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너를 사랑해"
너무 유명하고, 여전히 입에 착 붙는 문장이다.
책에도, 시에도 무심한 꼬맹이 신랑에게 이 말을 아는지 슬쩍 물어보니, 자신도 아는 말이란다.
위 시가 언제쯤 나왔는지 확인해 보니, 93년도에 발간된 시집이다.
아, 정말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나는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만화만큼 많이 읽었던 것이 시였다.
어쩌면 '시'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문장들 말이다. 짧지만 마음을 진하게 두드리는 문장들에 빠져 있었던 시절이었다.
손편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좋아하는 구절을 정성스럽게 적어서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오빠를 생각하며 일기장 한 쪽에 이쁜 문장들을 끄적거리기도 했었다.
위 문장만큼 유명한 원태연 시인의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시집이 150만부 판매 기념으로 새롭게 개정되어 출간되었다.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의 문장들은 세련되고 감성적이고... 그냥 좋았다.
이번엔 그의 문장과 함께 강호면 님의 일러스트도 볼 수 있는데, 일러스트도 참 좋았다.
문장만으로도 좋은데, 그 문장과 이어진 듯한 일러스트라서 더 매력적이었고,
일러스트 또한 스토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문장과 일러스트를 보며, 문득 '사랑이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다.
서로 바라보는 양방향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사랑을 하는 커플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을 행복하게 할 테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각자가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주변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이 사랑이었구나를 확인하는 과정도 어쩌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떤 두 사람의 '사랑'에는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도 함께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괜히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서로가 딱 보는 순간 '우리가 운명이야'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어떤 사소한 일로도 인연이 아닌가보다라며 그(그녀)와 헤어졌다가,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다시 예전의 그(그녀)가 생각나 새롭게 만난 사랑에게 상처를 줄 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혼자인 듯한 그(그녀)가 계속 눈에 밟혀 주변을 맴돌며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히 감성적이 되어서, 괜히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는... 말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사랑'은 여전하고, 그 '사랑'의 주변도 여전한가 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읽어도, 그의 문장이 여전히 마음을 두드리는 걸 보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