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송  



민이(32, 여자)는 시월 하순 어느 일요일, 엄마의 성화로 맞선을 보러 H호텔에 간다. 호텔을 가려고 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순간, 근처에서 ‘끽’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형차에 치인 남자는 그녀 나이 또래의 마른 남자다.

그 순간 민이는 7년 전 그 날이 떠올라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7년 전 그 날, 민이는 남자친구였던 진이를 태우고 홍대 카페로 가고 있었다. 마침 그 때 운전은 그녀가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갈등하던 결혼문제로 말다툼하던 끝에, 앞쪽에서 오던 어린 아이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운전석에 있던 민이는 얼굴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게 되고, 유감스럽게도 민이 옆자리에 타고 있던 진이는 운전벨트를 매지 않은 바람에 죽게 된다. 진이는 그 때 심장쇼크를 앓고 있었고 그 바람에 그 날의 사고가 적지 않은 충격으로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었다.

그 무렵 민이는 불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친구 진이는 군대를 다녀와서 주간에는 대형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야간에는 홍대의 재즈 클럽에서 간간이 바텐더를 하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민이의 부모는 민이와 진이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결혼 문제로 갈등이 깊어지고 그로 인해 다툼이 잦아진다. 진이는 체질적으로 결혼을 거부한 남자였고, 민이는 그런 진이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서로 많이 다른 사람이었지만, 두 사람은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했다. 둘이 다투다가도 Tesla(그룹)의 love song을 들으면 금새 잠잠해졌다. 7년 전 그 날도 결혼 문제로 말다툼이 길어지자, 두 사람은 그 노래를 듣게 된다. 3년 째 연애 중이었던 민이와 진이는 둘 다 좋아하던 ‘러브 송’을 듣다가 운명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테슬라의 곡을 듣고 있으면 막무가내로 그어 놓은 그라피티처럼 거친 맛에 취하곤 했다. 그의 절규하는 라이브는 희열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느끼게 하는, 진짜 날것의 음악이라고 느꼈다.

민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애교가 많은 사람이었고, 불편한 사람 앞에서는 테이블에 손가락을 피아노 치듯 두드려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진이는 답답함을 느끼면 아이스 에스프레소를 물처럼 벌컥 들이키는 습성이 있었다. 진이와 달리 민이는 드립으로 내린 탄자니아 커피를 즐겨 마셨다.

사고가 있던 그 날에도 그들은 홍대에 가면 늘 들르는 카페 ‘아벡 누’(우리와 함께)에 가고 있던 길이었다. 두 사람은 불투명한 미래에 갈증을 느끼기 보다는, 그대로의 시간들을 즐겼다. 두 사람은 예술영화 하는 곳이면 거리를 막론하고 다녔으며,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인디밴드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것이 그들의 바쁜 일상 속에 갈증을 풀어주는 일종의 미네랄워터 기능을 해주었다.

민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불어권 유학을 꿈꾸는 이들을 가르치는 불어 과외를 6개월 정도 하게 되고, 그 때 모은 과외비를 모아 3년 할부로 그녀가 좋아하는 다크초콜릿 색의 소형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걱정했던 운전면허는 두 번만에 쉽게 획득했다. 민이와 진이는 생일이나 기념일 등을 즐기는데 그 차로 움직였다. 서투른 운전이었지만 진이는 민이가 운전하는 차 옆자리에 앉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진이는 결혼이 싫은 것이지, 민이가 싫은 게 아니었다. 그런 진이 마음을 민이도 이해는 했지만, 불투명한 미래라도 꼭 함께여야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진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은 두 사람이 만난 지 3년 째 되는 날이었다.

진이가 결혼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민이는 그 무렵 부모님이 정해놓고 만나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민이가 초등학교 때 다니던 피아노학원 선생님의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민이보다 다섯 살 위였고, 음대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진이를 사랑했던 민이 마음을 헤아려 주기보다는, 민이 부모님은 자신들의 딸이 좀 더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기를 갈망했기에 그가 민이의 짝이 되기를 내심 바랬다.

결혼을 서두르게 된 데는 민이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가 큰 이유였다. 그 때 민이 엄마는 위암 수술을 받고 일 년 쯤 지난 뒤였기 때문에 전보다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고,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진이를 향한 민이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따돌릴 수도 없었다.

