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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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

누구나 살면서 잊지 못한 시간들이 있다. 고통스러워서 아름다워서 혹은 선연한 상처 자국이 아직도 시큰거려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뛰는 심장의 뒤편으로 차고 흰 버섯들이 돋는 것 같다. (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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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사람이 겪은 시련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한 남자가, 그를 둘러싼 친애하는 두 동료의 죽음과 한 여자에 대한 이루지 못할 사랑을 겪으며 진정한'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W시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원의 정요한 신부는 아빠스(Abbas, 대수도원 원장)님의 호출을 받는다. 아빠스님은 그에게 자신의 조카인 소희가 수도원에 온다라는 소식을 전한다.
정요한 신부가 젊은 시절 진심으로 많이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대였던 소희가 죽음을 앞두고 그를 찾아온다는 것.
그렇게 소희의 이름을 들은 정요한 신부는 신부 서품을 앞둔 젊은 수사였던 10년 전을 떠올린다.

​10년 전 정요한 신부는 자신의 소중했던 세 사람을 떠나보냈다. 수도원의 입회 동기였던 똑똑하고 정의로웠던 미카엘과 아름다운 외모와 더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던 안젤로, 그리고 그해 수도원을 찾아온 배꽃같이 화사하고 아름다웠던 그녀 소희.
정요한 신부는 갑작스런 사고로 미카엘과 안젤로를 잃자 하느님의 사랑에 의문을 가지고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하여 고민하고 방황한다. 그리고 소희와의 사랑은 더욱 그를 수도원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쓰라리고 아픈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공지영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 그녀의 글은 너무 잘 읽힌다. 어쩌면 종교적이지 않을까 고민했던 이 책도 작가님의 필력을 믿고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잘 읽히면서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했지만, 그 과정과정에 정요한의 마음을 나타내는 여러 문장들은 자꾸만 내 입가를 맴돌았다.
또 책 속에는 정요한 신부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할머니나 토마스 수사님, 뉴욕의 마리너스 수사님의 입을 빌려 더 이전 세대의 어둡고 힘들었던 시대의 모습도 들려준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래서 사실은 이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모르고,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정요한 신부, 개인의 입장에서 그가 안타까운 죽음이나 결국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겪으면서 변화하는 모습에 공감했고, 그래서 안타까우면서도 안심했다.

​'사랑'이란 무엇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혹시나 종교적인 책일까봐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종교는 그저 배경일 뿐, 이 책은 한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그린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한 번 읽어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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