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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도시 - 우리 시대 예술가 21명의 삶의 궤적을 찾아 떠난 도시와 인생에 대한 독특한 기행
오태진 지음 / 푸르메 / 2011년 6월
평점 :
새하얀 도화지 위에 마음 속 상상하던 것들을 온통 내 세상으로 만들어가던 유년이 지나고 나니, 그리던 것들을 비워내는 작업이 절실해지는 순간도 그저 담담히 마주하게 된다.그래,난 이제 어린 내가 아니다.어색하지만 어른이란 이름이 더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 내가 자라고 스무 해가 넘도록 살아온 고향을 처음으로 떠나왔다. 지금 내 아이의 나이쯤 되던 중학 무렵 나는 하늘도 동화 속에서나 본듯하게 높다란 천장처럼 느껴지던 서울을 막연하게 꿈꾸곤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토록 익숙하고 지겨워질 만도 한 그네들의 고향을 나와 달리, 엄마품의 기억처럼 다시금 찾아가고 또 그곳에서의 여생을 소박하게 희망하며 산다.
내 고향도 이웃 건너 이웃이 서로의 왕래를 알아보기 쉽고 지척에서 각각의 가족의 일상을 많은 부분 짐작하리만큼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네들로 이뤄진 곳, 전라남도 아니 지금은 독립한 광주광역시였다. 그랬다. 난 그게 싫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를 너무 속속들이 알게 되는 고향의 특성이 못 견디게 싫었던 때가 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 ‘내 인생의 도시’ 는 다를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나처럼 고향을 떠나려 몸부림치고 고향 이야기를 꺼내기가 별로인 나와는 분명 다른, 마음 속 고향을 각자 견고히 하나 이상은 간직한 작가와 화가 등이 그들이 안내하고 있는 도시였다.
청춘의 들끓음과 혼란을 영상으로 아름답게 완성하여 우리에게 영화라는 장르로 다가온 ‘친구’의 곽경택 감독의 아버지 품 같은 부산도, 도시의 풍요로부터 질식하느니 자연과 함께 평화로이 시를 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작가 안도현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전주도, 눈빛이 선한 화가 사석원의 그림인생에 진정 온기를 불어넣어준 서울의 광장시장도, 그토록 고통스럽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소설 쓰는 문인으로 회복하게 한 치유의 땅 무등산 자락 아래 광주도,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며 시를 쓰는 남자 이원규 시인의 굳은 살 박힌 엄마 같은 지리산 자락도, 모두가 그들의 마음 속 고향이며 동시에 꿈의 기원이었다.
이제 다시 날이 밝으면 우리는 새로운 도시를 꿈꿀 지도 모른다. 허나 그럴듯한 화려함도 편안함과 익숙함 앞에선 맥을 못 춘다는 그 진리를 겸허히 받아들일 때쯤, 어쩌면 아름다운 이들의 도시를 책에서나마 잠시 훔쳐본 나조차 참으로 오랜만에 환한 기지개를 펴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도시는 고향이며 고향은 또 다른 제 2의 도시임을 새삼 느끼며 파란 스케치북 같은 책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