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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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흔적을 진득히 되짚어보는,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이번에는 일본에서 첫번째,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유자와를 시작으로, 그가 태어난 오사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와 생활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이바라키, 청년 시절의 도쿄, '이즈의 무희' 속 배경인 이즈, '고도' 속 배경인 교토,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년을 보낸 가마쿠라 등에 이르는 여정까지,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나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죽음을 목도함으로써 일찍부터 체념과 허무를 배웠고, 죽음이라는 순간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두 살 때 아버지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바라키의 조부모님댁에서 살던 일곱 살 때 할머니가, 열 살 때는 누나가 세상을 떠난다. 할아버지마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시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린 나이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나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는 미학이자 문학적 자기장의 중심이었다.
나는 그를 떠올리면 늘 벚꽃이 생각났다. 죽기 직전의 모습이 이다지도 화려한 꽃이 벚꽃 말고 또 있을까. 벚꽃은 절정의 시기를 잠시 보여주고 꽃비가 내리듯 소멸을 향해 간다. 어느새 돌아보면 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푸른 잎만 남는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장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알려주듯, 이바라키의 벚꽃도 그렇게 영혼처럼 떨어져갔으리라. (p. 147)

일찍부터 혼자가 되어 버린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도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난다. 카페 여직원이었던 이토 하쓰요를 사랑하게 된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도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후 이토 하쓰요는 그에게 파혼을 선언한 뒤 사라져 버린다. 이유도 모른채 허무하게 이별한 것이 마음에 크게 남아 그 후로도 다른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설국'을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언어적 유사성과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데다 미묘하고 모호한 일본어 사용이 많아 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무척 까다로워 보인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의역에 비중을 두긴 했으나, 설국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는 번역을 했고, 그래서 노벨문학상에 선정될 수 있었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그 힘들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주변의 존경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 생활이 윤택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현실이 허무하였는가보다. 그는 충분히 위대한 그 순간에 유서 한장 남기지 않고 자살한다.
작가는 유서를 남기지 않은 죽음이 그답다고 하면서도, 책의 마지막에는 여전히 그를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허연 작가님을 따라서 함께 걸어간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사람은 참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 같다. 작가님을 따라 그의 작품 하나하나,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했던 지역들 하나하나를 돌며 그를 더듬어 봤지만, 나 역시도 확실하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위대한 문학가인 그의 문장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 위주의 이야기 구조를 좋아했던 나라서 그의 작품이 어렵고 재미없게만 느껴졌는데, 문장 자체를 느끼고 그 문장에서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졌다.
여전히 옅은 안개 속에 있는 그를 좀 더 알 수 있을까 하는 조그만 기대를 가슴에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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