조금씩 지쳐가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졌고, 그 날 진이와 결국 다툼으로 이어졌다. 사실인즉, 두 사람이 3년 째 되던 그 날이 바로 민이가 엄마가 말한 피아노 선생님 아들과의 맞선 자리에 나가는 날이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민이는 자신의 사랑, 진이를 만난 것이었다.

민이는 진이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했다. 특히 테슬라의 러브 송을 한 옥타브 정도는 내려 부르는 모습이 민이가 기억하는 진이의 귀여운 영상 중 하나였다. 그 날도 진이는 그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운명이 그들을 예상 밖의 세상으로 몰고 가기 직전까지 마치 두 사람을 위한 세레나데처럼.

그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 민이는 테슬라의 음반을 모조리 폐기처분하다시피 했다. 진이가 떠오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진이가 일하던 대형서점에도, 재즈 클럽에도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 사고가 나면서 두 사람의 추억이 어린 민이의 초콜릿 차는 진이와 함께 생명을 잃었다.

상흔처럼 민이는 운전대를 못 잡게 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패닉 상태로 한참을 허공만 바라보곤 했다. 진이가 없는 세상이 싫었다. 진이와 함께 마시지 못한다면 커피도 물보다 무미건조했다. 진이가 투덜거리지 않는 민이의 옆자리는 더 이상, 자리로서의 의미가 없었다. 진이와 함께 듣지 않는 테슬라는 더 이상 음악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잊혀지는 게 아니었다.

그가 사라진 후 7년 동안 내내 민이는 죽은 듯이 살았다.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먼지 같은 날들이었다. 불어학원은 그저 무감하게 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그녀에게 크게 관심 두지 않고, 불어만 열심히 배우면 그만이라는 듯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차라리 그게, 감정소모가 새삼스러워진 그녀에게는 다행이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땅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갔다. 여전히 엄마는 초췌한 모습으로 민이의 하루하루를 어루만지려 애쓰고 있었다. 딸의 행복을 누구보다 염원하는 엄마에게 더는 불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과 기름 같은, 결혼이란 것을 해보리라, 민이는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다.

다른 때 같으면 하루의 절반을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체처럼 대롱대롱 매달렸을 일요일 오후, 민이는 드디어 진이가 아닌 다른 남자를 그녀 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사윗감, 그를 만나러 가는 호텔 앞 횡단보도에서 뜻밖의 교통사고를 접하게 된 그녀는 7년 전 진이를 떠나보낸 날을 떠올리게 되어 아이처럼 신호등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게 된 것이었다.

사람이 다친 것도 찰나였지만,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사고가 일단락지어지기까지는 짧지 않은 순간이 흘렀다. 진이의 숨이 끊어진 것은 찰나였지만, 그를 민이 마음속에서 보내기까지는 선사시대에서 지금으로 이어지는 시간보다 오랜 시대가 지난 느낌이었다.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내색조차 사치라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일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민이 엄마 나이 정도의 중년 부인이 아기를 일으켜 세우듯 민이를 일으켜준다. 자신을 도와준 부인의 얼굴을 보며 민이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고마워요.” 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민이는 호텔로 향한다.

남자를 만나기로 한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눈자위를 손가락으로 훔쳐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로비 옆 카페로 들어간다. 카페 안쪽 중앙쯤 창가자리에 남자가 앉아 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봤던 그 모습이 아니어서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왠지 민이는 육감적으로 그가 자기를 기다리는 남자라 확신하게 된다.

애써 씩씩한 걸음으로 남자 앞으로 걸어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며 앉는다. 어릴 때 보았던 소년은 다소 마른 편이었는데, 지금 민이 앞에 그 남자는 풍채가 좋아진 호남형으로 미소 또한 넉넉하다.

음료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민이는 테이블에 손가락을 건반 치듯 두드린다. 남자는 좋은 사람 같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민이는 불편한 심리를 그렇게 표현하게 된다. 남자는 민이의 그런 행동이 더 사랑스러운지 자신도 흉내내본다.

