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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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릴 뒷산은 시골의 친할머니댁에서 만난 생애 시골친구와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개발이란 대단한 목표 아래 스러지고 흩어진 동산이 아닌,공기와 바람,,흙을 맘껏 마시고 만질 있었던 때는 나의 유년의 한복판이었다.
초록의 여름을 닮은 책은 제목부터 장마에 지쳐가던 즈음의 나를 웃음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등산을 꺼려하는 내게도 할머니댁 뒷산과 그곳에서 해가 지도록 함께 뛰놀던 옛친구와의 추억은,그때의 우리들처럼 작은 산을 커다란 우주로 기억에 자리잡게 해주었다.
산은 나이가 들면 드는 채로,아프면 아픈 채로 그렇게 우리의 삶 어느 자락,어느 모퉁이에서든 그대로의 햇살과 그대로의 눈비를 온몸으로 거부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맞고 또 자연과 함께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산 속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되고 누구나 가족이 된다.나 또한 그 속에서 산을 닮은 맑은 친구를 만났고,또 그 친구와의 소꿉놀이를 통해 자연을 만났던 것 같다.
뒷산이든 앞산이든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도란거림이 축제처럼 한창이던 그 순간의 소녀에서,가다가다 힘들면 살포시 앉아 고마운 휴식을 선물해주는 자리를 내어주며 나처럼 너처럼 우리처럼 나이가 들었다.조용하게 숨쉬는 나이테 위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세월의 기록으로 화답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희노애락을 표현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던 나의 시간을 묻지도,재촉하지도 않는 산에서는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단상도 마이크도 불필요한 사치로 치부되기 쉽상이다.참 평등한 공간인 셈이다.
사람이 정해놓은 계절,일분일초,하루,한해 등의 낯설지 않은 시간의 단어들이 무의미해지는 산이다.메아리처럼 앞과 뒤의 구분이 허물어진 참 편안한 일탈이며 일상의 축복이다.진정 사람을 향해 열려있는 자유로운 통로인 것이다. 


   

시간으로부터 초탈한 자연 속에서 산은 때로 사람들이 지나온 자리마다 오래된 앨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긴 뭔지 부끄러웠던 나를 푸근하게 안아주는,이 달력 사진이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
처음 산을 오를 때의 막연한 설렘도,산으로부터 멀어진 뒤의 한없는 두려움도 모두가 정상에 다다른 순간의 가득한 보상도 어쩌면 부질없는 보물찾기나 생존게임과 다를 바 없겠지만,그럼에도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우리를 자라나게 해준 이름모를 뒷산은 기꺼이 쉼터가 되어주고,또 언제든 찾아가 누구에게도 비치지 못한 속내 얘기들을 속깊은 친구처럼 연인처럼 들어주고 말없이 토닥여주고 있다.
뒷산이 하하하 웃는 그 날,우리들의 얼굴도 하하하 하며 나무처럼 푸르고 숲처럼 커다란 웃음소리로 화답하게 될 것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뒷산에게 데이트를 청할 때가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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