 화가>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 실린 에세이를 모은 것이라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작가는 미술에 관한 16명의 화가를 포함한 17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맨 처음 제리코와 그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설명할 때 작가의 문장은 마치 소설 같다. 메두사호의 생존자들에 대한 그 그림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건에 대해 말하는 문장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이 긴박한 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의 미술적 상상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는 그림에서 제리코가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언급하며, 왜 화가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하여도 여러 생각들을 펼쳐낸다.

- p. 51, 제리코

우리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그 모습, 때로 실수하기도 하는 그 동작을 기억해야 한다.

그 8개월의 최종 결과물을 보고나면, 그 진행 과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렇게 걸작을 본 뒤 거슬러 올라가며 폐기된 발상을, 목표에 가까운 성과를 접하게 된다.

그 폐기된 발상들이 제리코에게는 흥분과 기대감의 산물이었다.

그는 우리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야 보았다.

우리에게 그 결말은 필연적이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작가는 들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팡탱, 세잔, 드가, 르동, 보나르, 뷔야르, 발로통, 브라크, 마그리트, 올든버그, 프로이트, 호지킨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조금 전 제리코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작이 마치 소설같다고 말을 했는데,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또 나름의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팡탱-라투르'식탁 모서리' 중에서 랭보의 모습이다. 작가는 '식탁 모서리', '들라크루아에게 바치는 경의', '바티뇰의 화실', '피아노를 에워싸고' 등 팡탱이 그린 군상화를 모두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림 속의 인물들에 대해, 또 어떤 일로 인해 어떤 그림에는 누군가가 빠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그림만을 대했다면, '그림에 누가 있네'라든가, 그도 아니라면 '사진을 찍은 것처럼 여러 사람을 그렸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팡탱의 군상화를 보는 이들 중 하잘것없는 사람들에게서 유명한 사람들에게로 바삐 눈길을 옮기다 말고 거기서 미술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p. 140)"고 말한다.

작가는 팡탱의 그림을 설명하는 마지막으로 '뒤부르 가족'이라는 그림을 설명한다. 팡탱이 그의 아내, 처제, 장인과 장모가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작가는 '처가를 묘사한 것 중 가장 우울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아닌가 싶다.(p. 154)'라고 표현한다.

(이런 작가의 위트가 군데군데 있어 이 또한 이 책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다^^)

- p. 154, 팡탱-라투르

팡탱에게 돈을 벌어다준(또한 명성을 가져다준) 꽃 그림 같은 정물화들은 그가 본래부터 잘 알고 있던 모든 활기와 생기와 색을 드러내는 반면, 초상화들이 정물화처럼 기괴하고 장례식 같아 보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대단한 재능에서 비롯한 불가사의가 아닐까.

나열한 화가들의 이름을 보면 익숙한 이름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더 많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화가들을 알게 되는것도 즐거웠고, 같은 직종(?)인 화가들끼리의 얽힌 뒷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 몰랐던 뒷이야기를 읽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책 전체를 온전히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다 알 수는 없다며 마음을 비우고 읽으니 그림의 재능 외에는 보통 사람과 같거나 어쩌면 보통 사람보다 못난 인성을 가진 이도 많아 보여 그들의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 것이지. 군데군데 숨어 있는 작가의 위트있는 문장도 한 몫했고^^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내가 미술에 한 걸음 다가섰다라고는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어렵고 어렵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예술작품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그것들에 가까이 가보려는 노력을 해 보고 싶다.

한참 멀었지만, 그림을 보면서 그림 자체뿐만 아니라 그림의 전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부지런히 전시회로 달려 가야지.

- p. 346, 이것은 예술인가?

그.예술적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사실상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물건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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