그 순간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의 정체는 민이 앞의 남자에게서 나는 소리다. 그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러브 송, 테슬라의 러브 송이, 못 견디게 그리웠지만 7년 동안 차마 들을 수 없었던 그 노래가 바로 그녀를 포옹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햇살처럼 맺힌다. 눈물을 머금은 미소로 민이는 남자에게 손을 내민다. 의아해진 남자는 잠시 멈칫하다 어색해하며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강해졌지만, 민이와 남자는 오히려 따뜻하다.

둘은 이야기 나누다 호텔에서 나온다. 머플러를 치켜 올리며 남자의 옆얼굴을 훔쳐본다. 진이보다 통통했지만 왠지 옆얼굴이 진이를 닮은 것 같다. 그녀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살짝 튄 소리로 말한다. 그 뜻은 고맙지만 민이는 웃으며 거절한다. “그냥 오늘은 걷고 싶네요.” 라고 말하며 그와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위에서 민이는 잠시 멈춰 선다. 진이와 함께 듣던 러브 송이 그녀의 귓가를 맴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을 함께 할 그 남자의 따스한 체취가 남아있는 손을 꺼내 허공에 휘저어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3시 2011-01-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쾌하고 따뜻해!
 

 

 

계란빵과 에그 타르트는 계란이 주재료라는 점을 빼면 같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양도, 색깔도, 가격도, 마지막으로 중요한 ‘맛’까지 완벽하게 달랐다. 왕자와 거지처럼 출신을 속이고 꿈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녀는 결혼을 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두상은 하트 모양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모자나 팔찌 따위의 액세서리에는 지나치게 무관심했다. 스키니진을 입기로 했다. 오래된 청바지가 하루 만에 몰라보게 변신했다. 작은 기적이었다. 지갑은  더 이상 스키니진이 아니었다. 지갑이 날씬해질수록 그녀도 어두워졌다. 어느 날 이후로 누구누구와 말을 섞거나, 눈빛을 나누는 등의 불편한 작업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카페인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카페인 덕분에 그래도 생기가 넘쳤다. 그녀에게 친구가 생겼다. 혼잣말을 풍선껌처럼 불어대는 그녀에게.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를 영화 대사로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러 듣지 않으면 좀처럼 눈치 챌 수 없는, 혼자서는 제 기능을 못하는 조사와 어미까지도 송두리째 들어주고 있었다. 환상 속에서 만나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싶었다. 하이힐은 키 큰 여자에게는 선택이었지만, 플랫슈즈는 키 작은 그녀에게도 로망이었다. 그래서 하이힐을 신기로 했다. 근처의 구둣가게로 뛰어갔다. 춤을 추다가 쓰러져버리는 붉은색 구두였다. 쓰러져버려도 그만이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우산이 없었다. 친구가 연두색 우산을 갑자기 펼쳤다. 빗소리가 들렸다.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안경은 쓰기 싫으면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소한 소품에 불과했다. 1.5배쯤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하는 전신거울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녀는 박제된 공주처럼 생글거렸다. 거울 앞에 서면 적어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운명처럼 정해진 한계는 극복할 필요를 못 느꼈다. 실망할 그 무언가보다 편했다. 친구는 매니큐어만 보면 눈빛이 반짝거렸다. 소녀처럼 들떠 보였다. 그녀는 아이 메이크업에 몰두했다. 눈 화장이 진해질수록 그녀는 외로워졌다. 두 여자는 호랑이와 쥐처럼, 아니 기린과 도마뱀처럼 달랐다. 수첩을 꺼내드는 일이 줄었다. 얌전한 메모지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핸드폰이란 녀석에겐 간단하면서도 맘껏 복잡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자’라는 신통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슬프고 매혹적인 옷을 탐냈다. 그러나 그녀가 입는 옷은 늘 경쾌하고 발랄했다. 미니스커트는 좋았지만 레깅스는 싫었다. 그리움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속 깊은 이성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인정해준 유일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클럽 가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가자.” 수영복은 답답했지만 클럽은 파자마처럼 느슨했다. 조명은 단조로웠지만 음악은 집요했다. 열쇠도 필요 없었다. 최고의 독방이었다. 과거의 자신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남방보다도, 끈이 풀린 운동화보다도 비극적이지 않았다. 어제에서 시작된 의식은 오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웃었다. 사뭇 진지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3시 2011-01-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가 쓴거??
산문을 써야함.
방송작가-그런거 집어치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